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교자 시성 40년 시복 10년,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 특별전 개최

2024.06.13 17:20:36

-한국근현대사 100년 속에서 한국 천주교회 시복・시성식 제대로 바라보기
-올바른 역사 이해 위해 정치, 사회, 문화, 종교의 역사 총체적으로 바라봐야

 

올해는 한국 천주교에서  순교자 시성한지 40년, 시복한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지금부터 240년 전이다.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 따르면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프랑스 사람 그라몽(Grammont)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왔을 때부터 본격적인 신자들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서학(西學)을 연구하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를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승훈은 귀국하자마자 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지금의 명동 성당 부근 명례방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는 외국인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일한 일이다.

 

이렇게 들풀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천주교는 철저한 계급사회이자 폐쇄적인 봉건왕조 조선에서 핍박당하기 시작했다.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1871)  등으로 인해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심한 고문을 당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은 한국 순교자 시성 40주년, 시복 1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기획전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을 8월 18일까지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이란 한국 천주교회의 여명기에 조선시대 성리학적 신분 사회의 사슬을 끊고 인간 존엄과 평등, 이웃 사랑의 정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던 ‘순교자’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이들은 단순한 종교나 학문적 경향을 넘어 조선 후기 정치,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는 큰 흐름의 하나가 되었다.

10년 전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선시대 가장 오래된 왕궁인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천주교회의 순교자 중 124명을 공경의 대상인 복자(福者)로 선포했다. 이는 대역 죄인으로 삶을 마칠 수 밖에 없었던 순교자들의 신원을 복원하는 의미가 담긴 일이었다. 

 

2014년 외에도 우리 사회가 경험한 시복식(諡福式)은 1925년과 1968년에 더 있었다. 그후 1984년에 있었던 시성식(諡聖式)은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고 사회의 불평등을 제거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킨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1925년의 첫 시복식은 기해박해(1839년), 병오박해(1846년) 순교자 79위에 대한 시복식이었다. 당시 시복식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천주교순교자표창식'이라 표현한 동아일보 3월 19일자 기사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경향잡지사 사장이었던 한기근 신부가 유일한 한국인 사제로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시복식에 참여했다. 주례는 교황 비오 11세가 했으며 나라별 시복자 순위를 따졌을 때 한국은 79위였다.

한반도의 사목을 맡았던 뮈텔주교(71세)와 드망즈 주교(50세. 경향신문 초대 발행인겸 편집장)가 로마의 시복식에 참석했다.  당시 배를 타고 3개월(2208시간)에 달하는 여정을 떠났던 것을 생각하면, 99년 전 첫 시복식은 일제 치하에서 얼마나 가슴 떨리는 대단한 사건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 내용은 한기근 신부가 경향잡지에 연재한 '로마 여행 일기'를 바탕으로 했다. 첫 시복식은 1932년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 보다 7년 전이었다. 그리고 1945년 광복 보다는 30년 앞서 치러졌다. 

 

1968년 두번째 시복식은 교황 바오로 6세 주례로 로마 성베드로 성전에서 집전되었다. 병인박해(1866~1871) 순교자 24위가 시복되었다.  김수환 당시 대주교를 포함한 한국 순례단 136명이 전세기를 이용해 20시간의 여정을 떠났다.

 

당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시복식전에 성지 순례단을 모집한 내용이 가톨릭신문에 실렸으며, 성직자 순례단을 포함해 파독 간호사와 교포, 유학생 등 모두 500여명이 참석했다. 시복자 순위는 24위로 껑충 뛰었다. 

 

 

2014년 세번째 시복식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한국 방문으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그해 8월 16일 치러졌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대한 시복식과 대전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위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는 행보이기도 했다. 

한국천주교회는 200주년이던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방한을 요청하는 서한을 2년 전인 1982년 보내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화답하듯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방한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시성식을 주례하며 세계적인 뉴스가 되기도 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식할 당시 하늘에 십자가 형상의 구름이 나타났다는 사진 기사를 싣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 방한과 시성식 이후 한국천주교회는 '이 땅에 빛을'이라는 200주년 슬로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나눔의 실천으로 '무료 개안 수술' 사업을 전국 11개 병원에서 시행하기도 했다.  교인은 1925년 9만6,351명이었으나, 2023년 597만 675명에 이른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원종현 관장 신부님은 "특별전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은 한국근현대사 100년 속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시복・시성식을 바라보고자 하는 전시"라고 안내하고,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 사회, 문화, 종교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이화순 칼럼니스트(Ph.D) artvisio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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