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임신중이라면 화장품이나 장난감 등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제품도 조심해야 한다. 화장품, 비누, 장난감, 음식 포장재, 플라스틱 용기, 충전기 케이블, 의료기기 등에 광범위하게 들어있는 내분비계 교란물질 성분이 태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성인기까지 영구적인 손상
서울대병원 환경의학클리닉 홍윤철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에 노출된 태아는 아동기 때 성장이 저해될 수 있다. 임신 중 프탈레이트에 노출되면 출생아가 기대되는 체중만큼 도달하지 못해 정상적인 성장을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내분비계 교란 물질 중 하나인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과 생활용품에 널리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다.
특히, 남성호르몬의 작용과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저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성조숙증, 갑상선 기능 이상 등 어린이의 건강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당뇨, 비만 등 성인병과 연관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임산부가 환경호르몬에 과다 노출되면 자녀의 생식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한양대 생명과학
과 계명찬 교수가 임신기간에 프탈레이트의 일종인 DEHP를 주입한 생쥐와 임신 도중 DEHP
에 노출되지 않은 생쥐의 새끼를 비교한 결과 이같이 확인됐다. 분석 결과 DEHP에 노출된 어미가 낳은 암컷 새끼는 생식능력이 20% 가량 떨어졌다. 미국 일리노이대학 수의학과 고제명 교수 연구에서도 임신 기간에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프탈레이트를 다량 섭취한 생쥐가 낳은 새끼 중 수컷은 불임률이 일반 생쥐보다 3배까지 높았다.
부산대학교 연구진은 임신 중 초기 신경 발달 시기의 환경호르몬 노출이 성인기 뇌에서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분자생물학과 정의만 교수 연구팀은 ‘내분비계 교란물질’(EDCs)이 임신기 및 수유기에 노출되면 정상적인 뇌발달을 방해하며 성인기까지 영구적인 손상을 낳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하대병원 이동욱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어린이들이 6세가 됐을 때 채혈한 피에서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해 특정 유전자가 켜지거나 꺼지게 만드는 화학적 변형 과정인 DNA 메틸레이션 정도를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후생유전학적 노화 지표가 생활연령과의 차이를 계산했다. 이 결과 임신 중 및 생애 초기 대기오염 노출이 아이들의 후생유전학적 노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됐다.
일상생활에서 내분비계 교란물질의 노출을 완전히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활습관을 바꾸면 노출을 줄일 수 있다. 식약처의 가이드에 따르면 물을 자주 마시는 습관이나 환경호르몬을 땀으로 배출시키는 운동은 도움이 된다. 또 합성수지제 중폴리염회비닐 재질로 돼 있는 랩은 프탈레이트류와 같은 가소제 성분이 용출되지 않도록 100도를 초과하지 않게 해야하고 지방이나 알코올 성분이 많은 식품과 직접 접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뜨거운 음식이나 액체는 가능하면 유리, 도자기, 스테인리스, 내열 온도가 높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사용한다. 화학 성분이 들어가는 제품 대신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을 사용하는 등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게 좋다. 화장품 사용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향수와 방향제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태아 뇌에 축적되는 미세플라스틱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 같은 오염물질 또한 임산부라면 조심해야 한다. 부산의 한 대학 연구팀이 심각한 오염물질로 인식되는 미세플라스틱이 태아 때부터 뇌에 축적돼 신경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불안·우울, 사회성 결여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신경발달은 뇌가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뇌는 경험과 자극에 반응해 언어·인지·감정조절 등 다양한 능력을 형성한다. 신경발달이 일어나는 시기에 유전적·환경적 원인으로 입은 중추신경계의 손상은 신경발달장애를 유발한다.
타고난 유전적 원인과 달리 환경적 원인은 화학물질을 비롯한 오염물질의 노출 및 생체 축적, 성장 과정 중의 경험 및 스트레스, 보호자와의 관계 등 다양한 양태를 보인다.
정 교수 연구팀은 환경적 원인 중 미세플라스틱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플라스틱 제품의 물리·화학적 분해를 통해 생성된다. 미세플라스틱은 직경이 5㎜ 이하의 플라스틱을 말하며, 직경이 1㎛(마이크로미터, 0.001㎜) 이하인 나노플라스틱도 포함한다.
연구팀은 미세플라스틱을 신경발달장애 유발의 환경적 원인으로 분석하고자 미세플라스틱의 노출이 신경발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현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미세플라스틱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음을 감안해 생애 전 주기에 걸친 연구를 수행한 것이다. 신경발달이 활발히 일어나는 태아기부터 성인기까지 지속적으로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 환경에서 결과치를 분석하고자 임신한 쥐에 미세플라스틱을 노출시키고 미세플라스틱의 노출이 자손 쥐의 신경발달과 자란 후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미세플라스틱이 태아의 뇌에 축적될 뿐만 아니라 자손 쥐의 젖먹이 시기에 모체의 유선을 통해 지속적으로 뇌에 축적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또 태아 쥐의 뇌에서는 신경발달 관련 유전자의 발현이 감소했고, 태아 및 성인 자손 쥐에서 뇌 기능 조절에 관여하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감마-아미노뷰티르산(GABA)수용체 ‘subunit’ 중 하나인 ‘Gabra2’의 유전자 발현이 유의성 있게 감소했음을 관찰했다.
이렇게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 임신 쥐의 자손은 불안 및 우울 장애, 사회성 결여와 같은 비정상적 행동이 유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미세먼지를 비롯해 대기오염 지표가 나쁜 날 임산부의 외출은 제한될 필요가 있다. 서울대 의대 환경보건센터 연구팀은 임신 중 미세먼지 노출이 심할수록 선천성 태아의 기형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서울대 의대 환경보건센터 연구팀은 0-6세 선천성 기형 아동 15만 명을 대상으로 태아 시기 초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 노출과 선천성 기형 발생 위험도간의 상관 관계를 분석한 결과 초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의 노출은 출생 후 선천성 기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신 초기와 중기에 초미세먼지(PM2.5)와 이산화질소(NO2)노출이 선천성 기형의 위험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