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우리나라 건설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원청사의 고질적 ‘하도급 갑질’ 행태라는 심각한 모순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국내 건설 현장의 하도급 갑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건설업계는 오랜 기간 수직적 관계가 만연하여 건설 원·하도급 생태계에선 공사대금 미지급 등 불공정 거래 이슈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난해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건설 하도급 분쟁에 대한 민원이 전년 대비 25% 증가하여 500건 가까이 접수되었다. 이 중에 대금을 주지 않아 발생한 분쟁이 무려 60%가 넘는다고 하니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
이러한 건설 하도급 분쟁은 원청업체의 갑질 행위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건축 분야에는 아직도 시공이 끝나고 돈을 주는 ‘선시공 후지불’ 관행이 남아있기에 건설 하도급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사를 충실히 이행했음에도 수금이 되지 않는 갑질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진다. 발주처가 추가 공사 대금을 일방적으로 떠넘기거나 준공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건 다반사다. 공사대금을 일방적으로 깎는 일명 ‘단가 후려치기’뿐 아니라 심지어 아예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형 건설사들의 갑질에 열악한 중소 건설사들은 불공정한 계약과 원청의 무리한 요구, 불합리한 제도 탓에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부도 위기에 내몰리더라도 마땅히 보호할 장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하도급법 위반 사항으로 명백한 불법이다.
이런 현실에 건설업 전용 ‘민간공사대금채권보험’(매출채권보험) 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주처의 공사대금 미지급 위험으로부터 중소건설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현재 SGI서울보증보험의 ‘공사대금지급보증’, ‘매출채원신용보험과 신용보증기금의 ‘매출채권보험’ 등의 공사대금 보호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가입 조건이 까다롭고, 높은 보험료 등의 이유로 중소건설사들의 외면을 받는 실정이다.
건설 하도급 분쟁 조정 신청 사건의 대부분도 대금 미지급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원·하도급사 간 공사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분쟁조정 건수가 대다수이며, 원·하도급 분쟁조정 총 1,129건 중 원청사의 공사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분쟁이 약 70%에 해당하는 787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원사업자가 하청업체에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을 우려가 커지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급보증이 없는 건설사를 대상으로 1,788억원 지급보증 신규 가입을 유도했다.
공정위는 지난 12일 건설사 87곳을 대상으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긴급점검에 나섰다. 그 결과 ▲지급보증 미가입 ▲변경계약 후 지급보증 미갱신 ▲불완전한 직불합의 등 총 38곳의 551건의 규정 위반이 드러났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제도는 건설하도급공사에서 원사업자의 지급불능 등 사태 발생 시 하청업체가 보증기관을 통해 대금을 지급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원사업자의 의무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공사대금이 미지급되어도 하청업체는 업계에서 소외될까 분쟁조정을 하기도 쉽지가 않다고 말한다. 원청에 한번 찍히면 공사수주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공사비 미납이 장기화되면 현장의 모든 여건이 최악의 경우에 직면하게 되어 가장 우선시 되고 기본이 되어야 하는 안전관리까지 소홀하게 된다는 점이다.
공사대금은 인간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기에 미수금이 자주 발생하거나 장기화되면, 혈관이 막혀 업체는 파산하게 된다. 수주를 맡은 건설업체가 부도가 나면 협력업체도 줄도산하기 때문에 악의적인 공사대금 미지급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악의적인 공사대금 미지급은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