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제1차 세계대전은 ‘현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전 전쟁들이 왕조 간의 전쟁, 봉건적·귀족적 이해관계의 전쟁, 군주 간 대립에 기인한 전쟁이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은 최초의 대규모 부르주아 전쟁이었다. 저자는 역사 사료뿐 아니라 무용, 음악, 문학 등 현대 예술의 여러 장르를 분석해 하나의 정신이 관통하는 서사를 직조해낸다.
악몽과 부정의 문화로 탈바꿈한 모더니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됐고, 이는 현대를 폭발적으로 알리는 기제가 됐다. 저자는 현대 문화의 역사란 ‘반응의 역사’ ‘독자에 관한 이야기’ ‘관객의 이야기’라고 보며 1장의 상당 부분을 관객 묘사에 할애한다.
예술은 교훈, 도덕, 합리성을 초월해 도발과 이벤트가 됐다. 이것은 삶을 북돋는 종교적 힘을 지니며, 개인을 통해 달성되지만 개인보다 훨씬 크다. 러시아 발레단 단장 댜길레프는 프루스트나 지드처럼 예술가는 도덕과 무관해야 한다고 봤다. 아방가르드에서 흔히 말하듯 도덕은 추의 복수이며, 미를 향한 해방은 사회적 집단의 노력이 아니라 개인적인 구원을 통해서 오는 것이었다.
전쟁은 시작부터 상상력을 자극했다. 역사상 어떤 4년도 공적 사건과 관련해 이토록 많은 증언을 낳지는 못했다. 화가, 작가, 성직자, 역사가, 철학자 등이 눈앞에 펼쳐지는 드라마에 참여했다. 전쟁 전만 해도 희망의 문화이자 종합의 비전이었던 모더니즘은 악몽과 부정의 문화로 탈바꿈했다.
전쟁은 그 거대한 기념비적 특성으로,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어마어마한 형용 불가능성으로 독특한 매혹을 자아냈다. 하지만 900만 명이 죽고 2100만 명이 부상당했다. 전쟁이 그런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생각에 직면하자 사람들은 사고 자체를 회피하더니 금세 정치적 책임이 있는 자들과 군인 정치꾼들에게 거부감을 느꼈다. 이로써 어디서나 세를 얻게 된 것은 좌파였다. 좌파의 성장은 구질서의 파산으로 간주되는 현실과 그에 따른 급진적 변화에 대한 욕망을 반영했다. 좌파의 이런 급부상은 그러나 결국 더 오른쪽 극단으로 움직인 우파의 ‘신보수주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창조’ 충동과 ‘파괴’ 충동의 자리 바꿈
삶의 의미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할 수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의미가 삶 자체에, 순간의 생생함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1920년대에는 향락주의와 나르시시즘이 나타났다. 러시아 발레는 한물갔고, 전쟁 이전에 나타났던 모더니즘은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이 전쟁의 진실은 무엇일까? 목소리들은 여기저기로 갈라졌지만, 그 안에서 일치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비극적이고 무익한 유럽의 내전이었으며,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전쟁이라는 목소리였다. 전쟁은 이후 파시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며,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 전쟁 문학 붐을 일으킨다. 여기서 전쟁은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 예술의 문제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모더니즘 전반에 있어 심리적 전환점이었다. 창조하려는 충동과 파괴하려는 충동은 자리를 맞바꿨다. 진짜 전쟁은 1918년에 끝났다. 그 뒤로는 기억으로 위장한 상상이 전쟁을 집어삼켰다. 많은 이에게 전쟁은 어처구니없던 짓이 됐는데, 그러나 그것은 전쟁 경험 자체 때문이 아니라 전후 경험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상주의는 니힐리즘으로 끝났고, 생명으로 시작했던 것은 죽음으로 끝났다. 그리고 1914~1918년의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시각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히틀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