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야 놀자

2003.10.20 0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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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야 놀자



오버 코미디와 비판 의식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퓨전 사극 ‘황산벌’




역사만큼 고정관념에 얽매인 분야가 있을까.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로 인식되기
쉽다. 더구나 역사 지식의 대중적 토대인 교과서는 통속드라마처럼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며 천편일률적으로 ‘잘난’ 인물이나 애국자가 주인공이니
대중의 머릿속에 역사는 위대한 것, 신성한 것, 혹은 지루한 것으로 굳어지기 충분했다. 이 같은 역사에 대한 전형화 된 관념은 그 무구한
‘민족의 역사’ 만큼이나 오랫동안 역사를 의식의 감옥 깊은 곳에 가둔 것 또한 사실이다.

역사가 장군의 갑옷 같이 무거운 엄숙주의를 벗기 시작한 것은 최근. 안방극장에 새 바람을 일으킨 퓨전 사극이 그 신호탄이라 하겠다. 그리고
드디어 역사의 메인 캐릭터에 속하는 계백(박중훈)과 김유신(정진영)이 걸쭉한 사투리를 쓰며 망가지는 본격 역사 코미디 ‘황산벌’이 나타났다.
획일화된 20세기를 반성하는 21세기의 문화적 징후들은 이미 ‘황산벌’의 등장을 예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 작품의 문화사적
의미가 크다.


교과서적 엄숙주의 유쾌하게 뒤집다

‘황산벌’의 대표적인 폭소 코드인 사투리는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로도 유용하다. 백제와 신라가 서울말이 아닌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썼을 거란 가정은 역사에 대한 그동안의 고정관념에 일침을 놓는 참신한 발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리얼리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백제와 신라가 현대 표준어를 사용 했을리도 만무하지만, 현재의 지역 사투리를 쓰지 않았음 또한 명백하다.

사투리가 곧 역사에 대한 진정한 고증을 의미했다면, 두 주인공의 어색한 사투리 연기 또한 흠집이 됐을 것이다. (일부 네티즌이 비난한 부여
출신의 계백장군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황산벌’에서 역사적 진실이나 사투리 연기의 사실성은 무의미하다.
이 영화의 사투리는 표준어로 상징되는 권력에 대한 반항의 코드면서 동시에, 가벼운 웃음으로 역사를 뒤집어 보겠다는 장난스러운 연출 의도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대학의 축제처럼 유쾌하고, 전투는 ‘개그콘서트’식의 우스꽝스러운 대결로 점철된다. 명랑 만화를 연상시키는 황당 에피소드들이 영화를
수놓는 웃음 폭탄이라는 점에서 ‘황산벌’은 웃음의 앞뒤를 따지지 않는 오버형 요즘 코미디의 흐름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황산벌’은 단순히 웃기는 영화가 되기를 거부한다. 전쟁이 집권자의 통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지역감정은 치밀한 정치적 계략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충성 애국 같은 이데올로기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등 웃음 뒤끝에 옅게나마 묻어 나오는 비판적 의식은 영화의 결정적
매력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기야” “호랭이는 가죽 땜세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세 디지는거예” 등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대사들 또한 여운을 남긴다.

사투리의 의미가 그렇듯,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계백과 김유신이 아니다. 역사의 아웃사이더인 백제병사 ‘거시기’(이문식)가 영화에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명분 때문에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계백부인(김선아)이 영화의 메시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실컷 웃었니? 마무리는 그래도 묵직해야겠지?

역사적 인물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보다 에피소드가 강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박중훈이 코미디 영화에 나와서 웃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만스럽다. 계백의 비장함은 역사의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황산벌’이 정작 코미디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역사적 리얼리티를 완전히 무시하고 장난처럼 웃기기만 하던 영화는 후반부에 와서 안면을 싹 바꾸고 피눈물을 흘린다. 패싸움도 강도도, 불륜도,
살인도 개그로 표현해내는 한국 코미디가 왜 마지막엔 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만은 벗어나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황산벌’은 웃음 따로 감동 따로인 한국 코미디의 고질적 문제를 답습한다. 실컷 웃다가 마지막에 우는 영화의 형식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 마지막의 눈물이 전반부의 웃음에서 차근차근 밟아온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감동적인 코미디는 드라마 속에
웃음과 눈물이 함께 녹아있는 법이다. 그것이 신파가 아닌 감동이다. 실컷 웃기고 갑자기 눈물을 요구하는 구성은 역사의 교과서적 해석 못지
않게 허구적이다.

한편, 이 영화는 지역에 대한 상투적 이미지를 이용해 역사의 상투성을 뒤집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코미디에 더 많은 의미 부여는 금물이겠지만,
‘황산벌’이 상당히 ‘의식 있는’ 영화로 포장돼 있기 때문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지역성에 대한 편견 또한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 만큼 뒤집어야
할 부분임을 말해두고 싶다.

하지만, 이 같은 단점들도 영화의 흥행요소로 작용할듯하다. 김유신과 계백의 캐릭터는 약하지만 연기는 사투리 구사를 제외하고는 훌륭하다.
진정한 주인공인 ‘거시기’ 이문식과 의자왕 오지명의 연기는 영화에 감칠맛을 더한다. 김선아, 전원주, 이원종, 신현준, 김승우 등 화려한
까메오를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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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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