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칼럼】 들어라 똥팔육아!

2021.11.30 16:08:59

[시사뉴스 강영환 칼럼니스트] 내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본격 갖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초기시절일 것이다.

 

1984년 대학에 입학한 후 아크로폴리스의 장미나무를 뽑고 5층 도서관의 쇠창살을 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대학생활은 독재타도의 비장함만큼이나 경찰 곤봉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생활이었다. 그 이후 소시민인 나는 그저 신림동 술집의 막걸리랑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군생활을 보내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해갔다. 3당 합당이 이루어지고 정치권은 이합집산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대학생활 때의 우상들은 제도권으로 향했다. 당시 야당으로 간 사람이 많았지만 보수 여당을 택한 이들도 제법 많았다. 어쨌든 제도권은 따뜻했을 것이다. 막걸리를 함께 했던 많은 친구들은 자신의 길을 갔다. 고시에 도전하고, 언론사를 준비하고 대기업으로 향했다.

 

나는 남들따라 언론사를 준비하다 그 공부도 막걸리 마시는 것보단 못했기에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우연히 선배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직장, 제일기획을 만났다.

 

솔직히 뭐하는 회사인지도 몰랐고 '내삶에 왠 광고?' 하면서 다니기 시작한 직장, 제일기획 생활 역시 술이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었다. 선배들이 술사주고 밤새 동료들과 어울리고. 아무리 광고가 좀 특이한, 젊은 감각의 일이라 할지라도 대기업 쫄병생활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술맛보단 못하다. 그러다가 내게 미션이 부여되었다.

 

그 미션은 다시 한번 내게, ‘나라’라는 것을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이미지관리 프로젝트가 내게 주어졌다. 제2건국운동, 신지식인운동, 생산적 복지론, 규제개혁, 국민과의 대화. 1987년 대선에서 찍었으나 패배한 우상을 대상으로 이런 일들에 내가 조그마한 기여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밤을 세워 일해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나라밖 레이건 대통령이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를 말할 때의 그 모습을 당시 나의 우상에게 담고 싶기도 했다. 우상이 노벨상을 탔다. 그렇다고 내게 월급이 올라가거나 상여금이 나온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았다. 나의 우상이였기에. 

 

그리고는 세기가 바뀌었다. 아니 세기를 넘어 이젠 뉴밀레니엄, 시대가 바뀌었다. 나는 직장을 옮겼다. 그리곤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었다. 그리곤 지금 2021년까지 왔다. 그러는 동안 제법 시대의 어른이 되었다. 게다가 실제 손녀까지 세상에 나왔으니 어른이 맞다. 이 어른세대를 시대는 세상은 586세대라 부른다.

 

요즘 다시 선거철이 되니 ‘나라’라는 것에 관심이 더욱 커진다. 1999년이 떠오른다. 제2건국운동, 신지식인운동, 생산적 복지론, 규제개혁, 국민과의 대화. 그런데 이들이 필요했던 20년도 넘은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보인다. 물질문명은 획기적으로 바뀌었는데, 일하는 주체세대도 바뀌었는데 정치와 나라는 도무지 바뀐게 없다.

 

오히려 암흑으로 물들여진 듯하다. 

 

제2건국이 필요할만큼 나라는 비정상이고,

신지식인운동이 필요할 만큼 구시대인물이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고,

생산적 복지론은 그들만의 생산적 이권분배론으로 전락하고,

규제는 그들편을 지키는 방어막이 되고,

국민과의 대화는 오직 권력을 앞에 둔 그들만의 대화가 되버렸다. 이것을 586이 해냈다. 그래서 남들은 우리 586을 '똥팔육'이라 부른다. 

 

들어라 똥팔육아! 이젠 더이상 학생운동한 걸 갖고 우려먹지 마라. 이 당이건 저 당이건 제도권 기웃거리면서부터 우리들의 얄팍한 순수성은 이미 저당잡혀먹은지 오래됐다.

 

어차피 이 당이나 저 당이나 권력을 쥔 똥팔육들이 새 시대라고 포장해서 뭔가를 들이밀겠지만 세상은 다안다. 또 해쳐먹으려는 술수가 가득해 있음을. 제2건국운동, 신지식인운동, 생산적 복지론, 규제개혁, 국민과의 대화가 아직도 먼 숙제이고, 이것들이 이 땅에 진정 필요하다는 반성, 여기까지가 우리들의 임무다. 이왕 정치에 발붙인 김에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남겨진 소명이 있다면 딱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다음 세대다. 40대의 세상을 열어주고 2,30대가 따라가도록 등 두드려 줘야 한다. 그리고 이젠 추억의 술집에서 막걸리 한사발 할 때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영환 bridge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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