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安, 일회용컵 사용규제 시행 4일전 "시행 미뤄야"
환경부 "계도 집중"…규제 있지만 단속 없는 상황
전문가 등 "安 발언, 일회용품 규제 흐름 흔들어"
尹 당선인 '쓰레기 저감' 공약…"일관성 유지해야"
[시사뉴스 김도영 기자] 3일 환경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전국 카페 등 식품접객업소 매장 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이 2년여 만에 다시 전면 금지됐다.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카페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 유예' 요구가 차기 정부의 일회용품 및 플라스틱 규제 완화 움직임으로 잘못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환경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앞서 윤석열 당선인이 쓰레기 발생 저감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인수위도 순환경제 촉진 등을 검토한 만큼 인수위와 차기 정부가 환경 정책의 일관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법령에 따라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코로나19 유행이 진정될 때까지 계도에 집중할 방침이어서 사실상 '규제는 있지만 단속하지 않는' 미묘한 상황이 됐다.
'단속 유예' 방침으로 유도한 건 인수위다. 코로나비상대응특위 위원장을 겸직하는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시행 나흘 전인 지난달 28일 "생활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하필이면 왜 지금 이 조치를 시행하는지 모르겠다"며 유행이 잠잠해질 때까지 시행을 미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환경부는 인수위와 협의한 끝에 당초 일정대로 1일 시행하되 코로나19 유행이 이어질 때까지 위반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과태료 처분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연일 현 정부의 방역 정책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며 각을 세워 온 인수위가 코로나19 감염 우려와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고려해 시행 유예를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환경단체 사이에서는 안 위원장의 발언이 이전부터 조금씩 강화돼 왔던 플라스틱·포장재 정책 흐름을 인수위와 차기 정부가 역행하려는 듯한 신호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인수위원장의 발언이다. 경우에 따라서 다음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 방향을 시장에 전달한 것일 수 있다"며 "단순히 정부 코로나19 방역 비판 의도를 넘어 일회용품 규제 흐름 자체를 흔들 수 있는 파급력을 지닌 발언"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활동가는 "현 정부의 코로나19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애꿎은 일회용 컵 사용규제까지 싸잡아 비판했다"며 "과학적 방역을 강조한 안 위원장이 일회용품 사용 증가로 야기되는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감염병 위험을 외면했다. 이게 바로 비과학적 방역 아닌가"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의 우려대로 정부와 산업계가 이전부터 여러 차례 논의해왔던 규제에 반대하는 움직임들이 최근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포장재 규제 강화에 따른 업계 간담회에서는 환경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일부개정안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간담회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은 환경부가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 기준에 두께·색상·포장무게비율 등을 추가하게 되면 제품 디자인이 제한된다며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의 골자는 재활용이 쉽도록 포장재질을 단일화하고 두께를 줄이는 등의 노력으로 폐기물 발생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그간 입법 예고와 간담회 등을 통해 업계와 의견을 교환해 왔다.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후에는 구체적인 기준을 담은 고시 개정을 위해 업계와 계속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그간 입법 예고나 간담회에서 여러 차례 논의됐다. 대부분 취지에 공감을 했고 잘 협의해 보자고 했다"며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러 의견들을 검토하고, 조정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이번 업계 반응에 대해 당혹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수위의 시행 유예 발언과 중소기업계의 반발을 시작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규제 완화 요구가 나올 수 있는 만큼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는 윤석열 당선인이 앞서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포장재 쓰레기 발생 저감을 위해 단일재질화와 재활용 용이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인수위와 차기 정부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소장은 "환경 규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불확실해진 상황"이라며 "일회용품 재활용을 활성화하고 사용을 줄이기 위한 규제를 꾸준하게 강화할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명확하게 줘야 기업이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