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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 사건' 당시 민간인 439명 희생

김명완 기자  2009.01.08 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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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는 저녁 10명 내외의 산사람 행색을 한 사람들이 마을에 와 강 반장이라는 사람의 집에 들렀어요. '예전에 밥을 해줘 고마워 은혜를 갚겠다'고 하며 밥을 해준 사람들의 집을 알려달라고 한 거지. 강 반장은 몇 사람의 집을 알려주었고 …." = 세동마을 박○○(75) 씨 진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아래 진실화해위)는 전남 순천지역에서 1948년 발생한 여순사건과 관련해 민간인 439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 희생된 사실을 밝혀냈다.
'여순사건'은 육군본부가 여수 제14연대에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해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자 1948년 10월 19일 이에 반대하는 소속 군인 2천여 명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들 반군은 여수와 순천을 비롯해 전남 동부지역까지 장악하였으나 정부군의 진압작전이 본격화되자 지리산·백운산 등지로 쫓겨 들어가 한국전쟁 전까지 이른바 '구빨치(야산 유격대)'로 활동했으며, 순천지역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의 민간인들이 반군에게 협조했다는 혐의로 군경에 의해 집단 살해됐다.
진실화해위는 '순천지역 여순 사건'을 『보안기록조회회보서』,『사실조사서』등 관련 정부기록 등의 자료조사를 통해 관련 희생자를 확인했으며, 사건의 생존자·목격자 등을 비롯해 진압에 동원된 당시 국군 제2연대 등 정부군 장교 및 사병, 경찰에 대한 진술조사를 실시했다.
진실화해위는 이 조사에서 순천지역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의 민간인들은 이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국군 제2·3·4(20)·12·15연대 소속 군인과 순천경찰서 경찰에 의해 집단 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1948년 11월 4일 이승만 대통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발표한 '경고문'에서 "남녀아동이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여, 반역적 사상이 만연하지 못하게 하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대통령의 경고문이 진압작전 지휘관으로 하여금 민간인을 상대로 무리한 진압작전을 펼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반군이 진압된 뒤에도 반란 동조자 색출이란 이름하에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더구나, '여순사건' 진압 뒤 정부군은 빨치산 토벌작전 과정에서 민간인의 귀, 손가락, 목을 잘라 허위로 전과를 보고하거나, 반군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민간인의 일가족들을 사살하는 등 법적 기준이나 근거 없이 민간인 살해를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나 당시 군인들의 야만성에 대해 떠돌던 소문이 진실로 밝혀진 것이다.
서면지역에서는 반군 및 빨치산으로 위장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했는데 세동마을 박○○(75) 씨는 "예전에 밥해준 은혜를 갚는다"며 이들이 누군지 알려달라는 군·경의 요청에 한 주민이 당사자들을 알려주자, 이날 밥을 해준 것으로 밝혀진 마을 주민들은 여자와 아이를 포함한 가족까지 전부 인근 앵기산으로 끌려가 몰살당했다고 진술했다.
승주읍 유흥리에서 경찰은 반군을 수색하는 과정 중 당시 16세였던 정○○ 씨를 겁탈하려다 가로막던 어머니를 사살로 인해 태어난지 100일도 안된 정 씨의 동생은 어머니의 젖을 먹지 못해 4개월 뒤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서면지서 학구출장소 ᄀ○○ 씨는 민간인에 대한 집단 사살행위가 "치안확보를 위해 불가피했던 일"이며, "군·경이 혐의가 있는 민간인을 기소하지 않고 즉결처분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였고, 즉결처분을 자제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고 즉결처분행위 대부분을 진술했다.
특히 정부군은 빨치산에 협조한 혐의를 받던 민간인을 처형할 때 그들의 친인척으로 하여금 살해하도록 한 경우도 있어 만행이 극치에 다달았음을 알 수 있다.
희생자들은 반군에게 숙식을 제공했다거나 작전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와 반군에 가담했다는 혐의, 무고·모략 등의 이유로 희생됐으며 이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연행과 불법적인 취조·고문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으로 순천지역 희생자는 439명으로 확인됐으나,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거나 사건이후 멸족된 사례 등을 고려하면 실제 희생자 수는 2천여 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군·경이 민간인을 살해 근거로 내세운 계엄령에 대해 당시 법적 근거도 없이 계엄법이 공포되었다고 밝혔으며, 현지 지역 사령관은 자의적 판단아래 민간인을 반란 동조자라는 혐의만으로 불법 연행해 살해했는데 이는 설령 계엄령을 인정한다더라도 그 한계를 벗어난 명백한 학살 행위라고 밝혀냈다.
또한 계엄령 아래 군·경의 민간인 살해 방편이었던 '즉결처분권'에 대해서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을 대상으로 집행했고, 일반적인 군율조차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학살'이라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은 한국사회 반공체제 형성의 계기가 된 여순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60년은 여순사건을 기점으로 형성된 '여순체제' 60년이었다"면서,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바로 알려면 반드시 여순사건을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여순사건'과 관련한 순천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이 현지 토벌작전 지휘관의 명령 아래 발생했지만, 최종적인 감독 책임은 국방부, 그리고 대통령과 국가에 귀속된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유족에 대한 사과와 위령사업의 지원, 군인과 경찰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 등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고, 여수를 비롯한 고흥·보성·광양지역의 '여순사건' 조사를 올해 상반기에 마무리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