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만이 볼 수 있다
평범한 어느 날 오후, 앞이 보이지 않는다며 한 남자가 차도 한 가운데에서 차를 세운다. 이후 그를 집에 데려다 준 남자도, 그를 간호한 아내도, 남자가 치료받기 위해 들른 병원의 환자들도, 그를 치료한 안과 의사도 모두 눈이 멀어버린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앞이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이상 현상. 눈먼 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정부는 그들을 병원에 격리수용하고, 세상의 앞 못 보는 자들이 모두 한 장소에 모인다.
그리고 남편을 지키기 위해 눈먼 자처럼 행동하는 앞을 볼 수 있는 한 여인이 있다. 일부러 눈먼 자로 속여 남편과 함께 격리 수용되는 그녀. 아수라장이 돼버린 병동에서 오직 그녀만이 충격의 현장을 목격한다. 눈을 뜨는 것이 오히려 두려운 상황. 그녀는 홀로 눈을 뜨고 있기에 고립되기도 하고 리더가 되기도 한다.
영화는 나약한 인간 심리를 모두가 눈 감은 세상에 투영해 치밀하게 보여준다. 눈먼 세상은 혼란 그 자체다. 평범한 일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늘 열려있던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당장 길을 걷던 자의 발걸음이 엉망으로 꼬여버리고, 업무는 마비되고, 교통수단은 정지되고, 이 모두를 컨트롤하는 정부기관마저 문을 닫게 된다.
멈춰버린 세상보다 더 두려운 건 앞을 볼 수 없게 돼 생존마저 위협당하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외과의사, 바텐더, 호텔 청소부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평범했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앞 못 보는 자들이 되어 표류하기 시작한다. 이 같은 설정은 시, 공간이 명확하지 않은 영화적 배경의 난해함을 뛰어넘어 우리도 그들처럼이라는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연기파 배우들의 하모니
눈먼 자들의 세상이 도래한다는 극한 상황에서 연기파 배우들의 맹연기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한층 끌어올리며 섬세한 심리 표현을 더욱 생생히 전달한다.
연기파 배우로 알려진 줄리안 무어가 보여준 다채로운 연기와 섬세한 감성은 특히 이번 작품에서 더욱 돋보인다. 그녀는 홀로 눈뜬 자의 고뇌와 절망을 온몸으로 연기해내며 특유의 날카로운 심리 연기의 절정을 보여준다.
또 다른 주인공인 의사역의 마크 러팔로는 눈이 멀어 하루아침에 모든 지위를 잃게 되는 안과 의사로 분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상실감의 최대치를 절제된 연기 속에 펼쳐 보인다. 마크 러팔로는 처음엔 용감하고 책임감이 넘치지만 시력을 잃고 병원에 격리된 후 끝없이 나약해지며 인간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카리스마 넘치는 폭발적인 캐릭터 ‘제3병동의 왕’ 역은 동년배의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강인한 인상과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캐스팅되었다. 작품의 나레이터이자 동시에 눈이 멀게 되는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역의 대니 글로버는 베테랑 배우답게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이며 동료들의 든든한 조언자가 되는 인상이다.
영화는 원작이 그러하듯 상상력과 아이러니로 점철된 흥미로운 스토리를 통해 ‘눈 감은 현실’을 꼬집는다. 감독은 스크린에 옮기기 힘든 원작을 안정된 영상언어로 박진감 넘치게 풀어 내는데 성공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감 독 : 민규동 배 우 : 주지훈, 김재욱, 유아인, 최지호

미인도
감 독 : 전윤수 배 우 : 김민선, 김영호, 추자현, 김남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