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돋보기】 거장이 건네는 마지막 인사 <류이치 사카모토:오퍼스>

2023.12.26 14:48:57

임종 전 혼신의 힘을 모아 완성한 103분의 연주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아시아인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 류이치 사카모토의 임종 전, 그의 음악 인생을 아우르는 20곡의 연주가 피아노와 조명만으로 가득한 무대에서 흐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작품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뉴욕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돌비 애트모스로 개봉한다. 

 

 

치유와 위안의 아이콘


1978년 <THOUSAND KNIVES>로 데뷔한 류이치 사카모토는 테크노 그룹 Yellow Magic Orchestra부터 수많은 팝 앨범과 클래식 작곡, 오페라, 올림픽 시그널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작품 활동을 한 세계적인 음악가이다. 특히, 그는 1983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출연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영화 음악 작곡가로 활동, 이 작품으로 제3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페드로 알모도바르, 오시마 나기사, 브라이언 드 팔마,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이상일,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거장 감독들의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세계인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마지막 황제>로 아시아인 최초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을 비롯, 골든글로브와 그래미어워드 등 권위 있는 음악상을 석권했다.

 

 

유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남기며 지난 2023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는 동일본 대지진 폐허 지역을 찾고, 일본 후쿠시마 지진 및 쓰나미, 원전 사고 피해자들을 지지했다. 또한, 9.11 테러 현장에 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환경 보존 노력, 비핵화 및 세계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운동가로 전 세계에 치유와 위안을 안겨주었다. 투병으로 지난 몇 년 동안 라이브 공연을 진행하지 못했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혼신의 힘을 모아 완성한 103분의 연주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음악으로 전하는 그의 작별 인사다. 

 

 

직접 큐레이팅 한 20곡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밴드 <Yellow Magic Orchestra> 시절부터 참여했던 영화 음악들 그리고 마지막 정규 앨범인 <12>의 수록곡까지 그의 음악 인생을 포괄하는 20곡을 103분 안에 담은 작품이다. 병이 악화되어 인생의 끝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낀 류이치 사카모토가 2022년 9월, 8일에 걸쳐 작별의 시간을 준비했다. 직접 20곡을 선곡하고 편곡과 녹음에 관여한 그의 마지막 연주는 블랙 앤 화이트의 영상과 함께 다양한 각도에서 거장의 모습을 비추는 조명 그리고 피아노로만 구성되어 오롯이 연주자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메인 테마인 ‘시간의 경과’가 마치 하루 종일의 시간을 연상시키는 흑백 화면을 통해 흐르고, 관객들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살면서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악기인 피아노와 일체화됨을 체험한다. 평소 피아노가 그의 손의 연장이라고 말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촬영 당시 몸 상태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호흡들과 피아노의 기계적인 소리가 혼연일체를 이루며 관객들을 생생한 연주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평소 고인이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곳’이라고 생각한 NHK 509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촬영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선곡, 편곡, 녹음과 연주 데이터의 기록 방법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이외에 연출적인 부분에서는 전적으로 제작진에게 일임했다. 

 

 

실제 관객이 콘서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생생한 현장을 표현하기 위해, 연주하고 있는 고인에게 가까이 가거나 피아노 위를 부유하는 듯한 감각을 카메라 무빙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영화관 안에서의 콘서트라는 체험을 선사한다. 103분의 러닝타임을 흑백화면으로 담아 빛의 음영으로 피부나 혈관, 피아노의 질감을 부각시킨 제작진은 조명만으로 마치 미술관에 있는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예술적인 영상을 탄생시켰다. 3대의 4K 카메라와 램프, 스포트라이트, LED 라이트, 벌룬 타워라이트 등 다양한 조명을 세팅하여 거장의 마지막 연주를 관객들이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냈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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