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파괴’ 다채널 시대의 생존법

2016.09.27 10:12:15

영화와 예능, 드라마와 다큐 등 장르 결합과 파괴… ‘신선함’ 요구하는 미디어 환경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시간과 공간,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드라마가 유행이다. 경계의 파괴는 단지 드라마의 스토리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와 예능, 드라마와 다큐 등 장르 파괴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새로움’만이 살길인 다채널 시대 미디어의 생존법인 셈이다.


어디까지 시청자에게 수용될 것인가?


최근 MBC 간판 예능 ‘무한도전’은 스릴러 영화 한 편을 상영했다. 드라마 ‘시그널’로 스타로 떠오른 김은희 작가와 영화 ‘라이터를 켜라’, 드라마 ‘싸인’의 장항준 감독까지 섭외해 최소한의 장르로 ‘제대로’ 작품을 만들었다. ‘무한도전’ 출연진은 물론 김희원 김혜수 이제훈 쿠니무라준 등 전문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됐다. ‘영화’임을 강조라도 하듯 극장에서 시사회를 여는 장면까지 제작했다.


‘무한도전’은 사실 오래전부터 리얼버라이어티의 이름으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도전을 하는 복합장르의 원조다. 이미 2009년에 ‘쪽대본 드라마 특집’이란 이름으로 패러디물이기는 하지만 드라마를 제작한 바 있다. 이번에 극화된 ‘무한도전’의 영원한 테마 ‘무한상사’는 태생부터가 픽션이다. 출연진들의 캐릭터를 직장으로 치환한 콩트에서 시작해 시트콤으로 확장하던 ‘무한상사’는 직장인의 애환을 담기 위해 드라마적 요소가 날로 커져갔다. 재생산해야 한다는 압박이 늘 그렇듯, 규모가 커지는 방향으로 발전돼 2013년에는 뮤지컬판이 제작되기도 했다.


규모의 확대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겠지만 이번 ‘무한도전’의 ‘2016 무한상사- 위기의 회사원’은 지금까지 ‘무한도전’이 시도한 수많은 장르의 변주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파격적이다. 출연진들만 예능인인 ‘무한도전’ 멤버일 뿐이지, 웃음기 싹 걷고 진짜 스릴러 영화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평가는 엇갈린다. “신선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예전의 소소한 ‘무한도전’이 그립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이는 장수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가진 숙명이기도 하다. 동시에 장르의 변주가 어디까지 시청자에게 수용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정지된 화상인 만화에 더빙만 해서 방영한 ‘무한도전 릴레이 웹툰’은 만화와 예능의 결합을 넘어서 만화 자체를 TV에서 방영한 파격적 시도였지만 시청자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예능적 요소를 넣은 드라마


지난 7~8월에 방영된 tvN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예능과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결합한 사례다. 기본적으로 예능의 형식을 갖춘 이 프로그램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제작 과정을 따라가는 내용이다. 출연진들의 드라마 촬영 안팎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면서 변화하는 관계와 감정을 포착한다. 제작진은 배우들의 실제 관계와 감정을 반영해 대본을 미션처럼 쓰기도 한다. 예능과 드라마, 픽션과 논픽션을 현란하게 오가는 것이다.


SBS 추석 파일럿으로 기획된 예능 ‘씬스틸러’도 예능과 드라마가 접목됐다. 일부 배우들은 정해진 대본에 따라 연기를 하며 드라마를 만들지만, 그 속에서 특정 배우는 애드리브로 연기를 해야 한다. 배우의 연기력은 물론 순발력이 발휘되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배우의 선택과 반응 등이 유발하는 재미가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예능적 요소를 넣은 드라마들도 적지않다. 드라마와 예능 사이에 있던 ‘응답하라 1997’은 이 같은 장르 융합적 성격이 흥행에 호작용이 됐다는 평가다. 1인 가구의 일상을 담은 ‘식샤를 합시다’ 또한 예능 먹방과 드라마의 결합으로 눈길을 끌었다. ‘식샤를 합시다’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혼술남녀’ 또한 마찬가지다. 드라마와 먹방의 결합은 다큐와 예능 드라마를 복합한 일본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연상시킨다.


그런가하면 ‘삼시세끼’는 다큐와 예능의 중간 즈음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프로그램은 드라마 같은 판타지도 제공한다. ‘나 혼자 산다’ ‘정글의 법칙’ ‘진짜 사나이’ 등 리얼버라이티는 점차 다큐적인 성격이 강화되는 분위기다.




역사의 재연 ‘팩츄얼 드라마’


드라마와 다큐의 결합도 눈에 띄는 장르 파괴의 사례다. 지난 9월3일부터 방영한 KBS1의 ‘임진왜란 1592’는 국내 최초의 팩츄얼 드라마를 표방하고 나섰다.


기존의 역사 드라마들도 철저히 고증에 바탕을 둔 경우가 많았지만 상상과 재해석이 빈번했다면, ‘임진왜란 1592’는 재연 수준이다. 김종석 총괄프로듀서는, “‘임진왜란 1592’는 시사와 다큐의 하이브리드”라며 “사실에 기반을 둔 드라마다. 실제 사료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이고 대사만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이다.


그냥 창작은 아니고 문헌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추론이다”라고 말했다. 역사 다큐멘터리 출신인 김한솔 PD에게 연출 극본을 맡겼다거나 미국의 팩츄얼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점 등이 드라마가 얼마나 ‘다큐드라마’라는 정체성에 무게를 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임진왜란 1592’는 이 같은 기획의도로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구성이 많다. 한회 전체를 전투씬으로만 채우기도 하며, 지금까지 이순신 관련 드라마에서 소외돼왔던 전투에 참여한 각계각층의 전사자들의 명단이 나열되는 등 파격적인 장면들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채널 시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위해 최근 미디어는 빠르고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싫증을 느끼는 속도는 빨라지고 선택권이 많아진 만큼 신선함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기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야 하는 제작진들의 긴박한 상황이 변주와 파괴라는 트렌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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