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대한제국’에 대한 학계의 입장은 크게 엇갈린다. 하나는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약육강식의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해 망국을 초래했다는 비판이고, 또 하나는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했지만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긍정적인 면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식 기록에서는 볼 수 없는 면면들
저자는 당대를 살았던 각계각층의 5인을 섭외했다. 서구 문물을 앞장서서 수용한 식자이자 국내외 인사와 만나며 광범위한 활동을 벌인 정치인 윤치호, 천주교를 포교하면서 대한제국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정국을 지켜본 프랑스인 신부 귀스타브 뮈텔, 당대의 인물과 사건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책을 남긴 지식인 정교와 언론인 황현, 그리고 일반 백성의 시각을 생생하게 전해줄 상공인 지규식 등이 그 주인공이다.
왜 저자는 5인의 기록을 선택했을까? 가장 먼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쓴 〈윤치호 일기〉다. 이 일기는 국내외 정세와 지방 사회 동향을 상세히 기록해 이미 사료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더불어 개인의 정세 인식, 일제의 조선 통치 정책에 대한 복잡 미묘한 견해, 독립운동에 대한 부정적 판단, 조선의 역사·문화와 조선인들에 대한 인식도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저자는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볼 수 없는 고종 독살설이나 유길준의 을미사변 관련설 등 당시 풍문으로 전해졌던 각종 사건의 뒷이야기 등에 관한 기술도 소개했다.
다음은 귀스타브 뮈텔이 조선 교구장에 임명된 1890년부터 1933년까지 쓴 〈뮈텔주교일기〉다. 그의 일기에는 조선 정계 인물의 활동이라든가 외국 열강의 움직임 등이 수시로 언급된다. 또한 고종이나 관료들과 나눈 대화 등 〈조선왕조실록〉이나 각종 관서에서 생산한 기록물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어 한국 근대 정치사와 외교사의 이면을 살필 수 있다.
제국의 탄생부터 망국까지
정교의 〈대한계년사〉와 황현의 〈매천야록〉은 당대 신문 자료와 기타 공식 기록을 최대한 활용해 서술한 역사서로서의 요건을 갖춘 야사(野史)다. 〈대한계년사〉는 정교가 시차를 두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당대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자료를 검토해서 정리했다는 점에서 앞의 두 일기에서는 밝히지 못했던 역사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황현은 자신이 직접 견문한 사건뿐 아니라 수시로 구독하거나 수집한 신문이나 목격자의 전언, 기타 자료들도 망라해 〈매천야록〉을 서술했는데, 그의 사건 선별 및 기술 방식은 당대 사건의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농촌형 유학자에 가까운 황현과 도시형 개화 지식층이라 할 수 있는 정교, 이 두 사람의 다른 역사관과 현실 인식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지규식의 〈하재일기〉이다. 지규식은 자기(瓷器)를 왕실과 관부에 조달하는 평민 출신 공인(貢人)으로, 41세인 1891년부터 1911년까지 매일 일기를 남겼다. 정국의 변동이 극심하고 외세의 침략이 두드러진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의 고민과 고통이 잘 드러나 있어, 그의 세계관과 현실 인식을 통해 평민들의 사회의식과 국가관을 단편적이나마 엿볼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인 저자는 ‘그들의 대한제국’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대한제국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책에 통사적인 면모를 부여한다.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수립에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 러일전쟁과 을사늑약, 헤이그 특사 파견과 군대 해산, 의병전쟁과 일제 강제 병합에 이르는 역사적 사건들의 맥을 차례로 짚어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토대 위에 5인의 논평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직설적으로 평가함으로써 대한제국사의 주요 사건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