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네 사장님 잘 알겠습니다. 오늘 저녁 확실한 계약마무리를 위해 딱 한잔 어떠신지요” 제지회사 중견간부 류 상무의 오늘 저녁은 또 한번 이렇게 ‘역시나 처럼’ 술로 귀결되어진다. 제법 쏠쏠한 거래선 유지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어떠리’로 무장하고 나서야 하는 매일 저녁, 그에게 아내와 2남2녀의 가족이란 내가 죽어서라도 부양을 책임져야할 이 시대 모든 남자들의 부메랑이다. 낮에 다녀 온 거래처에서 마신 커피만도 벌써 20여잔째. 단골병원의 의사는 책상 밑에서 노란종이를 펼쳐들며 “위궤양.. 이거 마지막 경고입니다‘라고 친절하게 외쳐 주었건만, 류 상무의 24시는 그 외침에 한번 귀 기울일 사이 없이 종점으로 향하는 폭주기차처럼 쉼표하나 없이 진행되어졌다. 식도로 역류하는 신물의 쓴 맛을 사흘째 경험하고 나서야 그 사십대 후반 청춘의 기차는 더 이상 전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열심히 일한 당신, 위궤양 가지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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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올해 68세의 류재춘 장로에게 이 도메인은 새로운 이정표이다. 그 이정표의 주소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오원1리,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 인근의 4만평 농원. 젊은 시절 목숨을 담보로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그 모진 담보를 해지하고 새로운 생명을 상환받으려 미리미리 준비한 땅이다. 오랜 직장생활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자 귀농을 결심하고 이곳 새말지역에 다랭이논 천수답 4만평을 사놓은 것이 오늘을 이룬 것.
다행이다 생각되는 것은 그의 나이 40세 되던 해, 옥천의 고향땅이 대청댐 건설로 고향의 선산과 농지 일부가 수몰되어 보상금을 지급받게 되자 다른 생각을 두지 않고, 고향인 충북 옥천 지역과 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농장터를 구하고자했던 노력이다. 마땅한 곳이 없던 터에, 평소 동경하던 강원도의 깊은 산과 울창한 숲 그리고 풍부한 물에 매력을 느껴 치악산 줄기 매화봉 밑에 작은 산과 농장 등을 은퇴이후를 대비해 미련없이 구입해둔 것.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이후 12년의 세월이 흘러 샐러리맨 생활과 주말 전원생활을 동시에 유지하다 정작 이곳에 정착한 것은 17년 전 일이다. 교사직 6년에 제지회사 중견간부로 52세 때까지 그야말로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젠 위궤양으로 떠나라“는 말을 통보 받고, 뜻하지 않은 은퇴가 일찍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88년도부터 몸이 극도로 악화되자 회사에 사표를 내고 2년간 준비 끝에 내린 결정으로, 이곳에 정착한다. 병원에서도 포기한 병을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에게 상의하자 목사님은 주저없이 깨끗한 치악산의 물치료를 권유하기에 준비해 둔 땅으로 남은 인생을 귀농에 귀의한 것이다. 이 자연친화적 물치료를 통해 6개월 뒤에는 뚜렷한 호전증세가 나타났다. 그만큼 이곳 치악산의 수질이 가재가 서식할 만큼의 1급수라는 것을 증명한다. 깨끗한 물이 인간에게 왜 중요한 것인지의 역설처럼 말이다.
▲ 치악산의 1급수가 나를 이곳 새말에 이끌다
류재춘 대표역시, 도시인들의 흔한 방법처럼 처음에 이 땅을 구입해 놓았을 때엔 대리인을 두고 사슴이나 흑염소 등만을 사육하다 지난 1992년에서야 본인이 직접 관광농원으로 개업을 했다. 그에게는 조촐한 출발이었지만 ‘너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성경구절처럼 도약이 그 안에 웅크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이의 배경에는 1984년 농림부에서 특별법으로 농촌관광사업법을 제정하여 관광농원을 실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소득이 낮은 농가들의 농외소득으로 농어촌정비법을 신설 농가지원에 나선다는 정부시책이 제시된 것. 그러나 그 당시, 관광농원의 이론적 뒷받침은 대학 강단의 교수진으로부터 나왔으나 실행에 있어서는 상당부분 시행착오가 뒤따랐다. 정부측 역시 온갖 규제가 무성해 관광농원이 제자리를 잡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단적인 예가 재래식화장실이다. 방문객은 수세식화장실에 익숙한 도시민들인데 그들에게 재래식화장실을 쓰게 한다는 것은 고역이었을 것. 그 후 관광농원 운영자들의 지속적인 건의로 많은 부분이 법으로 개선되어 오늘의 관광농원이 제대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 사단법인 관광농원협회가 신설되자 류 대표는 창립 때부터 부회장직 역임하다 2기 때에는 회장으로 계속 재직하면서 올해부터는 상임고문으로 물러나 2선에 앉아있다. 지난 96년에 그는 농어촌 정비법의 대폭개정으로 관광농원경영자가 자율사업자로 인정되면서 정부차원의 지원이 줄어드는 고행을 겪을 때, 많은 농원대표들을 격려로 이끌고 지금까지 끌어 온 근성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관광농원업계의 종사자에게 IMF 시기는 암초의 시기였습니다. 가뜩이나 자율사업자 지정이후 경영에 민감해진 시기에 국가경제위기가 찾아오고, 일부 과잉투자자들이 금융부담 때문에 줄줄이 도산하는 것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 과정은 결국 98년도부터는 관광농원사업이 새롭게 시작하는 모티브 역할을 해주는 역지사지가 있었기에 결과론적으로는 다행이었지만요.”
이 암울의 시기를 거쳐 전국적으로 450여개의 관광농원이 존재하는 농원르네상스가 대를 잇는다. 그러나 일부 농원들이 러브호텔이나 음식점 전용으로의 편법경영이 드러나자 정부에서는 일제심사를 통해 등급사정을 하게 이르고, 이 등급발표에 따라 현재 1등급 농원은 전국적으로 68개소. 협회 홈페이지에 떠있는 대부분의 농원이 거의 1등급 수준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 전하는 것을 봐서 그것은 실질적인 톱클래스 관광농원을 상징하는 하나의 이면사례일 것이다.
▲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심히 창대하리라’는 자신의 믿음을 믿다
원주 새말의 토지 4만평을 조성하여 사슴 및 흑염소를 사육할 당시, 류재춘씨는 서울 롯데호텔과의 인연으로 마을 청년들 몇 명을 취직.알선시켜 줌으로써 이후 마을주민들과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또한 사슴사육장에 동료 및 서울 친구 및 친지들이 자주 방문한 탓에 서서히 새말농원이 입에서 입으로 소문나기 시작하는 과정을 겪기도 한다. 이에 류 대표는 어차피 경영이라면 ‘제대로 하자’며 관광농원 선진국인 일본 프랑스 독일 등지로 선진지 농장에 대한 실사확인 및 견습을 통해 관광농원이 한국 농촌미래산업의 한 축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곧바로 귀국 후에는 청년시절부터 다니던 교회의 교회장로로서 많은 교인들을 초청하여 관광농원에 대한 좋은 선입견을 부각시키는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던 것. 오히려 류 대표의 이런 적극적인 고객유치는 농장사업에 대한 신념과 확신을 지니게 만들었으며, 이로써 다시 서울로 상경하는 것을 포기하는 완전귀농인의 사유이자 귀농원년이 되기도 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하면 이곳에 원래 있던 다랭이논 108개와 천수답을 다 없애버린 것이 후회가 됩니다. 지금 같으면 좋은 관광매개체일 것이고 농촌체험에 딱 알맞은 지형조건이 되었을텐데...” 어쨌거나 류대표의 관광농원은 성공경영 대표사례로 당시 동아일보 한 면을 장식하는 모델케이스로 손꼽혔다. 그 홍보에 힘입어 1년에 3만5천에서 4만명의 내방객이 찾아오자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보잘 것 없는 농촌관광이 국가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관광농원사업으로서의 귀농을 홍보하는 계기가 된다.
▲ ‘관광농원은 러브호텔이 아니다’라는 분명한 원칙과 싸우면서..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새말관광농원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먼저 이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중산층이거나 서민들이 주요 방문객인 것을 감안, 나름대로 그 컨셉에 맞는 시설유치나 활용가치를 창조하는 작업을 홍보와 더불어 병행한 결과라고 보아야한다. 러브호텔 개념을 탈피하기 위해 개인이나 연인위주의 내방객보다는 단체손님 위주로 접객을 정했기에 남녀간의 입실과 예약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받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고수했다. 또한 단체접객에 적합한 고객을 물색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소속직원이 많은 대기업들의 극기훈련이나 농촌체험 프로그램 환경보전교육 연수생 유치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후 삼성그룹이나 LG그룹이 자체 연수원 활용으로 이곳으로의 내방이 다소 뜸해지자 고객유치전략을 바꿔 지금은 중소기업 40~50명 단위의 연수훈련유치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여름철에는 종교단체의 하계 수련회로 30~40일간 지속시키는 계절별 이벤트 유치사업도 병행하고, 봄철에는 산나물캐기 등으로 아파트 부녀회와 자매결연 맺어 많은 이용을 낳고 있다. 유치원단위의 고객유치전략은 지난 99년 씨랜드사고의 여파로 한때 힘들기도 했지만, 안전성을 적극 홍보하여 새말농원 나름의 프로그램인 ‘씨앗줍기’ ‘올챙이잡기’ 등으로 전화위복을 일구기도 했다. 아울러 가을철엔 밤나무단지 추수캠프로, 밥줍기, 고구마 캐기, 김장 담그기 등 추억프로그램으로 각 구청 사회복지관 주선과 연계하여 노인 30여명 단위의 방문객을 맞기도 한다.
사계절중 가장 비수기인 겨울엔 초창기 손을 놓고 있었으나, 인공강설기까지 구입하여 눈썰매장을 개설하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3년전부터 인근에 스키장들이 부설 썰매장을 운영하면서 이용이 다소 뜸해지는 시대적인 부작용에 적응하고자 지금은 자연 강설일 때만 눈썰매장을 개장하는 경제원칙운용도 부려본다고 류 대표는 웃는다. 그것은 관광농원이 자율사업자로 분류되면서 면세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관계로 강설기를 운용할시 연료 3드럼 소비로 인한 난방유류비의 급증을 감당키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전기공급도 농업용이 아닌 상업용이기 때문에 친자연친화적인 프로그램 주력에 아이디어를 쏟고 있다.
▲ 지역원주민은 ‘그냥 이웃’이기 전의 진정한 사업파트너이기에..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지역적 공존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원주민과의 원만한 관계유대를 위해 류 대표는 지역과의 다양한 연계프로그램을 중시한다. 먼저 새말 인근 동네 노인들을 초청하여 경로잔치 및 농산물 생산실습장을 임대해주는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또 하나, 류 대표의 농원에서는 자체 농산품을 일절 판매하지 않는 뚝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 돈 몇 푼 더 벌자고 ‘나만 잘 살아보자’라는 식은 위험하다는 그의 뚝심에서이다. 그래서 인근 농가들에게 연락해 농원입구에 따로 마련한 농산품 판매코너에서 지역민들의 상품을 진열해 놓고 그들이 직접 판매하게 하여 주변 농가들의 소득증대에 일조하는 일석이조, 더불어 사는 공존의 장을 연 것이다. 이를 계기로 류 대표는 정부로부터 철탑산업훈장을 수여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고 어디 류 대표 뜻대로 다 움직이었으랴.. 그만의 고민은 또 따로 있었다.
먼저, 지역주민과의 화합이었다. 그는 이 화합의 중요성 때문에 귀농학교에 강의 나갈 때마다 주변농민들에게 반감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고 수강자들에게 역설한다. 자동차도 좋은 것 쓰지 않고 들어가 살집도 튀어나지 않게 이웃과 동등한 정도의 집을 건축하라고 장려한다. 둘째, 농촌에 젊은 층이 엷어 노동력의 부재가 아쉽다고 전한다. 이는 대한민국내의 많은 젊은이들이 귀농을 통해 멋진 미래를 만들 수 있을거라고 정부가 더 적극적인 홍보를 아끼지 않아야 하며 정부시책도 이에 뒤따라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셋째, 금융부담의 효율화로 장기저리 정책자금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류 대표는 3년 전에 모든 상환이 끝나 지금은 가벼운 마음이지만 작금의 농원협회회원들은 융자가 절실하다고 구구절절 입을 모으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아무리 어렵다 할지언정 빚은 많이 얻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것은 한번의 연체가 주는 부메랑효과가 엄청나다는 자신의 경험담에서 나온 이야기. 농원경영 애환의 마지막 요인으로는, 도시인들의 농촌관광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라는 것. 주 5일제 근무로 인해 부쩍 수요가 늘었지만 일반관광보다 조금은 다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일례를 들자면 내방객들이 음식을 조리해 옴과 동시에 이곳 산지에 즐비한 과일까지 모두 싸들고 오는 것은 농촌체험관광이라 생각한다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곳에서 지역민의 생산 작물로 내방객이 음식을 직접 해먹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농촌체험임을 강조한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는 간식도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옥수수나 삶은 감자 등을 적극 권유한다. 안내문을 통해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수박이나 과일 등은 가급적 반입을 금해줄 것을 정중히 부탁하면서 이를 대신해 지역민들의 생산해낸 농산품과 산지과일을 이용토록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것만이 참다운 의미의 농촌체험관광을 이룰 수 있음과 동시에 농촌을 돕는 시너지효과가 상생의 힘을 얻게 할 것 이라고 그가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부 젊은층 주부나 아가씨들이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농장에 방문하는 것을 종종 목격하면서, 좀더 편안한 차림으로 농촌의 넉넉한 풍경을 감상하면서 겉모습을 버린 재충전의 휴식이 되어 줄 것을 그는 정중히 부탁한다.
▲ “노땡큐! 아이스크림과 미니스커트”에의 정중한 권유
일련의 과정을 거쳐 류 대표의 새말농원은 성공의 반열에 현재 서있다.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에 대한 성공한 사람으로서의 조언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관광농원에 대한 문의 전화의 80퍼센트는 농지소유가 필수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하기를 관광농원을 하기 이전에 소규모로 농촌정착실습을 한 다음 대규모의 농원을 운영토록 권유한다. 도시처럼 영업위주의 생각은 위험하다. 차라리 돈을 벌려면 도시에서 포장마차를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관광농원시설의 63퍼센트 가동률이 손익분기점인 현실로 볼 때, 대다수가 그러지 못하는 불행을 안고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40퍼센트 가동률만으로도 농원운영 1등급업체가 되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한다면 성공은 여러분의 노력 좌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당장의 이익이 없어도 현상유지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정부가 장려하고 있는 녹색농촌체험마을, 생태마을, 장수마을, 마을단위의 특색있는 가치발견으로 각자의 개성에 맞는 맞춤경영을 권하고 싶고,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림부의 조언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최선의 안전장치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역시, 정부시책에 대한 불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가보다. 인터뷰 말미에 조심스레 꺼내놓는 불만은 다름 아닌 관광농원사업의 개인사업화 정책이다. 농원운영이 자율사업인 관계로 다른 정책마을사업에 비해 정부에서 일정부분 소외된 느낌이라 전하는 것. 최근엔 농림부의 홍보순서에서도 거의 맨 마지막 위치에 서있는 느낌을 받으며 관광농원 선두경영자로서 후배양성에 애를 먹는다고 토로한다.
요즘 관광농원은 음식점 운영에만 주력하는 것 같아 씁쓸하고, 일부 펜션 업주들이 관광농장을 가장한 채, 임대업을 목적으로 주로 신청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며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엔 농림부가 주관하고 허가해준 관계로 심사가 엄격했지만, 현재는 각 지자체장이 결재권을 갖고 있는 관계로 일부 난개발현상도 발생하고 편법운용사례도 많이 발견된다고 우려를 토로한다.
▲ 1년에 지인 2천명을 초대했다고? 그럼 이미 당신은 성공!
이렇게 치악산 1급수의 깨끗한 물로 건강을 돌려보겠다고 귀농한 류재춘씨는 이제 엉뚱하게도 관광농원사업의 대표가 되어있다. 그것도 연 수익 2억원이상의 관광농원주인으로서 말이다. 이 분야의 선구자로써 관광농원을 희망하는 귀농자에게 들려줄 말이 있다면 무언지를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젊다면 농촌에 투자를 하라고...” 또 “1년안에 당신의 지인이나 친지, 친구 등을 2천명이상 초청할 능력이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농원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건강회복을 계기로 20년 가까운 세월을 농원사업에 임했던 류재춘 대표, 그는 늘 베푸는 자세의 겸비가 최고의 덕목이었던 이 시대 마지막 농장주일지 모른다. 하지만 도시의 내방객과 지역농민들에게서 동시에 진정한 인정을 받는 계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일회성의 공중파매체나 각종 언론매체에서의 홍보효과는 단지 일주일치의 효과일 뿐이지만 당신의 가슴을 열어 보이며 손짓하는 마음열기, 즉 ‘오픈 유어 마인드’가 있는 새말관광농원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그들 스스로가 알아서 묻고 찾아오는 현상의 전설을 낳기에 더욱 그렇다. 그가 생각하고 실천한 관념들이 ‘귀농을 희망하는 당신의 철학’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래서 더 역설적인 설득이다.
서울의 아파트와 주택 4곳을 처분하여 이곳에 남은 여생을 투자하겠다는 류 대표. 그는 도시민의 현란한 삶과 도시의 편리함을 잃었지만, 대신 밝은 네온과 몇 푼의 돈과 바꿀 수 없는 돈 가치 이전의 건강이라는 귀중한 결과를 얻었다고 자부한다. 이제 돌아보건대 자신이 일구어 낸 자연은 멋진 삶이라는 것을 만나게 해주었고 인생의 후반전에 엮어지는 행복의 유효기간은, 류 대표의 건강한 인상안에서 이미 승부를 떠난 인저리타임 같이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