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쉬 감독의 옴니버스 ‘커피와 담배’

2006.07.10 09:07:07

‘천국보다 낯선’의 짐 자무쉬 감독는 ‘데드맨’ ‘고스트 독’, 최근 개봉한 ‘브로큰 플라워 등의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틈틈이 연작의 성격이 담긴 단편영화 작업을 해왔다. 1986년 미국의 대표적인 코미디쇼 ‘Saturday Night Live’를 위해 만든 콩트 형식의 영상물 ‘자네 여기 웬일인가?’를 시작으로 17년간 꾸준히 채워간 단편영화의 연작들이 바로 ‘커피와 담배’라는 옴니버스 드라마의 형태로 완성됐고, 마침내 2003년 장편영화의 형태로 개봉하게 됐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국내 관객을 만난 적이 있는 이 영화가 드디어 국내 본격 개봉을 앞두고 있다.

빌 머레이가 빌 머레이를 연기하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필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11가지 대화들은 지적이고 매력적이며, 때로는 수다스럽고 엉뚱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영화 속의 특이한 캐릭터들보다도, 그들의 화려한 입담보다도 ‘커피와 담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나른하고 따분한 일상에 필요한 각성제처럼, 쳇바퀴 돌아가듯 고단한 하루에 던지는 농담처럼 달콤한 상상에 빠져드는 것을 잠시나마 허용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죽기보다 일어나기 싫은 월요일, 잠시 커피숍에 들른 점심시간에 ‘24시간 파티 피플’의 스티브 쿠건이 내 옆 테이블에 앉아 ‘이 옷은 비비안 웨스트우드 거야’라며 우아한 척 뻐기는 장면을 목격한다거나, 커피를 주전자 채로 마시는 불량한 커피숍 점원, 빌 머레이가 주는 진한 커피를 마시는 월요일 오후는 분명 상상만으로도 유쾌하고 즐거운 일일 테니까 말이다.
로베르토 베니니, 스티브 쿠건, 이기 팝과 록밴드 화이트 스트라입스, 그리고 빌 머레이까지…. 이름만 들어도 절로 웃음이 나거나 궁금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개성파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 영화는 출연자 전원이 ‘자기 자신’을 배역으로 맡아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던 캐릭터를 조금씩 과장해가면서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평소의 모습인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자기 패러디’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화로 시작해서 대화로 끝나는 영화
짐 자무쉬의 인디정신으로 무장한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의 모든 부분이 대화 장면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화로 시작해서 대화로 끝나는 영화가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 내러티브의 기승전결이 존재하지 않아도 영화는 흘러간다는 사실이 놀랍다.
일반적으로 대화 씬은 대개의 드라마 장르 극영화에서 전체 분량의 약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게 보통이지만 씬과 씬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기에 급급했으며 정보전달이라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가졌기에 가장 안정적이며 일상적인 촬영방식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고정관념을 과감히 파괴하고 ‘커피와 담배’는 기승전결이 담긴 뚜렷한 내러티브도 없이 대단치 않은 이야기를 대단한 듯 이어가는 흐름에서 오는 독특한 유머, 그리고 그 자체로도 하나의 완결성이 형성되는 순간은 관객에게 색다른 체험을 안겨준다. 이처럼 영화 속 단편들이 일부러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한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린 자유로운 대화들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언제 웃어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주인공들의 허무개그, 그리고 일상에서 만나는 비일상, 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하는 유머와 아이러니 등 짐 자무쉬의 초기 작품세계부터 현재까지의 일관된 정서를 살펴볼 수 있는 것 또한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낯선 사람에게서 전화가 올 때
감독 : 사이먼 웨스트
배우: 카밀라 벨, 존 보덱
여고생 질은 아이들을 돌봐주는 베이비씨터 아르바이트를 위해 외딴 언덕 위 호화로운 저택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감기로 아이들이 잠들어 있음을 집주인에게 미리 전해들은 질은 모든 것이 최첨단으로 통제되어 있는 폐쇄적인 대저택에서 무료함을 달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중 갑자기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아무일 없나?’며 신분을 밝히지 않는 자의 목소리. 질은 처음엔 그냥 장난전화로 받아 넘긴다. 하지만 다시 걸려온 낯선 사람의 전화. ‘아이들이 잘 있는지 확인해 봤나?’ 그는 분명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신분을 숨긴 채 계속 걸려오는 이상한 전화에 질은 점점 불안에 휩싸이고, 그러던 차에 잠시 놀러 왔던 친구 티파니가 시체로 발견하게 되면서 질은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점점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전화 벨 소리 속에 질은 폐쇄된 저택 안에서 누군가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내 청춘에게 고함
감독 : 김영남
배우 : 김태우, 김혜나, 이상우
21살의 대학생 정희는 춤추는 것에 빠져 있다. 어느날 15년 동안 소식이 없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오자 정희는 혼란에 빠진다.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25살의 전화국 기술자 근우는 전화선을 고쳐주면서 간간이 다른 사람들의 통화를 엿듣는다. 근우는 한 여자의 전화통화를 엿듣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제대를 앞둔 서른살의 인호는 이미 군대에 들어오기 전 결혼을 하였다. 마지막 휴가에 집에 들른 인호는 그의 아내가 변했다고 의심하지만 그게 무언지 알지 못한다. 영화는 불확실성 속에 내던져진 세 명의 청춘군상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삶을 관통하는 이 여정의 끝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는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인가? 예찬할만한 청춘이라면 어떤 모습이여야 되는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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