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돋보기】 폴란드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아트버스터 <첫눈이 사라졌다>

2021.10.15 17:13:40

지친 당신을 위로하는 매혹적 상상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사람들의 마음 속 슬픔과 갈망을 들여다보고 불행과 고통을 몰아내주는 최면술사 제니아의 등장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마을이 떠들썩해진다. 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상 부문을 비롯해, 베르겐국제영화제, 카메리마쥬영화제, 엘고나영화제 등 9개 영화제에 초청 및 15개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독특한 체험과 신비로움


<첫눈이 사라졌다>는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와 20년이 넘게 협업해온 촬영감독이자 각본가 마셀 엔그레르트가 공동 감독을 했다. 두 사람이 2000년에 만든 단편 영화이자 52회 칸국제영화제 씨네파운데이션 부문 진출작 <어센션>이 그 출발점이 됐다.

 

시골 마을에 나타난 미스터리한 남자가 마을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내용의 <어센션>을 바탕으로 장편에 걸맞은 다층적인 스토리로 확장시킨 결과물이 바로 <첫눈이 사라졌다>이다. 

 

 

이 영화는 특히 베를린국제영화제 3관왕의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이 이목을 끈다.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는 <인 더 네임 오브>로 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테디상, <바디>로 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은곰상), <얼굴>로 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감독이 폴란드를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차세대 거장으로 조명되는 이유 중 하나는 ‘여성의 시각’이라는 트렌드와도 관련이 깊다.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감독은 93회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74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티탄>의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 등 최근 세계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여성 감독 활약의 연장선에 있다. 


<첫눈이 사라졌다> 이후 차기작으로 나오미 왓츠 주연 실화 바탕의 재난 영화 <인피니트 스톰>으로 할리우드 진출까지 확정한 상태다. 

 

 

감독은 최면술이라는 소재로 능숙하게 환상과 현실을 교차한다. 특유의 마술적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여 관객의 현실적 상처에 대한 치유의 손길을 내민다. 


현대인의 수면을 돕기 위해 작곡했다는 영국의 작곡가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앨범 ‘From Sleep’의 수록곡은 마치 명상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는 가운데, 폴란드의 실제 상류층 주택 로케이션을 활용한 세밀한 미장센이 더해지며 독특한 체험과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사회적 비판과 풍자


영화는 환상적인 세계를 만나는 시각적 만족감을 넘어 사회적 비판과 풍자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언급하는 등 픽션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간접적으로 끌어와 관객의 흥미를 더하기도 하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소외, 계층차별 등 시대적 화두를 끊임없이 건든다. 


떠돌이 생활을 하지만 늘 구원자처럼 온화한 미소를 보이는 제니아와 물질적으로는 더없이 풍요롭지만 저마다의 사정으로 결핍된 욕망에 사로잡힌 마을 사람들의 대조적 모습을 통해 이방인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현대 사회와 유럽의 난민, 인종문제 등의 국제적 이슈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판타지와 유머로 무장한 이 영화는 산적한 사회적 문제와 무한경쟁, 결핍에 둘러쌓인 관객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감독은 “육체의 관계가 결국 영혼의 관계로 바뀌는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육체나 자본으로 대표되는 물질 등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기반으로 사회 이슈를 자연스럽게 끌어오는 한편 최면술사인 주인공 제니아를 통해 관객이 자신 내면의 숲을 여행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감독은 <첫눈이 사라졌다> 속 외부와 차단된 마을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타인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물들을 그려낸 의도를 설명하는 등 복잡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을 향한 통찰도 잊지 않는다.


인상적인 연기력으로 작품 전체를 이끄는 최면술사 제니아 역의 알렉 엇가프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영국에서 성장한 배우다.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이 주연한 <투어리스트>로 데뷔했으며,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를 비롯해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샌 안드레아스> 등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활약해왔다. 


2019년에는 전 세계적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세 번째 시즌에서 호킨스 연구소의 러시아 연구원 ‘알렉세이’로 활약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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