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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영혼을 움직이다

정춘옥 기자  2009.04.09 0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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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누설’ 등 히트 역술서의 저자, 한 세대를 풍미한 동양철학가로 유명한 도인 안중선(63) 씨가 ‘칡서’라는 영혼의 예술로 미술계에 뜨거운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내공과 신필 경지의 필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기(氣)그림’. 과연 어떤 매력으로 아시아를 사로잡았을까.
‘인류 최초의 붓’으로 알려진 칡붓으로 염원과 기를 담아 단숨에 써내려간 안씨의 작품은 그림과 글씨의 중간쯤에 존재한다. 처음에는 강렬한 비주얼의 미학과 에너지를, 가만히 바라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안씨 작품의 묘미다. 고대 주술사의 부적에서 시작된 ‘칡서’의 세계 유일한 계승자인 안씨의 ‘기그림’은 자유로운 영혼이 비상하는 듯, 불사르는 듯한 원초적이고 열정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심오한 철학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재치가 넘치는 것 또한 매력이다.
이 같은 안씨의 작품 세계는 추종자를 만들어냈고, 일본인들의 감성과 맞아 떨어져 바다를 건너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안씨의 칡서전은 최근 6개월간 네 차례나 열릴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고대 주술사의 부적을 현대적 예술로 재현한 안씨의 작품에서 일본인들이 실제로 영험한 경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 ‘칡서’를 통해 소원이 이뤄졌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안씨의 ‘기그림’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안씨의 작품에 매료된 한 일본인에 의해 현지 상설 전시장이 추진 중에 있을 정도다.
최근 ‘그림 속 그림- 안중선 기그림 12지신 전시회’가 열린 서울 인사동 갤러리 서호에서 만난 일본팬은 “기가 느껴진다” “우울증이 치료됐다”는 안씨 작품에 대한 현지 반응을 생생히 전달하기도 했다.
안씨가 처음 ‘칡서’를 만난 것은 열여덟 살 때다. “자장면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 중국집을 드나들다 ‘칡서’를 배웠죠. 인천 차이나타운의 한 중국집에서 늘 술에 취한채 수타를 치는 사람을 만났는데 학식이 대단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 마지막 신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칡서’를 배웠죠. ‘칡서’에 담긴 우주만물의 이야기가 저를 매료시켰죠.”
‘칡서’는 문자와 종교의식이 밀접히 연관돼 있던 고대 신화시절에 태동한 영험한 서체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기원하던 각종 의식에 사용됐던 최초의 점서인 갑골문자와 상형문자를 서체화시킨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이고 심오한 영적 세계에 부흥한 것으로 동양 신비주의의 근원이자 우주 에너지 암호문자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영혼의 서체는 인구의 밀집과 실용적 세계의 도래에 맞춰 점차 맥이 끊기게 됐다. “당나라 때부터 황모붓이 대중화되면서 칡으로 만든 붓이 사라졌고 조선의 경우는 추사 김정희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 안씨의 설명이다. 안씨가 완전히 맥이 끊긴 ‘칡서’를 극적으로 계승한 셈이다.
안씨는 국전 심사위원이었던 근당 양태동 선생을 비롯한 여러 대가로부터 전통적 서예를 사사하고 태고의 갑골문자 상형문자 전서체에 대해 연구함은 물론, 동양철학을 집대성해 ‘칡서’를 완성했다. 안씨는 “붓 돌리는 것만 배우는데도 3년이 넘게 걸린다”고 말했다. 미술계의 숱한 저명 인사들이 ‘칡서’를 배우려 안씨를 찾아왔지만 중간에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안씨의 ‘기그림’은 40여년의 학문과 수련의 결정체인 것이다.
5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또 다른 전시가 예정돼 있고 중국에서의 전시 또한 기획중이다. 안씨의 ‘기그림’은 남과 다른 삶을 사는 기인이지만 묘하게도 대중과 쉽게 소통되는 그의 세계관과 닮았다. 난해한 듯한 그의 작품은 마음을 비우고 들여다보면 어린아이도 감상할 수 있을 만큼 천진한 자유로움이 있다. 그만큼 순수하고 원초적인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마력의 ‘칡서’가 아시아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는 이유며, 이것은 또한 안씨의 예술적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