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2.05 (목)

  • 구름많음동두천 6.8℃
  • 맑음강릉 10.4℃
  • 연무서울 8.3℃
  • 맑음대전 12.7℃
  • 맑음대구 13.4℃
  • 맑음울산 14.7℃
  • 맑음광주 13.0℃
  • 맑음부산 13.6℃
  • 맑음고창 11.2℃
  • 맑음제주 12.8℃
  • 구름많음강화 5.3℃
  • 맑음보은 11.2℃
  • 맑음금산 11.0℃
  • 맑음강진군 13.6℃
  • 구름많음경주시 13.9℃
  • 맑음거제 12.1℃
기상청 제공

커버스토리

빈농의 아들에서 대통령으로

URL복사


시사뉴스






<선택 2002 노무현 대통령 당선>










빈농의 아들에서 대통령으로



노무현
당선자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풍운아’ 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그 한마디에 그가 살아온 인생역정이 잘 축약되어 있다. 산골소년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는 진정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돌콩’이라 불린 아이



노무현 당선자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6일(음력) 경남 김해군 진영읍 봉화산 자락에서 빈농의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노판석(76년 작고)씨와 어머니 이순례(98년 작고)씨는 척박한 땅을 일구며, 어렵게 살았다.

유난히 키가 작았던 탓에 ‘돌콩’이라 불렸지만 노무현은 제법 똑똑한 아이였다. 여섯 살 때 천자문을 줄줄 외웠고, 대창초등학교와 진영중학교
시절 1등을 도맡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 가난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거친 반항아였고, 자존심과 우월의식이 무척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학교 입학할 때의 일화는 어린 노무현을 잘 보여준다.

진영중학교에 시험을 치른 그는 입학금이 없었다. 친구로부터 “입학 때 책값만 내고, 봄 농사를 지어 갚기로 하고 입학허가를 받은 사람이
있다” 는 얘기를 듣고 어머니와 함께 교감을 찾아갔다. 교감은 농사나 배우라며 거절했고, 서럽고 분한 마음에 어머니는 눈물만 떨어뜨렸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입학원서를 북북 찢으며, “가요! 이 학교 아니면 학교가 없나” 하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가난은 살아가는 동안 노무현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었고, 늘 시련과 상처만 남겨주었다. 그가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전까지 그랬다.

1963년 부산상고에 진학한 노무현 당선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의 방황은 졸업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가 고시 공부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73년 결혼 이후였고, 1975년 드디어 사법시험(17회)에 합격했다.



그 길이 가시밭길일지라도



노 당선자는 초임 판사 시절, 변호사들에게 밥이나 술을 얻어먹고 다니며 부끄러운 짓도 많이 저질렀고, 1978년 변호사로 개업해서도 법원과
검찰 직원들에게 사건 알선 커미션을 건네고, 판ㆍ검사들에게 술을 사기도 했다. 또 당사자간에 합의가 가능한 사건도 수임료를 돌려주지 않기
위해 서둘러 처리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1981년 ‘부림사건’ (5공 정권의 부산지역 민주화세력에 대한 용공조작사건)은 인생을 바꿔놓는 전환점이 됐다. 그는 57일
동안 경찰에 구금돼 고문당한 학생들의 공포에 질린 눈과 시커멓게 죽은 발톱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공동변론으로 故 조영래 변호사와 교류하며 인권변호사로 거듭났고, 85년 송기인 신부와 부산민주시민협의회를
만들면서 아예 거리로 나섰다. 1987년 9월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 사건 사인규명 작업에 나섰다가 구속돼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그러나 인생의 반전은 다시 한번 찾아왔다. 1988년 4.26 총선(13대)을 앞두고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에 의해 5공실세 허삼수
후보의 대항마로 영입돼 부산 동구에서 금배지를 닮으로써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초선 노무현은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다른 여야 의원들이 깍듯이 예우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 힘 있는 증인들을 정연한 논리와 송곳
질문으로 몰아세워 TV로 시청하던 국민을 열광시키면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부상했다.



부산이 만든 정치인 광주가 만든 대통령



그러나 정치인 노무현의 봄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부터는 춥고 배고픈 시절의 연속이었다. 대다수 의원들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며, YS 뒤를 따랐으나, 그는 “역사적 반역” 이라며 정치적 소신을 고수했다. 이는 12년이 지난 지금 노
당선자에게 커다란 정치적 자산으로 되돌아왔지만, 당시에는 기나긴 가시밭길의 시작이었다.

1992년 총선(14대), 1995년 부산시장, 1996년 총선(15대)에서 모두 패배했다. YS 곁을 떠난 그를 부산은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듯했다. 98년 서울종로 보선에서 어렵사리 금배지를 달았지만 2000년 4·13총선(16대) 때 ‘지역구도 극복’을 내걸고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그는 “이번에 밀어주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호소했으나 결과는 참패. 반(反)DJ의 부산 정서 앞에 또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며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바보’ 라고 불렀고, 그의 우직한 정치 소신이
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총선에서 패배한 노무현에 대해 민주당의 눈길은 싸늘했다. 그의 영남득표력이 의심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티즌’이라는
신기루와 같은 열성 지지자들이 노무현을 일으켜 세웠다. 당시 누구도 이들이 노풍을 만들어 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당 국민경선이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 노무현의 반전은 불가능한 목표처럼 보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민주당 대선후보 되기가 어려워
그렇지 후보만 되면 이길 수 있다” 고 외쳤지만, 공허한 울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02월 3월 16일 광주가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민경선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불기 시작한 노풍은 노도광풍이 돼 국민경선을
휩쓸었고, ‘이회창’이라는 거대한 산도 단숨에 넘어섰다. 부산이 정치인 노무현의 고향이라면 광주는 대통령 노무현의 요람이 되었다.

하지만 12월 19일까지의 8개월 대장정은 노무현 당선자가 걸어온 과거 10여년의 정치적 고행을 압축시켜 논 듯했다. ‘DJ의 친인척비리’
‘지방선거 참패’ ‘노무현 흔들기’ ‘탈당’ ‘배신’ 등 그 앞에 놓여진 정치지형은 지뢰밭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련과 핍박에 굴하지 않고,
정면 돌파로 국민 앞에 당당히 섰다. 그리고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었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












  노무현
당선자 가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친가나 처가를 막론하고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가계를갖고 있다.



노 당선자는 46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빈농인 아버지

노판석씨와 어머니 이순례씨 사이에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과 모친은 각각 76년과 98년 작고했고, 맏형 영현씨도 별세했다. 첫째누이 명자씨와 둘째 영옥씨는 각각 평범한 가정주부로
부산과 김해에서 살고 있으며, 둘째형 건평씨는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1973년 한 살 아래인 부인 권양숙 여사와 결혼, 그해 첫아들 건호(29)씨를 낳았고 두 살 터울로 딸 정연(27)씨를
얻었다.

동국대 화학과에 입학했다가 군제대후 연세대 법대에 다시 들어간 건호씨는 지난해 8월 졸업해 LG전자에서 근무하고 있다.

또 홍익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정연씨는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다.

권양숙 여사 집안도 노 당선자와 마찬가지로 평범하다. 권 여사는 좌익 부역 논란을

빚었던 아버지 권오석(작고)씨와 어머니 박덕남(82)씨 사이의 1남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권 여사는 부산 혜화여중을 거쳐 부산 계성여상을 다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3학년

때 중퇴해야 했다. 이후 정치인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아오던 권 여사는 지난 2000년

4월 총선에서부터 대중 앞에 나서며 본격적으로 노 당선자를 도왔다.

노 당선자의 처형인 권창좌(57)씨와 처제 권진애(52)씨는 전업주부이고, 처남 권기문

(48)씨는 부산 우리은행 지점 은행원이다.


















노무현 당선자 연보



  ▲1946.8.6(음)

▲1959.2

▲1963.2

▲1966.2

▲1971.1

▲1973.1

▲1975.3

▲1977.9

▲1978.5

▲1981.10

▲1985

▲1987.6

▲1987.9

▲1988.4

▲1988.12

▲1990.1

▲1991.9

▲1992.3

▲1992.12

▲1993.3

▲1995.6

▲1996.4

▲1997.11

▲1998.7

▲1999.2

▲2000.4

▲2000.8

▲2001.4

▲2001.9

▲2001.10

▲2002.4

▲2002.11

▲2002.12.19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경남 김해 진영 대창초등학교

경남 김해 진영중학교 졸업

부산상고 졸업(53회)

육군 상병 만기제대(을지부대)

권양숙 여사와 결혼

제17회 사법고시 합격

대전지방법원 판사

변호사 개업(現 법무법인 부산)

부림사건 변론 이후 인권변호사 활동 시작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6월 민주항쟁 주도

대우조선 사건으로 구속, 변호사 업무 정지 처분

제13대 국회의원(통일민주당, 부산 동구)

‘제5공화국 비리 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청문회 스타’로 각광

민자당이 탄생하게 된 3당 합당 거부, 민주당 창당에 나섬

신민, 민주 야권통합 주도(통합협상 대표), 통합민주당 대변인

제14대 총선 출마(민주당, 부산 동구) 낙선

조선일보 왜곡보도 관련 소송에서 승소

통합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

부산시장 선거 출마 낙선

제15대 총선 출마(민주당, 서울 종로) 낙선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15대 종로구 보궐선거 출마(국민회의) 당선

종로구 지역구 포기와 부산출마 결단

제16대 총선 출마(새천년민주당, 부산 북강서을), 낙선

해양수산부 장관 재임(2000.8~2001.3)

민주당 상임고문

부산후원회에서 대권 도전 선언

민주당 최고위원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

국민통합 21 정몽준 대표와 후보단일화

제16대 대통령 당선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정치

더보기
장동혁 “내일까지 정치생명 걸고 재신임 요구하면 전 당원 투표...부결 시 의원·대표 사퇴”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국민의힘 장동혁 당 대표가 한동훈 전 당 대표 제명 이후 당내에서 장동혁 당 대표 사퇴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오는 6일까지 누구라도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장동혁 당 대표 사퇴나 재신임을 요구하면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하고 부결되면 국회의원직과 당 대표직을 모두 사퇴할 것임을 밝혔다. 장동혁 당 대표는 5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해 “누구라도 내일까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제게 재신임이나 사퇴를 요구한다면 저는 곧바로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하겠다”며 “그리고 당원들의 뜻에 따라서 당원들이 사퇴하라고 하시거나, 제가 재신임받지 못한다면 저는 당 대표직도 내려놓고, 국회의원직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장동혁 대표는 “저에게 그러한 요구를 하는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있다면 본인들도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며 “그것이 당을 위한 길이고 책임을 지는 정치인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경기 포천시가평군, 교육위원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초선)은 지난달 30일 주식회사 에스비에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동혁 당 대표에 대

경제

더보기
이재명 대통령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기도 주거용 아니면 안 하는 것이 이익”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기도 주거용이 아니면 안 하는 것이 이익일 것이라 경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새벽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예정으로 고가 1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기요? 분명히 말씀 드리는데 주거용이 아니면 그것도 안 하는 것이 이익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4일 국회에서 개최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반드시 정상화하겠다. 부동산 투기는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공정 사회와 경제 정의를 파괴해 온 주범이다”라며 “이번 기회에 이 고질병을 고치지 않으면 대한민국 대전환과 대도약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다주택자 중과가 1년씩 네 차례나 유예되며 정책 신뢰를 훼손한 과오를 이번에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부동산 투기의 희생양이 된 20·30 청년과 신혼부부, 서민을 위한 1·29 수도권 주택공급대책도 차질 없이 추진될 것이다”라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수도권에 6만호를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루이스 캐럴 '앨리스' 시리즈 출간... 삽화 편지 등 수록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성경과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인용된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문예세계문학선 신간으로 출간됐다. 앨리스의 모험을 다룬 두 작품, 존 테니얼이 그린 삽화 90여 점에 더불어 루이스 캐럴이 ‘거울 나라의 앨리스’ 초판 출간 직전 삭제한 아홉 번째 장 ‘가발을 쓴 말벌’, 1876년에 앨리스를 사랑하는 어린이 독자에게 보낸 다정한 편지를 함께 수록해 앨리스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1865년에 처음 출간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출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어린이와 성인 독자에게 읽히며 우리의 내면에 싱그러운 색깔을 불어넣는 기념비적 걸작으로 자리 잡았다. 후속작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마찬가지다. 앨리스 이야기는 17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연극·영화·드라마 등으로 무수히 각색돼 상연되기도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아동 문학, 환상 문학의 걸작인 동시에 정체성과 자아, 이들을 둘러싼 세계에 관한 독창적인 철학적·논리적 체계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의도치 않게 토끼 굴에 들어가며 모험의 첫발을 뗀다. 완전히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선택은 본인 책임…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신중해야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많게는 수백 번의 결정을 내린다. 식사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모임에는 갈지 말지, 자동차 경로를 고속도로로 할지, 국도로 할지 등등 매일매일 선택은 물론 결혼, 입사, 퇴사, 이직, 창업, 부동산, 주식, 코인 등 재테크 투자는 어떻게 할지 등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선택과 결과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인생 궤적을 만든다. 이런 많은 선택과 결과들 가운데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쪽은 돈과 관련된 재테크 투자의 선택과 결과 아닐까 싶다. 최근 코스피 지수 5,000돌파, 천정부지로 올라간 금값, 정부 규제 책에도 불구하고 평당 1억 원이 넘는 아파트들이 속출하는 부동산시장. 이런 재테크 시장의 활황세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이런 활황장세에 손실만 보고 있으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허우적거리는 거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선택과 결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최근 한 개인투자자는 네이버페이 증권 종목토론방에 “저는 8억 원을 잃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새해엔 코스피가 꺾일 것이라 보고 일명 ‘곱버스(인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