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일상에 널리 사용되는 플라스틱은 끊임없이 미세한 입자를 내보내며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거나 가열, 또는 화학 처리할 때 미세플라스틱과 나노입자가 방출되면서 몸에 흡수돼 신체 조직 전반에 과민성 면역 반응을 유발하고, 여러 신체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 기능을 교란한다.
독성물질 해독하는 간이 지친다
중앙대 동물생명공학과 방명걸 교수 연구팀은 플라스틱에 포함된 내분비교란물질이 포유동물의 간을 손상하는 것은 물론 대사질환을 유발한다는 점을 입증했다.
호르몬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는 유해한 내분비교란물질을 가리키는 EDC는 흔히 환경호르몬이라 불린다. 화장품, 플라스틱, 알루미늄 캔, 의약품 등 소비재에 널리 사용되는 비스페놀A(BPA)와 프탈레이트 등이 대표적인 EDC다.
BPA와 프탈레이트는 신체의 화학적 신호를 조절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구조적으로 유사해 정상적인 호르몬 기능을 조작하고 방해한다. 에너지를 대사하고 독성물질을 해독하는 간이 특히 큰 영향을 받는다.
간은 소변을 통해 EDC를 배출하고자 무독성 수용성 대사 산물로 전환하는데 이 과정에서 세포 사멸과 장기 부전을 유발하는 반응성 중간체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방명걸 교수 연구팀은 BPA와 7가지 프탈레이트 화합물로 구성된 EDC 혼합물 노출이 생쥐의 간 기능과 대사 항상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정의한 인체 일일 노출 허용 한도(DE, Daily Exposure) 내에선 문제가 없었지만, EDC 혼합물 용량을 허용 한도의 25배, 250배, 2500배로 높였을 때 문제가 나타났다.
간의 전체 무게가 증가하는 데 더해 지질, 트리글리세리드, 콜레스테롤, 혈당 수치가 상승하는 것이 관찰됐다. EDC가 포도당의 생산과 수송 경로와 관련 있는 핵심 유전자 발현에 관여함으로써 간 건강을 악화시킨 것이다. 간의 효소 변화 여부를 확인한 결과 콜라겐 섬유의 침착 증가로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과 간 섬유증의 진행 위험이 더 커졌으며, 지방간염이 발생하는 것도 확인됐다.
뇌에 가장 많이 축적
또한, 플라스틱은 뇌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뉴멕시코대 연구팀은 2016~2024년까지 뉴멕시코주 엘버커키 검시소에서 채취한 인간의 간, 신장, 뇌의 전두엽 피질 부검 샘플을 분석한 결과 인체에 유입된 미세 플라스틱이 뇌에 가장 많이 축적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8년간 법의학적 부검을 받은 시신 92구를 분석했는데, 모든 장기에서 미세 플라스틱 수치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같은 기간 뇌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의 양이 5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뇌 샘플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의 양은 신장과 간 등 다른 장기보다 최소 7배에서 최대 30배 많았다.
연구 주저자인 매튜 캠펜 뉴멕시코대 제약학 교수는 “평균 연령 45~50세인 정상인의 뇌 조직에서 확인한 미세플라스틱 농도는 1g당 4800㎍(마이크로그램), 뇌 중량 기준 0.5%였다”며, “2016년 부검한 뇌 샘플과 비교하면 (2024년 샘플이) 약 50% 더 높은 수치로, 오늘날 우리의 뇌가 99.5%만 뇌이고 나머지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심장과 대혈관, 폐, 간, 고환, 태반 등 장기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는데, 뇌 조직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은 다른 장기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보다 크기가 작았다.
캠펜 교수는 “뇌는 100~200㎚ 길이의 아주 작은 나노 구조를 끌어들이는 반면, 1~5㎛ 길이의 큰 입자는 간과 신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플라스틱 입자가 장기로 유입되는 원인으로 ‘지방’을 꼽았다. 플라스틱이 지방이나 지질을 좋아해 우리가 섭취하는 지방과 함께 혈액을 통해 장기로 유입된다는 것이다. 특히, 뇌는 무게 기준 약 60%가 지방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장기보다 지방을 훨씬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세 플라스틱이 더 많이 발견됐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뇌 안에 미세플라스틱 증가가 전 세계적으로 알츠하이머병과 기타 치매 질환의 발병률 증가와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알츠하이머를 포함해 치매로 사망한 사람들의 뇌 샘플 12개를 살펴본 결과, 건강한 뇌보다 10배 많은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플라스틱 화학물질의 어린 시절 노출이 지능지수(IQ) 저하와 자폐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신경발달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보고 또한 적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노출되면 위험 커
플라스틱은 특히, 태아나 영유아 시기 때부터 몸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며, 성인이 됐을 때 만성질환을 비롯해 여러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뉴욕대 랑곤 헬스 연구진은 플라스틱 제품에 어린 시절부터 노출되면 건강 위험이 커지고, 성인이 돼서도 각종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천 명의 임산부, 태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플라스틱의 독성 물질들은 심장병, 비만, 불임, 천식 등 각종 만성 건강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은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만드는 프탈레이트, 단단하게 만드는 비스페놀, 내열성과 방수 기능을 향상시키는 과불화알킬물질(PFAS) 3가지 화학물질에 주목했다.
연구 주저자인 레오나르도 트라산데 뉴욕대 그로스먼 의과대 소아과 교수는 “플라스틱이 청소년기부터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여러 만성 질환의 초기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런 화학물질이 식품 포장재, 화장품, 영수증 등 다양한 곳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대학교 연구진 또한 임신 중 초기 신경발달 시기의 환경호르몬 노출은 성인기 뇌에서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정 교수팀은 알킬페놀류 내분비계 교란물질 일종인 옥틸페놀(4-tert-octylphenol)이 실험용 쥐의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논문에 실었다. 연구팀은 신경발달 시기의 옥틸페놀 노출이 에스트로겐 신호전달 경로를 통해 성체 자손 마우스의 미세아교세포(microglia)의 형태 및 기능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했다.
교세포는 신경세포의 기능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뇌 발달 과정 동안 신경세포의 이동 및 생성, 사멸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특히, 미세아교세포는 뇌 내 손상된 세포를 제거해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면역세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