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교육’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거장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이 국내 개봉한다. 자식으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자식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심지어 유령이 돼서까지 딸에게 나타나는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유머와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 알마도바르 감독은 좀 더 코미디로 돌아왔다. 칸 영화제에서 평단의 극찬과 가장 높은 데일리 점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던 ‘귀향’은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200만 명 이상의 관객동원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절망 끝에서 만난 어머니의 유령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라이문다는 한없이 거칠고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녀는 기둥서방과 다름없는 남편과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둔 실질적 가장으로 모든 현실이 짐스럽기만 하지만, 뭐든지 해내는 억척스런 생활력으로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그녀의 딸 파울라가 성추행 하려는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날 밤, 라이문다의 언니 쏠레에게도 비밀스런 사건이 시작된다. 열정적이고 거친 라이문다와는 다소 다른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의 쏠레는 고향인 라 만차에 다녀오는 길에 엄마의 유령을 만나게 된다. 쏠레는 불법 미용실을 운영하며, 미용실 손님과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엄마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라이문다에게 숨긴 채, 미용실 손님들에게 엄마를 러시아 노숙자라고 소개한다. 엄마는 미용실 손님들과 차츰 어울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쏠레의 현실에 적응해가지만, 정작 가장 만나고 싶었던 라이문다에게는 나타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한다.
지독한 현실과 초현실적인 마법의 교차
욕망에 희생된 어긋난 사랑, 지독하고도 강렬한 옴므파탈 느와르였던 ‘나쁜 교육’에 이은 이번 작품은 코믹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섬세하고 감동적인 여성의 이야기다. 알모도바르 감독과 페넬로페 크루즈, 카르멘 마우라와의 재회만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감독의 장기를 살린 드라마틱한 코미디다.
이야기는 거칠고 절망적일정도로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관습적이지 않다. 가장 지독한 현실의 이면에 초현실적인 마법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판타지는 절망의 끝에서 딸을 찾아온 어머니의 유령이라는 소재로 더욱 치밀하게 관객을 사로잡는다. 쏠레가 라이문다 몰래 엄마의 유령을 숨기고, 미용실 고객들과 유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는 장면은 스릴까지 선사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남편의 죽음, 그것도 딸에 의한 살인이라는 지독히 절망적이고 끔찍한 사건 다음에 보여 지는 시체를 처리하려 고군분투 하는 라이문다의 모습 또한 코믹한 상황을 연출한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의 유령이 왜 라이문다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며, 딸의 미래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엄마의 무섭고도 강인한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웃음은 웃음으로 끝나지 않고, 판타지는 단지 판타지만이 아니다. 교묘한 마술과 생생한 현실의 지속적인 내러티브는 장르의 교합을 즐기는 알마도바르의 장기를 잘 보여준다.
여성들끼리의 강인한 연대감이 영화가 전형적인 모성 영화에서 벗어나는 것은 스타일뿐만이 아니다. 가족과 여성에 관한 영화인 ‘귀향’은 여성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들끼리의 따뜻한 우정과 연대감을 풍부한 감성으로 풀어놓는다. ‘귀향’의 가족은 여성들로 이루어졌다. 할머니와 두 딸. 그리고 이웃인 아구스티나가 있다. 그녀는 라이문다 가족의 수많은 비밀을 알고 있고, 고향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라 만차에 남아 라이문다 대신 파울라 숙모를 돌보았다. 아구스티나는 라이문다 가족의 일원이나 다름없다.
드러나지도 돋보이지도 않는 캐릭터일수도 있지만, 사실 아구스티나는 여성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 그건 바로 이웃 여성들간의 연대다. 마을의 여자들은 문젯거리를 함께 공유하고 고통을 좀 더 잘 견디기 위해 함께 해결해 나간다. 물론 그 반대의 일도 일어난다. 이웃에 대한 증오는 결정적 사건이 터질 때까지 몇 세대를 내려오며 풀리지 않는다. 감독은 어린 시절 경험한 자신의 고향마을에서 있었던 긍정적인 사건들만을 기억했다고 한다. ‘귀향’은 홀로 살거나 홀로 된 여인들과 함께 하며 도움을 주는 이웃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감독의 어머니도 그러한 환경 속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웃들은 아구스티나의 캐릭터에 영감이 됐다. ‘귀향’에서 보여지는 여성들끼리의 강인한 연대감, 그것은 모성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족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여성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 무엇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우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존재들이기도 하다. 해변의 여인
연출 : 홍상수
출연 : 김승우, 고현정, 송선미, 김태우
봄바다로 여행을 떠나 하룻밤을 같이 보낸 30대 남녀의 동상이몽(同床異夢) 로맨스. 여행을 떠난 네 사람의 남녀가 기대하고, 이야기하고, 경험하는 것은 로맨스다. 그리고 그것은 10대의 순정도, 20대의 짜릿함도 아닌, 유쾌하고도 쌉싸름한 30대의 로맨스다. 서로 딴 생각을 품고 있는 척 하더라도 속내를 벗겨 보면 동상동몽 즉, 이불 속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한 작업과정인 20대의 연애는 어쩌면 단순하다. 그러나 연애 경력 반평생, 알만큼은 다 안다고 자부하는 30대 남녀의 연애는 복잡하다. 상대방을 어떻게 유혹할지도 알고, 유혹이 들어오면 어떻게 응수할지도 알고, 하룻밤에 목숨 걸지도 않지만 서로 마음이 맞으면 선뜻 하룻밤을 같이 보낼 수도 있는 쿨한 30대. 서로 맞장구치는 것 같으면서도 그들의 속마음은 쉽사리 알기 어렵다.시간
연출 :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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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함께한 연인 세희와 지우. 세희는 지우의 사랑이 변했음을 느끼고 그 이유가 자신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지우는 그런 그녀의 민감한 반응에 피곤을 느낀다. 상처받은 세희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흔적을 지운 채 떠나고, 과감한 성형수술로 새로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지우는 세희와 즐겨 찾던 단골 카페에서 스스로를 새희라고 소개하는 묘한 분위기의 웨이트리스를 만난다. 새로운 새희와 사랑에 빠지는 지우. 새희는 그를 유혹하면서 동시에 그가 예전 세희와의 사랑을 잊은 것은 아닌지 시험하고, 결국 그가 세희를 잊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세희의 사진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나타나, 돌아온 자신을 사랑해달라며 사실을 고백하고 놀란 지우는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