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개봉 이후 올해 한국 영화 개봉작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 기록하면서 한국 영화 역사의 새로운 장을 쓰고 있는 ‘마더’의 봉중근 감독을 만났다.
남자 감독이 스토리를 쓰고 연출 한 걸까 싶을 정도로 모성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 영화를 기획한 계기나 경험이 있나.
꼭 살인 해봐야 살인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듯이 엄마란 존재, 모성에 대한 것을 나름 고민을 많이 했다. 나도 어머니가 계시니까 지켜봤던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이 영화의 출발점이 됐던 혜자 선생님의 모습, 또 혜자 선생님이 수십 차례 했던 여러 가지 어머니들의 모습들. 그리고 나 자신도 또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받았던 여러 가지 생각들 이런 것들이 다 믹스 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해 나갔다. 영화를 찍을 때는 또 혜자 선생님, 어머니 역할만 몇 십년 해 오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어머니이신 혜자 선생님과 시나리오를 보며 이야기하면서 선생님으로부터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촬영장에서 본 세 배우에 대한 코멘트를 해 준다면.
진구군은 외아들로 자라 그런지 사랑 받고 싶어 하는 타입이다. 본인의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었다. 그런데 진태 캐릭터상 그것을 표현하기 힘들었다. 동네의 터프한 양아치로서의 모습이 영화 속에 아로새겨 있지만 사실은 되게 깜찍한, 로맨틱 코미디를 찍어도 아주 잘 할 것 같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열한 거리’의 진구 씨를 보고 반해서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기를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극 중에서 보면 진구 군이 웃통을 벗은 채로 비 오는 날 김혜자 선생님과 일대일 대결을 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보면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는 약간 패륜에 가까운 반말을 하는데 그것도 원래 시나리오에는 ‘엄마가’ 였던 것을 ‘니가’ 로 살짝 바꿨는데 본인이 당황하지 않고 좋아하더라. ‘감독님 이거 제 느낌이예요, 입에 딱 붙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타고난 진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뻤다.
원빈 군은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다. 그게 상당히 중요했다. 배우로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모습이 아니라 실제 밥을 먹는 자리였다. 인간의 일상사에서 제일 많이 반복되는 것이 밥 먹는 건데 그런 자리에서 보니 완전히 사람이 다르게 보였다. 강원도 정선에서 산 속에서 뱀을 잡아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했다. 구렁이가 얼마고 하면서 뱀 가격을 다 이야기 하면서…. 그리고 테스트 촬영 할 때 시골에 갔는데 지방 로케이션, 논밭에 풀어 놓으니 원빈 군이 너무 좋아하면서 ‘여긴 그냥 제 동네 같아요, 저는 스튜디오 촬영이 싫어요, 감독님’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최대한 많은 로케이션을 찾아보려고 그때부터 노력을 했다. 시골의 공기, 시골 마을에서 진태나 극 중 도준이처럼 돌아다니는 할일 없는 청년들의 정서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어 내가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면 출소하고 나오면서 오다 괜히 가방을 휙 던지는 장면이 있다. 던졌다가 그것을 자기가 다시 줍는…. 원빈 군이 했던 애드립인데 그것을 보면서 아, 어릴 때 집에서 학교가 멀었을 것 같고 왠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신발주머니를 휙 던졌다가 자기가 다시 주웠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이 그 모니터를 보면서 확 떠올랐다. 이 영화에 나왔던 도준의 정서나 느낌들을 원빈 군 스스로가 표현해 주었던 것이 많았다. 그래서 참 고마운 친구다.
그리고 혜자 선생님에 대해서는 뭐라고 길게 말씀을 드리는 것보다 이미 접신의 경지로 몇 십 년을 살아 오신 분이 또 다른 업그레이드 된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우며 도전적인 일인지…. 뭐라고 수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는데 그 결과는 영화에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 작품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다른가.
영화를 온도에 비유할 수 없겠지만 훨씬 더 뜨거운 영화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제목을 ‘엄마’가 아닌 ‘마더’ 라고 정했나.
나도 처음엔 제목을 ‘엄마’로 생각했다. 엄마만큼 원초적인 단어가 없지 않나. 우리가 태어나서 누구나 가장 먼저 하게 되는 말이 엄마이고 해서 ‘엄마’라는 제목을 하고 싶었는데 2004년도에 ‘엄마’ 라는 영화가 있었다. 구성주 감독님의 영화였다. 고두심 선생님이 나오셨던. 그래서 바로 가까운 과거에 그런 영화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마더’라고 제목을 바꾸었는데 ‘마더’도 정을 붙이다 보니 나름 독특한 강렬함이 있는 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가 무엇일까 한번 더 생각하고 보게 하는 그런 뉘앙스가 있는 것 같다. 늘 하는 엄마가 아니라 마더라고 하니까.
납득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만들었나.
피겨스케이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던 김연아 선수가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연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인터뷰 기사를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충격적이고 부럽다는 생각. 하지만 그 분은 그럴 자격이 충분이 있는 13년간 스케이트를 타온 분이고, 나는 아직 감독이 된지 10년 밖에 안됐는데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언제쯤 그 날이 올까 발버둥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영화가 납득할 만한 영화인지.
영화를 만들고 나면 해외 영화제나 개봉 때 시사회나, 불가피하게 영화를 만든 감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 영화를 두 시간 동안 봐야 될 때가 많이 있다. 그럴 때 그런 자리는 고통스럽다.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이 너무나 많고, 스스로 여러 가지 핑계를 대 본다. 저 때 저렇게 할걸, 이랬어야 하는데… 하는. 두 시간 동안 그런 장면이 하나도 없는 영화를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그게 기준인 것 같다. 후회가 없는, 모든 장면에 있어서. 하지만 과연 그 날이 올지는 의문스럽기는 하다.
배우들의 극중 이름이 배우들의 실명과 흡사하게 나온 것 같다. 그 지점이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크게 작용한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극 중 이름을 정한 건지 궁금하다.
다들 잘 알겠지만 원빈 씨의 본명이 김도진이다. 자연인으로서 원빈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인상도 너무 좋았었다.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 초고에는 그 이름이 아니었는데 원빈 씨를 만나고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도준이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자연인으로서의 원빈씨 모습의 강한 매력에 끌렸고 그런 모습을 영화에 있어서 일정부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김혜자 선생님 같은 경우는, 엄밀히 말하면 극중 이름이 없다. 영화를 보시면 김혜자 선생님 극 중 이름이 불려지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냉정하게 말하면 사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의도한 바였다. 그냥 엄마였으면 좋겠는 것이다. 그냥 엄마가 김혜자다 라는 느낌을 바랬기 때문에 그랬다. 과거에는 ‘살인의 추억’에서 서태지 씨의 이름을 본 따서 서태윤이라고 한다거나 이런 식의 장난끼를 발동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경우는 없었다. 윤제문 씨, 전미선 씨, 진구 씨 등 시나리오 쓸 때 이미 결정하고 쓴 분들은 사실상 일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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