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 청춘의 조난신호

2003.11.30 00:11:11

병석과 재경은 오랜 연인 사이다. 영화감독이 꿈이지만 당장은 결혼식 비디오 촬영과 갈비집에서 불 지피는 아르바이트 밖에 할 수 없는 처지인 병석은 설상가상으로 형이 진 빚까지 떠안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제대로 된 직장을 다녀본 적 없는 재경은 간신히 나가게 된 사무실에서 너무 우울해 보인다며 하루 만에 해고당하고 조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시작한 인터넷 홈쇼핑에서 사기를 당해 되레 큰 빚을 지고 만다. 병석은 그런 그녀를 나무라지만 빚을 해결하려고 결국 그의 꿈을 이뤄줄 카메라를 팔고, 한편 재경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카드깡을 하게 된다.

기존 상업 청춘영화들과 선긋기

이른바 ‘청춘영화’는 항상 그 시대를 대변하는 감수성을 담아왔다. 1970년대의 ‘바보들의 행진’, 1980년대의 ‘고래사냥’처럼 1997년 ‘비트’는 당대 청춘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강한 비트의 음악과 스피디한 영상의 현란함을 청춘영화의 주요 포맷으로 정착시킨 ‘비트’류의 영화를 뒤이은 것은 2001년의 ‘엽기적인 그녀’의 기상천외한 가벼움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인터넷 세대의 변화무쌍한 감수성에 기인한 청춘영화들은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뮤직 비디오 같은 화면에 담아 선사해왔다.

저예산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은 이 같은 상업 청춘영화들의 관습에서 벗어나 있다. 노동석 감독은 부자연스러운 화장기를 벗어버리고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청춘들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안한다. 과장된 음악이나 다소 거친 대사 그리고 관객에게 급격한 감정변화를 요구하는 이제까지의 다른 청춘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는 뮤직비디오 같은 화려한 영상도 아무런 자극적인 소재도, 스타도 없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자기를 표현하는데 소극적이고 연인끼리의 감정 표현도 서툴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관객에게 숨겨진 청춘의 불안함에 대한 기억, 혹은 징후를 이끌어낸다.

워크아웃 되어버린 세대

신용불량자가 수백만명에 이르고 청년실업이 방송에서나 보는 뉴스거리가 아니라 나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에서 이 영화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청춘’이라는 아름다운 시기,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청춘들은 일하지 못하는 괴로움에 시달린다. 일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절대절명의 무기인 ‘돈’을 벌지 못해 주류 사회로부터 계속 떠밀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한편으로 젊은 세대는 각종 매체 등을 통해 새롭고 좋은 ‘물질’을 희구하는 ‘욕망’만큼은 그 어떤 세대들보다 한껏 부풀려져있고, 이들은 소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비기계’가 점점 되어가고 있다. 아이의 울타리를 나와 아직 성숙한 어른으로 정착하지 못한 젊은 청춘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소비’의 자유롭게 누릴만한 ‘사회적 능력’을 나누어 받지 못한 채 그 괴리감에 시달린다. 또한 이 젊은 세대는 현실의 고통을 맞닥뜨릴 만큼 단단히 단련되지도 않았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병석의 막연한 꿈은 상황에 밀려 점점 멀어져가지만 그는 그 억울한 감정을 잘 표출하지도 못한다. 재경은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사채업자 사무실과 홈쇼핑 사기단, 카드깡 회사까지를 전전하며 어리숙한 모습으로 점점 크게 상처만 받는다. 그래서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전 세대 못지않은 갈등과 고민을 지니고 있는 오늘의 청춘들은 경제적인 파국 속에 채 피워보기도 전에 시들어버린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이 같은 신용불량 청춘들이 보내는 조난신호다.

현실의 그들은 스타가 아니다

실제 자신의 이름으로 출연하고 있는 두 주인공 김병석과 유재경은 전문 배우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영화의 감독을 포함한 총 6명의 스탭 중의 2명이다. 애초에 스텝으로 참여하였다가 배우까지 하게 된 경우다. 노동석 감독은 청춘 영화에 의례 등장하는 ‘스타’가 나타나는 순간 현실의 청춘을 지나치게 과장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주변부로 점점 떠밀려갈 수밖에 없는 청춘을 주변 인물에서 찾았고 그 선택은 진실감으로 가득 찬 연기를 통해 빛을 발하게 됐다. 무언가를 원하고 있지만, 결코 자신을 휘감고 있는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우울한 불안감에 충만한 이 젊은 커플의 표정은 너무 지쳐있다. 영화를 보고난 후 그 밋밋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줄거리는 생각나지 않더라도 재경의 눈에 떨어질 듯 매달려있는 눈물이 주는 여운을 잊기는 힘들 것이다.







스무살, 3개월 전 발레교습소


감독 : 변영주 / 출연 : 윤계상, 김민정

평범한 고등학생 강민재는 아버지의 차를 몰래 타고 술을 마시다 우연히 뺑소니를 목격,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발레강사 양정숙에게 무면허까지 더해 확실하게 덜미를 잡힌다. 덕분에 수강생 모집에 혈안이 된 푼수발레강사 양정숙은 강민재와 친구 따라 강남 간 장동완, 친구 지키겠다고 앞장 선 이창섭까지 세 마리 토끼를 한방에 잡는다. 여기에 비슷한 타이밍으로 같은 반 동성칭구에게 사랑고백을 받던 털털한 여고생 황보수진은 여성성을 키워야 한다는 엄마에게 떠밀려 발레 강좌에 등록한다.


지워진 기억과의 싸움 포가튼


감독 : 조셉 루벤 / 출연 : 줄리안 무어, 도미니크 웨스트

비행기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불행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던 텔리는 정신과 상담치료를 시작한다. 슬픔을 지우기 위해 행복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텔리. 그러나 담당의사 먼스는 정색한 얼굴로 아이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기억은 착각일 뿐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믿기지 않는 사실에 경악한 텔리는 아들 샘의 흔적을 확인하려 하지만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지워진 비디오테잎, 감쪽같이 지워진 가족사진, 아무것도 기록돼 있지 않은 일기장 뿐. 게다가 그녀의 친구, 이웃은 물론 남편마저 샘을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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