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시절 시사뉴스의 광주항쟁 화보는 사회에 충격을 던져줬고, 국민들은 경악하고 분노했다. 본지의 보도가 나간 직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지금의 국정원 전신)로부터 시사뉴스(당시 시사정경)는 수차례 수정 요청을 받아야 했고, 이외 안팎의 숱한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시사뉴스는 버티기로 했다. 어두운 사회 이면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시사뉴스는 발행을 멈추지 않았고 창간호 5판 인쇄라는 전례없는 기록을 남겼다. 서민편에서 마음을 담아내는 신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창간 19돌 아직 미성년이지만 더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시사뉴스의 소년기’ 를 돌아본다.
◆펜을 꺾지 않으니 생명이 위험
시사뉴스가 가진 팬은 올곧음이었다. 꺾이되 굽히지 않겠다. 그러나 그런 굳은 의지는 강신한 발행인에 대한 테러로 이어졌다.
한국 정치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회자되는 1991년 3당 합당(민정, 민주, 공화당)에 대해 시사뉴스는 같은해 3월 호에서‘제 13대 국회 해산하고 14대 총선 다시해야’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정치권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직후, 생명의 위협이 찾아왔다. 서울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8시쯤 귀가하던 강신한 창간발행인은 괴한 3명으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는 사상 초유의 언론인 테러 사건으로 기록됐다.
강신한 발행인은 즉각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려 진실을 밝히려 했으나 끝내 범인들은 검거되지 않았고,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언론인들 뿐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 분노로 남은 채 세월 속으로 묻혀 가고 있다.
◆독자들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강신한 창간발행인은 “시사뉴스가 정론직필의 창간이념을 세상에 드리우고 결실을 맺기 위해 한낱의 밀알을 뿌린지도 어언 19년이 흘렀다”고 회고한다.

강 발행인은 “이에 시사뉴스와 인터넷 시사뉴스의 창간발행인을 비롯한 임직원 모두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중심언론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며“뿐만 아니라 시사뉴스와 인터넷 시사뉴스의 창간발행인을 비롯한 임직원 모두는 오늘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저희가 먼저 독자들을 찾아가는 자세로 일할 것도 다짐한다”고 공언했다.
강 발행인은 “다시 한번 지난 19년 동안 변함 없는 애정과 관심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마음속으로부터 깊은 고마움을 드린다”고 거듭 고개 숙였다.
창간호의 광주 민주화항쟁 참상 공개를 비롯해 재벌 기업들의 정경유착, 대기업의 노동자 탄압, 국가 고위기관의 비리 폭로 등 권력과 자본의 힘에 굴하지 않고 오직 민중과 다수의 약자편에서 펜 들기를 멈추지 않았던 ‘시사뉴스’. 이제 창간 19돌을 맞이하며 더 높이 도약하고 탄탄한 언론의 자세를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창간19주년' 통권 316호(창간 특집)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