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현장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임시로 마련된 분향소에 많은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참사현장 앞 가로등에 누군가가 걸어놓은 시 구절이 조문객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다.
누가 걸어놓았는지 누가 쓴 시인지 주변 관계자들이나 기자들에게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알아내지 못했다.
나는 죽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차디찬 겨울 아침, 용산의 철거직전 빌딩 꼭대기에서 죽었습니다.
내 몸에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내 몸이 익어가는 냄새를 내 코로 맡으며
내 몸이 뚝뚝 녹아떨어지는 것을 내 발등으로 느끼며
나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래도 불에 타 죽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뜨겁게 죽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죽지 않았다면, 나는 이 차디찬 겨울 한복판에서
길거리로 내몰려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꼭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제 하늘나라에 가서 하느님이 왜 이렇게 일찍 죽었냐고 물으시면
대답을 해야 하니까요.
설마,
나를 불태워 죽인 그 무자비한 경찰들이
우리나라 경찰은 아니겠지요?
설마,
나를 불태워 죽인 그 무자비한 경찰들에게 강제진압을 명령한 자가
우리나라 경찰청장이 될 사람은 아니겠지요?
설마,
나를 불태워 죽인 그 무자비한 경찰들에게 강제진압을 명령한
경찰청장을 임명한 자가 우리나라 대통령은 아니겠지요?
아니라고 믿고 죽겠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대답해야 한다면
하느님에게 너무너무 쪽 팔릴 것 같으니까요
나는 죽었습니다.
죽었는데, 모든 게 끝났는데 사람들은 이제 시작이라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고 똑 죽어갈 것이고 합니다.
나 하나로 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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