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과거 ‘아나키스트’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며 검토한 많은 자료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알게 됐다. 그중에서 박열이라는 이름을 인상 깊게 봤다.”
이준익 감독은 신작 ‘박열’의 제작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영화 ‘박열’은 관동 대학살이 벌어진 1923년에 일본 황태자 암살 계획을 자백하며 법정 투쟁을 벌였던 조선의 아나키스트와 그의 일본인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영화다.
이 감독은 ‘박열’이 제국주의에 대항한 인물에 대한 영화지만 반일감정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부당한 시대에 맞서 저항했던 뜨거운 청춘들의 삶을 담았다. 잊혀져간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한 영화”라는 것이 이 감독이 ‘박열’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제작비가 적게 들어갔다.
적은 예산으로 이 영화를 찍는 것이 목표였다. ‘동주’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최대한 고증을 거쳐 실존인물들의 진심을 전달하려는 데 있어서 화려하거나 과도한 볼거리는 오히려 방해 요소다. 최소의 조건으로 담아내야지 그때 그들이 가졌던 진정성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는 나의 선택이었다.
가네코 후미코의 영화로 읽힐 정도로 캐릭터의 비중이 크다.
박열 의사 관련 서적 중에 야마다 쇼지가 쓴 후미코의 평전에 가까운 책이 있다. 그 책을 참고하면서 후미코는 박열이라는 존재와 관계성 안에서 충분히 그 시대 근대성을 보여준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국적을 떠나 여성성의 근대성, 그 시대의 근대성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당대 뛰어난 조선 청년들과 어울렸던 후미코는 박열과의 관계에서도 여성이기 이전에 동지였다. 이점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면서 영화가 진행돼야 그들의 선택이 그들의 인간관에서 나온 것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봤다.
후미코 역할에 최희서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최희서는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기적 기량, 영화에 임하는 자세,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능력 등 모든 부분이 뛰어난 배우다. 이번 작품은 이야기의 진정성을 위해 후미코 역할이 진짜 일본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최희서가 아니고서는 대안이 없는 캐스팅이었고, 120% 완벽하게 해냈다.
실화를 다루는 영화이기에 특별히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있다면.
실제 일어났던 일들을 영화 속에 꾸밈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 아사히 신문에 연락해 그때 당시의 박열과 후미코가 실려 있는 모든 신문을 수급했고, 거기에 나와있는 내용을 토대로 최대한 고증하며 만들었다.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박열과 후미코가 보여줬던 찬란했던 순간들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박열 역할에 왜 이제훈을 캐스팅했나.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떠올렸을 때 드는 첫 생각은 ‘뜨거움’이었다. 본인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불덩이를 뿜어내는 배우다. 그런 모습이 박열이라는 인물과 완전히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연기를 할 때도 감정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시나리오를 분석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 인물이 돼서 진심으로 연기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 인상적인데,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일제강점기에 현대무용가로 활동했던 최승희씨의 음악이다. 미국 뉴욕 공연에서 채플린 피카소 헤밍웨이가 관람하고, 피카소는 그림을 그려서 선물을 주었으며 헤밍웨이는 글을 남기는 등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대한민국이 낳은 최초의 한류스타이자 월드스타이면서 위대한 예술가였다. 1930년대 일본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최승희씨의 육성으로 직접 녹음한 것을 저희가 찾았다. 마지막 장면에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같이 들어 있는 것은 확성기로 돌려서 들리는 소리 그대로 넣은 것이며, 전반부는 잡음이 너무 많으니까 클리닝을 했다.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멜로디는 ‘이태리 정원’을 베레이션한 것이다. 당대 조선인으로 활동했던 시의성을 생각해 최승희씨의 음악을 사용했다. 불행히도 친일행적이 크게 남아서 위대한 예술가가 아이러니하게도 각광받지 못하게 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조연배우들도 눈길을 끈다.
조선인이 갖고 있는 천성 중에서 풍자와 익살 해학 천진성을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아우르는 연기는 민진웅이 최고다. 작은 유해진 같다. 예비판사 다테마스 역을 맡은 김준한도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다. 일본어도 잘하고 만족했다. 이번 작품으로 굉장히 주목받을 것이다.
기존 시대극과 차별화를 둔 지점은 무엇인가.
기존에 일제강점기 영화들은 독립운동가의 투쟁정신 그리고 그들이 독립운동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 또는 ‘암살’이나 ‘밀정’ 같이 스펙터클한 액션 속에서 한 개인의 승리감을 보여줬다면 ‘박열’은 조금 다르다. 박열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나키스트로서 탈 국가적이고, 탈 민족적인,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의 가치관을 주장하고 있기에 ‘나쁜 일본인’, ‘억울하지만 선량한 조선인’ 이런 이분법적인 모습으로 영화를 다루고 싶지 않았다. 이 인물이 갖고 있는 세계관 사회관 국가관 등이 현재 시점에도 대입시켜볼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런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존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와는 다른 연출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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