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2.06 (토)

  • 흐림동두천 -3.3℃
  • 맑음강릉 4.0℃
  • 구름많음서울 -0.7℃
  • 맑음대전 -5.3℃
  • 맑음대구 -4.1℃
  • 맑음울산 -0.8℃
  • 맑음광주 -3.0℃
  • 맑음부산 0.9℃
  • 맑음고창 -6.3℃
  • 구름조금제주 5.3℃
  • 구름많음강화 -0.5℃
  • 맑음보은 -8.1℃
  • 맑음금산 -7.9℃
  • 맑음강진군 -6.0℃
  • 맑음경주시 -5.4℃
  • 맑음거제 -2.2℃
기상청 제공

기본분류

어느 신입생의 죽음과 세계수준 연구중심 대학

URL복사

김명환 - 서울대 영문과 교수

지난 1월 8일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신입생 한명이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이 학생은 국내외 로봇 경진대회에서 상을 휩쓴 젊은이였고, 입학사정관제에 따라 잠재력을 인정받아 전문계고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09년 이 학교에 입학했다. 일반고를 다니다가 로봇 공부를 위해 전학했을 정도였다니, 마침 새로 생긴 특별전형제도로 합격했을 때 본인과 가족의 기쁨과 기대는 누구나 짐작할 만하다.

이 학생은 열심히 공부했지만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려웠다고 한다. 수학과목에서 낙제했고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들이 버거워 학사경고가 나왔다. 언론들은 입을 모아 과학고 출신보다 수학능력이 취약한 일반고·전문계고 출신을 위한 사전교육 프로그램이 미비하다거나 학생상담 등 사후 프로그램이 튼튼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모두 타당한 보도지만, 세심한 학생지도의 부족은 어느 한 대학이 아니라 한국 대학 전체가 안고 있는 허점이다. 문제 해결방안은 이 비극에 대한 철저하고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접근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징벌적 등록금이라는 희한한 제도

유서도 없었기 때문에 사고 전모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이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 두가지는 다시 한번 부각시켜 따지는 일이 긴요하다. 그것은 징벌적인 등록금 제도와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라는 문제들이다.

카이스트는 입학생에게 등록금 면제와 병역혜택 등을 베풀어 과학기술분야의 영재교육을 해온 특별한 대학이다. 그런데 현 서남표 총장은 개혁의 이름 아래 2008년부터 징벌적인 등록금 제도를 도입했다. 보도에 따르면, 성적 평점이 4.3 만점에 3.0에서 3.3 미만에 머물면 이공계국가장학금으로 면제되던 기성회비를 최대 150만원까지 내야 하고, 3.0 미만은 다시 0.01점마다 6만원을 더 내야 한다. 또 8학기에 졸업하지 못하면 연 1천만원이 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이처럼 희한한 제도가 좋은 성과를 낳은 선례가 과연 나라 안팎에 있었는지, 어떤 납득할 만한 근거에서 이 제도가 도입되었는지 다만 궁금할 뿐이다. 육·해·공군의 사관학교도 생도가 특정 과목에서 낙제가 예상되면 개별 보충수업 등으로 보완 기회를 준다. 합격선에 도달하게끔 거듭 재교육도 하며 그런 후에야 낙제나 퇴교 조치가 뒤따른다. 엄정한 군율이 앞서는 사관학교도 이럴진대, 과학기술 분야의 수재를 육성하는 대학이 학력 보완의 기회조차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돈으로 징벌을 가하면 다 잘하리라는 식으로 나가는 일은 스스로 교육기관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금액은 웬만한 범법행위에 부과되는 벌금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이 징벌적 제도가 전문계고 출신을 포함하여 전체 학생에게 어떤 부작용을 일으켰을지 불을 보듯 환하다.     

영어강의, 강요로 될 게 아니다

특정 대학을 비방하려는 뜻은 조금도 없다. 영어강의 문제에 이르면 그것은 최근 한국 대학을 휩쓸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드디어 터져나오는 것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수학, 과학만이 아니라 영어 역시 실력 향상에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과목이다. 전문계고 학생의 영어능력은 고교입학 시점에서도 다른 고교에 비해 평균적으로 떨어지지만, 고교 교과과정의 영어 비중도 미미해서 사실 대학입학 후에 이를 만회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재직하는 학교의 어느 공대 교수에 따르면, 과학고의 영어 비중도 일반고보다 낮아 과학고 출신 공대생들이 종종 전공 실력은 월등한 데 비해 영어 구사력이 뒤처지고 그러다보니 영어에 더욱 등한해져서 학문적 발전과 사회 진출에 지장이 많다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요컨대 영어가 약한 학생에게 자기 실력을 보완할 기회를 우선 부여해야지 무조건 영어강의를 강요할 일이 아닌 것이다.

로봇 연구에 대한 열정에 불타는 유망한 젊은이가 힘든 내용의 수학, 과학을 영어강의에 대한 충분한 사전훈련 없이 허덕이며 수강하다가 낙제했을 때의 좌절감이 어떠했을까. 관심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자존심 강한 인재였기에 더욱 절망하기 쉬웠을 것이다. 정반대되는 사례지만, 친분이 있는 어느 교수는 한 명문대 공대에 아들을 보냈다. 미국 유학기간에 아이도 그곳에서 몇년을 자란 덕인지 영어를 잘하는 편이지만, 어느 전공과목의 영어강의는 담당교수가 부정확한 발음으로 교재를 읽어내려가는 식이어서 고교시절에 흔히 그랬듯이 강의는 안 듣고 '자습시간'으로 삼았다고 한다. 물론 대학 영어강의 대다수가 이처럼 어이없는 상황은 결코 아니지만 그 부작용은 단순한 과도기적 현상으로 돌리기 곤란하다.

성공사례 찾기 힘든 맹목적 경쟁논리

징벌적 등록금제나 하향식의 획일적 영어강의 강요는 맹목적인 경쟁지상주의나 세계화를 내세운 시장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제도이며, 국내외 어디에서도 장기간에 걸친 성공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믿는다. 면학 분위기 향상을 위한 적절한 당근과 채찍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요, 대학의 영어강의가 내실있게 확대될 필요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합리적 사유와 객관적 검증이 으뜸가는 잣대가 되어야 할 대학이라면 이런 제도는 마땅히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서구 선진대학과 달리, 우리는 외국인 교수를 뽑을 때 "5년 후에는 한국어로 정규강의가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모든 강의를 몇년 안에 영어로 하고야 말겠다는 정책을 자랑으로 삼는 대학도 있다. 물론 서구와 우리는 다르다. 비교적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 쉬운 서구국가들과 달리 인도유럽어계의 영어와 알타이어계의 한국어는 너무도 달라 익히기 어렵고, 문화와 역사의 차이까지 감안하면 서구학자가 한국어를 교육언어로 사용하기는 한국학 전공자라 해도 매우 힘들다. 그만큼 교육의 언어, 학문의 언어를 무엇으로 택하느냐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육언어를 영어로 택할 때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대책이 빠진 영어강의는 재고되어야 한다. 실제로 영어강의를 밀어붙이는 몰주체적 발상은 대학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교육의 본령 지켜야 세계수준 대학도 가능해

당장 세계수준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은 감사원 감사에서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으며 이공계의 생각있는 교수들이라면 누구나 그 허술함을 질타한다. 또 전공분야의 특성이나 학생 능력을 외면한 막무가내식 영어강의는 영어를 이미 잘하는 학생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여 교육의 본령을 벗어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입전형제도가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현실에서 다양한 전형으로 뽑은 학생을 각자의 능력과 필요에 맞춰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문제는 전면적 실태조사와 심도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대입제도에서 가장 오래된 특별전형은 정원외로 뽑는 농어촌특별전형일 것이다. 농어촌 학생들이 생활과 학업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대학교수로 근무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접해왔지만, 의미있는 분석자료를 읽어본 기억이 없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교육당국이나 개별 대학이 시행한 지 십수년이 된 이 제도의 수혜학생들을 추적하여 그 성과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마련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이처럼 안일에 젖은 교육당국과 대학, 그리고 교수진 탓에 이번 사건과 같은 비극이 터져나옴을 직시할 때만이 한국의 대학은 좌절과 죽음으로 가는 허위의식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회의 정신적·지적 중심으로 복귀할 가능성을 열 수 있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李 대통령, 손정의 회장 접견 'AI 3대 강국 실현 위해 조언·제안 해달라'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과 만나 "한일 간 인공지능(AI) 분야 협력이 중요하다"며 가교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손 회장을 접견하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협력 과제 중요한 게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손 회장을 향해 "대한민국이 세계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지향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협조와 지원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는 첫눈을 귀히 여겨 서설이라고 하는데 손 회장님은 이전에도 김대중 대통령님, 문재인 대통령님 때 좋은 제안을 해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며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한 좋은 제안과 조언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어 AI 기본사회를 소개하며 "상수도 하수도처럼 대한민국 내에서 모든 국민 모든 기업 모든 집단이 인공지능을 최소한 기본적 활용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며 "인공지능의 위험함과 유용성을 알고 있는데 위험함을 최소화하고 유용성 측면에서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또 손 회장이" 한미 통상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과 조언을 줬다"며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아울러 "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다른 남자 만나 격분 전 연인 50대 女 10여 차례 찔러 살해 54세 김영우 신상정보 공개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알고 격분해 전 연인 50대 여성을 10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54세 남성 김영우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충청북도경찰청에 따르면 충청북도경찰청은 3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살인,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김영우에 대한 신상정보를 2025년 12월 4일∼2026년 1월 5일 충청북도경찰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김영우는 지난 10월 14일 오후 9시께 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한 주차장에 주차된 전 연인 50대 여성 A씨의 차량에서 그가 다른 남성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해 흉기로 A씨를 10여 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영우의 자백을 받아 실종 약 44일 만에 A씨의 시신을 수습했다. 김영우는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오폐수 처리 등의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범행 이후 시신을 자신의 차량에 옮겨 싣고 이튿날 회사로 출근했다가 오후 6시께 퇴근한 뒤 거래처 중 한 곳인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한 업체 내 오폐수처리조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현행 형법 제161조(시체 등의 유기 등)제1항은 “시체, 유골, 유발 또는 관 속에 넣어 둔 물건을 손괴

문화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또 만지작…전국을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 건가
또 다시 ‘규제 만능주의’의 유령이 나타나려 하고 있다. 지난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규제 지역에서 제외되었던 경기도 구리, 화성(동탄), 김포와 세종 등지에서 주택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이제 이들 지역을 다시 규제 지역으로 묶을 태세이다. 이는 과거 역대 정부 때 수 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낳았던 ‘풍선효과’의 명백한 재현이며,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을 반복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규제의 굴레, 풍선효과의 무한 반복 부동산 시장의 불패 신화는 오히려 정부의 규제가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곳을 묶으면, 규제를 피해 간 옆 동네가 달아오르는 ‘풍선효과’는 이제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을 설명하는 고전적인 공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15 부동산대책에서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 일부를 규제 지역으로 묶자, 바로 그 옆의 경기도 구리, 화성, 김포가 급등했다. 이들 지역은 서울 접근성이 뛰어나거나, 비교적 규제가 덜한 틈을 타 투기적 수요는 물론 실수요까지 몰리면서 시장 과열을 주도했다. 이들 지역의 아파트 값이 급등세를 보이자 정부는 불이 옮겨붙은 이 지역들마저 다시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약 이들 지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