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들어서는 ‘또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해 완전 자본주의 실험하는 북한
북한이 7·1 개혁조치를 단행하며 일부 시장경제의 요소들을 도입하더니
급기야는 지난 9월 23일 신의주를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해 자본주의 경제 자체를 실험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 실험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신의주 경제특구가 성공할 수 있을지, 북한의 행보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의주 경제특구 지휘하는 양빈
북한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는 네덜란드 유럽아시아 국제무역회사(회장 양빈·39)와 지난 9월 23일 ‘신의주 특별행정구 개발과 관리운영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그 이튿날 “김용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과 양빈 회장이 합의서에 서명했다”면서 이 같은 사실을 공표했다.
이날 조인식에는 김용술 위원장뿐만 아니라 조영남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경제계의 내로라 하는 실력자들이 참석해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의 중요성을 실감케 했다.
놀랄만한 사실은 이 특구의 초대 행정장관으로 중국인 출신 양빈 회장을 임명했다는 사실. 양 회장은 중국에서 부동산 개발로 돈을 모은 기업인이다.
작년에는 포브스지에 중국의 2대 부호중 한 사람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중국 장쑤성 난징 출생이지만 네덜란드 이민 생활을 하면서 네덜란드 국적을 땄다. 1987년에 화훼 생산 유통업체를 창업해 돈을 모은
그는 1990년대 초반 중국의 개방이 시작되던 시기에 부동산 건설시장에 뛰어들어 일약 중국 최고의 갑부 대열에 합류했다.
그가 행정장관으로 전격 임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작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그는 그곳에 조성된 대단위 비닐하우스
단지를 김 위원장에게 소개하며 첫 인연을 맺었다. 이 때 그는 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고위 당국자들에게 신의주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그의 주장에 동조하고 큰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올 2월에도 그는 김 위원장의 신의주 현지 지도에 동행하면서, 신의주 개발에 관해 논의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에서는 장사꾼인 그가
신의주 개발 이익을 얻기 위해 김 위원장에게 접근했다는 지적도 있다. 만경대 지역에 5백만 달러를 들여 비닐하우스 단지를 건설해준 것이나,
북한에 무상으로 쌀을 지원해준 것도 그의 이런 계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무비자, 무관세 지구
양 장관은 벌써부터 장사꾼으로서의 기질을 발휘하며 외국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공식 취임을 하루 앞둔 지난 9월 23일 평양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신의주 경제특구에 유럽식 사법제도를 도입하겠다”면서 “초대 법무장관으로
유럽인을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신의주 경제특구의 기본업무 처리를 위해 15명으로 구성될 임시 입법회에도 절반 이상을 외국인으로
구성할 뜻도 비쳤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신의주는 북한 속의 또 다른 신세계다. 신의주만 떼어놓고 본다면 ‘이곳이 과연 사회주의 국가 북한이 맞나’하는 의심이
들 만큼 완전한 자본주의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신의주 132평방km의 면적에 신의주 경제특구를 건설하기 위해 앞으로 2년간 기존 북한 주민 20만명을 전출시키고,
북한과 중국 등지에서 젊고 기술력 있는 이주자 50만명을 신의주 경제특구에 새로 정착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특구의 도로망이나 전력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확충을 위해 국제자본을 유치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주민 이외의 모든 북한 주민들은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 주민을 제외한 모든 입국자에게는 비자가
면제된다.
통용화폐도 북한 화폐가 아닌 달러화를 쓴다.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수입이나 수출을 할 때도 관세를 전혀 물리지 않을 계획이다.
신의주 경제특구의 주요 산업은 금융과 산업, 관광 등이 될 전망이다. 그는 이와 같이 밝히면서 사행산업도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카지노 등 도박을 허용할 계획이지만, 전체 세입이 국내총생산의 10%를 넘지 않도록 하겠다”며 자치구 차원의 계획통제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곳에는 외국인 기업들도 자유롭게 기업을 설립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기업들의 러시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그의 청사진을 더욱 밝게 하고
있다.
인프라 확충과 핵문제 해결돼야
신의주 경제특구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24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북한은 과거에도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설치해 개혁에 대한 희망을 불러 일으켰지만 무위로 그친 적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이 사업이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했다.
같은 신문은 그 근거로 전통적으로 기업을 억압해온 북한 관료들의 구태가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큰 점과 전력과 인터넷, 용수 등 기초여건도
좋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이 신문은 또 중국 당국에 의해 조세포탈 혐의를 받고 있는 양 회장을 신의주 경제특구의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한 것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이런 우려의 시각을 없애기 위해서는 전력, 교통, 공업용수 등 기초 인프라를 확실히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 제2의 기계공업단지답게 금속, 화학, 섬유, 제지 등을 주축으로 한 신의주의 산업 기반 시설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편이다.
그러나 신의주 지역의 전력은 현재도 전압이 불안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발이 본격화돼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해질 경우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단동으로부터 중국의 전력을 보강받고, 연간 화물 수송량이 3백만톤에 달하는 단동 기차역을 활용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대외적으로도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의 해제를 위해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 북한 상품은 미국 시장에서 일반관세를 적용받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이 신의주에 기업을 설립하고 제품을
생산한다고 해도 어차피 생산지는 북한인 셈.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인 미국과 거래를 할 수 없다면 외국 기업들의 신의주에 대한 투자는 자연적으로
침체되기 때문이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