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러시아 소녀
고독한 인간 마음의 풍광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러시아의 해변에서 한 소녀가 태어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알리사. 그녀는 엄마도 한 번 밖에 본 적이 없다는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 아빠가 돌아오면 멋진 춤을 보여주기 위해 발레리나의 꿈을 키우고 있다. 스스로를 인어공주라 생각하는 알리사의 가슴에는 동화의 인어공주처럼 꿈과 희망이 가득하지만 현실은 온통 그녀를 좌절시키는 것들뿐이다.
바다 마녀를 닮은 엄마는 그녀의 꿈이 쓸데없는 것이라 하고 생기를 잃은 할머니는 그녀의 희망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어느 날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본 알리사는 집에 불을 질러 버린다. 한 자락의 소망도 남겨두지 않는 현실에서, 알리사는 마음의 문과 함께 입을 다물어 버린다. 말을 못하게 되자 엄마는 알리사를 장애 학교에 보낸다. 그런데 그 곳에서 그녀가 배운 것은 엉뚱하게도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술. 사과 나무의 사과를 눈짓만으로 툭툭 떨어지게 하는 작은 일부터, 마을에 태풍이 몰려오게 하는 거대한 일까지 가능해진 알리사의 현실에는 동화를 능가하는 파란만장한 모험이 마법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강에 뛰어드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발랄한 영상과 슬픈 이야기
동화 속의 인어공주가 현실에서 실제로 태어난다면 어떨까? 그녀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태어나게 된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동화도, 애니메이션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태어나게 된다면? 그것도 미국이 아닌 러시아에서. 이와 같은 질문들이 영화 ‘나는, 인어공주’를 태어나게 했다. 올해 초에 개봉한 ‘마법에 걸린 사랑’이 백설공주가 현실에 태어나서 겪는 동화적 판타지와 이성적 세계의 충돌을 그린 것과 흡사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인어공주’는 ‘마법에 걸린 사랑’처럼 대중적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몽환적인 색감과 색다른 감수성이 톡톡 튄다. 하지만 팔자 사납고 사연 많은 알리사의 이야기를 사랑스럽고 발랄한 유머로 풀어가는 영상언어는 관객에게 충분히 즐길 거리를 준다.
1989년 개봉한 월트 디즈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기존의 인어공주의 이미지를 뒤짚는 명랑하고 적극적인 캐릭터인 애리얼의 모험을 다이나믹하게 펼치며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적극적으로 성취하는 애리얼의 모험담은 과거와 달라진 시대상과 여성상을 스크린에 투사시키며 대중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끌어 냈었다. 더욱이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재창조 하여 신선한 감동을 줬다.
하지만 디즈니가 창조한 마냥 행복한 세상은 원작보다 더 판타지가 아닐까. ‘나는, 인어공주’에서 주인공은 가열찬 현실을 살아간다. 꿈꾸는 모든 것이 좌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간다. 주인공이 의지가 대단하거나 캔디처럼 무조건 긍정적인 소녀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각박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모두가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살아내듯이 영화 속 알리사 역시 사랑이라는 구원을 만난다. 예기치 않은 결말로 향하는 영화는 삶과 사랑에 대한 주제를 공고히 하며 깊은 파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같은 결말과 현실의 처절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적 내용과 판타스틱한 영상문법의 간극은 미묘한 아이러니로 가슴을 울린다.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감 독 : 류승완 출 연 : 임원희, 공효진, 박시연, 황보라, 류승범

엑스 파일 :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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