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60억 달러(8조원가량)의 반도체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미국 텍사스 주에 위치한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건설이 더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예상보다 큰 규모에 금액을 보도하자 업계에서는 호재(好材)를 외치고 있지만, 일각에선 미국이 보조금을 앞세워 삼성전자에 족쇄를 채우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8조원 보조금 美 정부 조만간 발표

지난 15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6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미 상무부는 이르면 이달 말 삼성전자에 지급할 정확한 보조금 액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의 보조금 규모가 불확실했는데, 삼성전자에 대한 구체적인 보조금 예상치가 알려진 건 이번이 최초이다. 그간 업계에서 추정한 삼성전자 보조금 규모는 20억 달러 안팎으로 예측했으나, 이번 미국이 지원하는 60억 달러는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액수로 알려졌다.

미국 보조금이 늘어난 이유는 ▲삼성전자가 미국 테일러 공장설립 계획 외에 추가 투자를 약속해 인센티브 규모가 늘어난 것▲미국에 파운드리 또는 메모리·최첨단 패키징 공장을 추가로 1~2개 더 설립 결정으로 인해 보조금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의 이번 보조금 지급은 ‘반도체과학법(일명 칩스법)’에 따른 것으로, 반도체 기업이 미국 내 현지 공장을 건설하고 칩을 생산할 경우 지원금을 준다는 것이 법의 취지다.

현재 삼성전자 파운드리 주요 경쟁사인 대만 TSMC의 미국 투자 규모는 400억 달러로 삼성전자 173억 달러에 비하면 2배 이상의 수치다. 이렇다 보니 파격적인 대우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미국에 400억 달러를 투자한 TSMC가 50억 달러를 지원받는다면, 60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받을 수 있는 삼성전자는 더 많은 투자를 요청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삼성, 268억 달러 美 경제 기여 보고서공개

지난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73억달러를 투자해 짓고 있는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올해 안에 완공할 계획을 잡았지만, 인건비 등 현지 물가가 많이 올라서 공장건설 비용은 최대 250억 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실제로 TSMC(50억달러)보다 많은 수준의 보조금을 받으면 공장 건설 지연 우려가 최소화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공장을 해외에 건설하는 것은 텍사스 오스틴시 공장에 이어 테일러시가 두 번째다. 테일러 공장에서 삼성전자는 5G(차세대통신), HPC(고성능컴퓨팅), AI(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반도체를 만든다. 특히, 첨단 반도체 공정인 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도입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미국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이유는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 서버 개발 열풍과 맞물려, 빅테크업체들의 자체 AI 칩 개발 시도가 이어지는 점은 삼성전자의 신규 고객사 확보에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AI 칩 분야 스타트업인 그로크(Groq)의 차세대 AI 칩을 수주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반도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4나노 공정 중에서 HPC 제품을 타깃으로 하는 'SF4X'를 적용해 만든다. 삼성전자의 4나노 공정 수율은 최근 70%대까지 높아져 경쟁사와 동등한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과 테일러 공장 건설을 통해 지난해 창출한 경제적 기여가 268억 달러에 달한다는 ‘2023년 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삼성은 1996년부터 텍사스주 오스틴 캠퍼스에 2개의 공장을 운영하는데 18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는 미국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국인 직접 투자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268억 달러로, 전년 136억달러 대비 2배 증가했다. 테일러 공장 확장 이전인 2021년(63억 달러) 대비 4배에 달한다. 여기에 추가로 연 2억4,560만 달러의 과세 수익도 창출했다.

반도체법 보조금 ‘독소조항’ 감내해야

업계에선 예상보다 높은 삼성전자 보조금 규모에 일단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도 “대만 TSMC와 비슷한 규모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미국이 삼성전자에 기대를 많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라인 증설이나 신규 투자 등을 통해 삼성이 미국 반도체산업에 많은 이득을 줄 거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삼성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고 미국 내 라인증설이나 투자 여력이 생기니 사업 확장의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첨언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나와있는 ‘독소조항’을 감내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 요건의 4대 독소조항을 보면 ▲초과이익을 달성할 시 미 정부에 보조금에서 최대 75%까지 공유▲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중국 내 생산능력은 5% 이상 증설하지 못하도록 ‘가드레일’ 조항을 달 수 있는 점▲상세한 회계자료 제출 의무화 등의 조건이 있어 기업 경영에 족쇄를 채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위협과 기회가 모두 공존하는 이 상황에서 SWOT 분석에 따라 위협을 줄이고 기회요인을 늘리려면 삼성전자가 미국에 추가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을 설립하겠다고 어필한 것처럼, 약속한 초격차 기술을 갖춘 팹, 이를 뒷받침할 수주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