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를 바라보는 여야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번 규제는 모처럼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면서 대응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야당 일각에서는 “경로야 어떻든 한국 기업 또는 정부에 의해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가 실제로 북한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일본 정부는 한국에 수출된 자국산 에칭가스가 북한에 밀반입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 중이다. 반도체 세정에 쓰이는 에칭가스는 사린가스 등 화학무기 또는 핵무기 생산 과정에서의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육불화우라늄(UF6) 필수재료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야당은 “국내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에칭가스 행적이 묘연하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7월 12일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의 이낙연 국무총리 대상 질의에서 “관세청 자료를 인용해 올해 5월 3•20일에 두 차례 나눠 일본으로 수출된 에칭가스 중 99%가 실종됐다”고 밝혔다.
윤 의원에 따르면 일본에 들어간 한국산 에칭가스는 39.65톤이다. 그런데 일본 재무성 무역통계에는 한국산 에칭가스 수입량이 ‘0.12톤’이라고 기재돼 있다. 계산상으로 무려 99.7%(39.53톤)의 에칭가스가 일본 수출 과정에서 사라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일(對日) 에칭가스 수출 자체도 근 10년간 처음이다. 2011~2018년 일본으로의 에칭가스 수출량은 ‘0’이다.
윤 의원은 “우리는 에칭가스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데 지난 5월 3•20일 두 차례에 걸쳐 근 10년만에 우리가 일본에 수출한 사례가 확인돼 매우 의아한 상황”이라며 “더군다나 양국 간 수출입 통계가 극명하게 달라서 계산상으로 99.7%의 에칭가스가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일 양국 간 수출입 물량이 다른 건 양국 간 품목분류(HS코드) 체계와 통계 계상(計上) 방법 차이에 따른 것”이라며 “일본의 대한(對韓) 수입물량(0.12톤)은 한국 기준으로 2811-11-1000 코드가 아닌 2811-11-9000로 집계된다. 일본 기준으로는 2811-11000으로 집계된다”고 주장했다.
통계 방식이 달라 수출입 물량이 다르다는 반론이지만 한국의 전략물자 북한 밀반출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16일 조원진 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 대표는 산업부의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을 근거로 2015년 14건이던 적발 건수가 지난해 41건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북한행’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전적’
지난해에는 유엔 대북(對北)제재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이 국내에 지속 유입된 점이 확인됐다. 정부는 이를 인정하고 뒤늦게 저지에 나섰지만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올해 2월에도 북한산 석탄 운반선 ‘DN5505호’가 또다시 당국에 적발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관련 업체들은 지난해 북한산 석탄 운반 정황이 드러나 유엔안보리 등 조사를 받은 전과가 있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한국 유조선이 제3국 선박에 건넨 석유가 북한에 흘러들어간 사건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에 석유를 직접 전달한 건 제3국 선박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2017년 10월 미국 정보기관이 청와대에 인천•울산항에서의 북한산 석탄 하역 정황을 전달했음에도 청와대는 이듬해 7월 20일이 돼서야 관계부처회의를 열고 선박 4척에 대한 입항금지 조치를 내렸다.
정부가 직접 북한에 석유를 밀반입한 사건도 벌어졌다. 지난해 8월 21일 정양석 한국당 의원은 관세청 자료 등을 근거로 “동년 6~7월 석유, 경유 총 8만2918kg이 북한에 밀반출됐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은 정 의원 발언 전에는 언론에 일체 보도되지 않았다. 정부 발표도 없었다. 석유, 경유는 2017년 12월 가동된 유엔안보리 결의 2397호 지정 대북 금수품목이다. 석유 등은 미사일 발사 등에 쓰일 수 있는 전략물자로 분류되고 있다.
정 의원에 따르면 8만여kg 중 한국에 반납된 양은 1,095kg에 불과했다. 정부는 “개성 연락사무소로 향한 것”이라며 대북제재 위반 혐의를 부인했지만 개성 연락사무소로의 전략물자 반입은 당시로서는 불법이었다. 정 의원은 “우리 인원이 쓰더라도 연락사무소는 북한에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도 “남북관계 개선은 반드시 북한 비핵화 진전에 발맞춰야 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 같은 문재인 정부 등의 ‘전적’을 고려할 때 에칭가스 북한 반입 여부도 반드시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 게 한국당 등의 입장이다.
잇따른 한국의 대북제재 위반을 두고 지난해에 이미 국제사회 제재 칼끝이 한국을 향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일부 언론에서 나왔다. 유기준 의원에 의하면 일본은 해상초계기를 동원해 북한에 대한 한국의 석유 불법 환적 현장사진을 12차례 촬영했다. 지난해 4월 17일 정부 고위소식통을 인용한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사진들은 미 태평양사령부에 전달됐고 이는 다시 워싱턴에 제출됐다. 우리 구축함은 일본 초계기를 조준한 의혹을 샀다.
때문에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는 예고된 재앙이었으며, 심지어 미국의 묵인 하에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SOS’ 손짓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는 12일 “지금은 미 행정부는 한일관계를 중재하거나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못 박았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거시기하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경제대란을 필연적으로 야기할 일본 수출 규제 앞에 청와대가 반(反)정부 집회 가능성 등 위기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다. 청와대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