[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만성 변비는 통증과 불쾌감 등으로 삶의 질을 저하시키지만 그 이상의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배변 이상은 신경 퇴행성 장애, 신장 질환 진행 등과 관련이 있다. 배변 이상이 만성 질환이나 장기 손상의 원인인지 또는 질환의 증상이 변비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상호 작용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장기 손상하는 유해 독소 생성
미국 시스템 생물학 연구소(ISB)에 따르면 규칙적인 배변 활동은 장기적인 건강과 관련이 있다. 신체가 장기를 손상하는 유해한 독소를 생성하지 않고 필수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1,400여 명의 생활 습관 자료를 분석했다. 배변 횟수를 기준으로 변비(주 1~2회 배변), 저 정상(주 3~6회), 고 정상(하루 1~3회), 설사 네 가지 그룹으로 분류했다.
연구 결과 변비와 설사를 하는 사람들은 독성 단백질 발효와 관련된 박테리아 수치가 더 높은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나이·성별·체질량지수(BMI)가 배변 주기와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젊은 사람, 여성, 체질량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배변 주기가 긴 경향을 보였다.
연구팀은 단백질 발효에 의해 생성된 독소는 장기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변비인 사람의 혈액에서 신장손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p-크레졸-설페이트 (p-cresol-sulfate)와 인독실-설페이트(indoxyl-sulfate)가 다량 검출됐다.
변비와 알츠하이머병 사이에 인과 관계도 주목할만하다. 김태 광주과학기술원(GIST) 의생명공학과 교수팀과 연동건 경희의료원 디지털헬스센터 교수팀이 기초-임상 융합연구를 통해 변비가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증가시킴을 확인했고 동물모델을 이용한 기초연구를 통해 인과관계를 밝혔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마우스 모델에서 위장관 통과 시 느린 장 운동, 변비 등으로 시간이 저하됨을 확인했고 이를 기반으로 실험적으로 장 운동을 더욱 느리게 하면 알츠하이머병 병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알츠하이머 마우스 모델에 지사제의 일종인 ‘로페라미드’를 투여한 결과 뇌 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뇌 내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가 유의미하게 증가했고 기억력 저하 등 병리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연동건 경희의료원 교수팀과 함께 약 313만 명의 한국인과 약 438만 명의 일본인에서 변비가 있는 환자의 경우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의 위험비가 한국 코호트에서 2.04배, 일본 코호트에서 2.82배 높은 경향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 연구팀은 장 운동의 기능적 저하가 알츠하이머병의 병태생리를 악화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
신체의 노쇠 신호
노인의 변비는 단순한 소화 문제가 아닌 신체의 노쇠 신호일 수 있다. 장일영·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임지혜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만 65세 이상 노인 1,300여 명을 대상으로 변비 여부와 신체 노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신체 노쇠 노인 중 변비 환자 비율이 건강한 노인보다 4배 이상 높았다.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은 강원도 평창군 보건의료원과 함께 강원도 평창군에 거주하고 있는 만 65세 이상 노인 1,277명의 변비 여부와 신체 노쇠 정도를 조사했다. 변비 여부는 국제 변비 진단 기준을 활용해 복부 통증 빈도, 배변 빈도, 변의 모양 등을 설문 조사했다. 신체 노쇠 정도는 주관적 피로감, 낮은 활동성, 보행 속도 및 악력 저하, 몸무게 감소를 종합적으로 분석 평가했다. 그 결과 전체 조사 대상 노인 중 344명(약 27%)은 건강했고, 738명(약 58%)은 노쇠 전 단계, 195명(약 15%)은 노쇠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노인 중 136명(약 11%)이 변비 환자였다. 건강한 노인의 경우 변비 환자가 약 4.4%(344명 중 15명)인 반면 노쇠 노인은 약 18.5%(195명 중 36명)로 약 4.2배 높았다. 노인 변비 환자들은 주관적 피로감, 활동성, 보행 속도, 악력 저하, 몸무게 감소 등 노쇠 세부 지표에 해당하는 비율도 최소 1.1배에서 최대 1.7배 더 높았다.
신체 노쇠는 노화 축적에 의한 결과로, 신체 기능이 떨어져 향후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거나 낙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증가된 상태를 말한다. 노인이 신체가 노쇠해지면 결국 여러 질환으로 이어져 병원 입원 기간이 길고 장애 발생 위험, 치료 후 합병증 발생 위험, 사망 가능성 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통계, 연구 결과도 있다.
변비와 신체 노쇠는 부족한 신체 활동량, 영양 섭취 불균형, 수분 섭취 부족 등으로 인해 생긴다. 원인이 비슷하다 보니 변비와 신체 노쇠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왔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정확한 상관관계가 분석됐다.
이밖에도 배변 장애는 각종 질환의 위험신호일 수 있다. 만성 변비일 때 대표적으로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다. 대장암은 결장과 직장에 생기는 모든 악성 종양을 말한다. 종양이 항문과 가까운 곳에서 발생하면 변비가 나타나거나 변이 얇아질 수 있으며 배변 후에 시원하지 않은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보통 대장암 초기에는 증상이 없다가 암이 진행되면서 혈변이나 설사, 변비 등 각종 배변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복통이나 복부팽만, 소화불량 같은 증상도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다.
자궁근종 또한 월경과다, 골반 통증, 빈뇨 등과 함께 변비 증상이 나타난다. 자궁근종은 자궁근육 세포가 에스트로겐 등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비정상적으로 증식하고 성장하는 호르몬 의존성 질환이다. 여성에게 발생하는 종양 중 가장 흔한 양성종양으로 35세 이상 여성의 40~50%에서 발견된다. 대장내시경 등을 통해 증상이 전혀 관찰되지 않는데 변비와 함께 복통이나 복부 팽만감 등의 불편이 만성적이라면 과민성대장증후군일 수 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원인이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배변 장애다. 만성적 통증은 물론 삶의 질이 현저히 낮아지며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설사, 변비, 가스 등의 특정 배변 장애를 갖거나 복합적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