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미래정치 시리즈 ⑦] 서진석 “이웃집에 퀴어가 산다”

2021.10.29 22:13:02

 

며칠 전 홍대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다가 곱게 차려입은 앞자리 남성이 데이팅어플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좌석의 높이 차이로 인해 시야에 들어와서 보였을 뿐이다) 화면에 뜨는 얼굴들은 남성이었다. 연신 머리를 매만지며 메신저를 하는 것을 보며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는가 싶었다.

 

종종 대중교통에서나 공공장소에서, 길에서, 마을에서 성소수자들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이렇게 길에서 나와 같은 성소수자를 마주칠 때면 왠지 모를 동지(실제로 대만에서는 동성애자를 同志 로 지칭한다)를 만난 기분에 반갑기도 하고, 남(이성애자)들은 보지 못하는 존재를 나만 볼 수 있다는 기분이 들어 두 차원의 세계를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서울에서 “내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없는데?” 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인지하고 있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대기업과 (소위 명문)대학, 의료기관,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몰려있는 인구 밀집 대도시 서울에서는 성소수자들 또한 많은 수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10명은 동성애자라고 하는데 그들도 서울에 많이 몰려있으니 동네에서,대중교통에서,학교에서,직장에서 최소 1명 이상은 마주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자주 간다는 종로나 이태원이 아니더라도 내가 살고있는 마포에서 종종 손을 잡고 걷는 남남커플이나, 성소수자임을 당당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상징들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이들을 마주치곤 한다.

 

제주도에서 올라와 망원동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내가 망원동에 처음 살게된 건 성소수자 공동주택인 무지개집에 입주하면서였다. 게이커플과 레즈비언커플, 1인 가구들로 이루어진 성소수자 구성원들은 함께주택협동조합을 통해 망원동에 터를 잡고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지금은 독립해서 옆동네인 성산동에 살고 있지만, 무지개집을 지으면서 망원동이 얼마나 성소수자 친화적인 동네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마포는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라는 성소수자 주민모임도 활동했었고,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이었던 ‘레인보우보트’에서 지역별 유권자수를 조사했을 때도 가장 많은 수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곳이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나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같은 성소수자 인권단체들도 있고,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활동들을 하는 활동가,시민들도 많이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교동에 있는 무지개의원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는데, 무지개의원은 성소수자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의료사회적협동조합 병원이다. 쓰면서 보니 내가 사는 동네는 무슨 성소수자의 천국인 것 같은데, 실제로 내가 사는 마을에 성소수자 친화적인 공간들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행복감이나 만족도는 높아진다.

 

내가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마을공동체 안에서 성소수자로서 함께 잘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통계청에서 조사한 2020년 한국사회지표에 의하면 동성애자를 자신의 친구,직장동료,이웃 중 어떤 관계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중이 57%나 된다고 한다. 통계작성이 시작된 지난 2013년(62.1%)에 비하면 소폭 나아진 수치이지만, 그에 비해 성소수자에 대한 정치제도적 부분들이 크게 나아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013년 마포구청은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 “LGBT,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 와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에 대해 게재 불가 입장을 통보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았다. 2014년에는 성북구청장이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된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를 지역 목사들의 압력에 굴복해 무산시키기도 했었다.

 

이 외에도 성소수자 행사에는 장소 사용을 거부하거나 행정문서에 ‘성소수자’를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등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고 차별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에서 경험하게 되는 미묘한 차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사회적 합의’를 언제나 핑계거리로 삼지만 합의의 주체도 대상도 모호하기만 하다.

 

인구 감소로 지방이 소멸해 간다는데, 소멸한 지역에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같은 성소수자 주거지역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상상에 잠겨보기도 하지만, 일단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에 내가 살고있는 곳에서부터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 있다. 지역에 있는 의료사회적협동조합에 가입해서 병원을 이용하고, 생활협동조합에서 식료품과 물건을 구매하고, 공동체화폐를 사용하고, 공동체은행에 저축을 한다.

 

자생적 청년모임을 통해 마포를 생활권으로 살고있는 청년들과 교류하고, 마포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도 활동한다.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이용하고,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가게를 이용한다. 가능한 한 많은 곳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드러내며 살다보면 성소수자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기회도 많아지고 거리감도 조금씩 줄어들지 않을까 하면서, 꼭 국회나 청와대에서만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마을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다 정치라고 생각하며 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연구를 통해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도시에 훨씬 더 창의성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정체성으로 인한 억압이나 제약 없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간다고 한다. 기후위기, 팬데믹, 사회 양극화 등등 이전에는 없었던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의성이 필요하다.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문화에서는 그러한 창의성은 발휘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도 경제선진국의 반열에는 들어섰지만, 국민이 행복한 국가인가 물었을 때에는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성소수자인 국민도 행복하다면 그 사회는 분명 대다수의 국민이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시사뉴스는 청년정치를 연재합니다. [코로나 시대 미래정치: 정치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번 시리즈를 통해 대한민국 청년들이 원하는 정치의 모습을 담고자 합니다. 연재된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에도 그들의 의견을 가감없이 지면에 담았습니다.

 

이번 글은 서진석 미래당 성평등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서 위원장은 ▲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상근활동가 ▲전 청년연대은행토닥 대의원을 거쳐 지금은 ▲2021 서울시민회의 위원 ▲ 마포구 청년정책네트워크 다음자리분과 부분과장 등 소수자 인권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본 시리즈에 참여하고자 하는 청년정치인들은 언제든 이메일로(sisanews@hotmail.com) ▲자신의 의견과 ▲사진 등을 보내주시면 검토 후 게재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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