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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민군에 동조할지 모른다 모두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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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경북 영천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보도연맹원에 대한 연행과 구금, 학살이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진실화해위)는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한 결과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경북 영천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과 전선 접경지역 주민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천경찰서 경찰과 영천지역 주둔 군(軍)에 의해 집단 희생된 사실을 밝혀냈다.
영천지역은 앞서 1946년 발생한 ‘10월사건’의 여파와 한국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을 잇는 요충지로 국군과 인민군간의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진 지역이라는 점이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번 조사결과, 1950년 7월 초순부터 9월 중순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집단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1950년 7월 경찰에 연행되거나 소집통보를 받고 출두한 보도연맹원들은 영천경찰서 및 각 지서에 구금되었다가 이중 일부가 1차로 학살되었으며, 북안면 도유리 뒷산에서 11명, 고경면 도암리 산골짜기에서 최소 14명 이상이 희생됐다.
2차로 낙동강 전선이 형성되던 8월 초 영천경찰서에 구금됐던 보도연맹원들과 경찰에 의해 소개된 전선 접경지역 주민 380여 명이 집단 학살되었고, 임고면 아작골(절골)에서 150여 명, 자양면 벌바위에서 100여 명이 희생되는 등 대부분의 사건이 이 시기에 발생했다.
영천ㆍ신녕전투가 벌어지던 1950년 9월 초순에는 영천경찰서에 장기 구금되어 있던 보도연맹원과 일부 피난민 등 170여 명이 전선 후방인 고경면, 대창면, 북안면 산골짜기에서 3차로 학살됐다.
학살형태를 보면 경찰과 국군은 희생자들을 절벽위로 끌고 간 후, 총을 쏴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는가 하면, 손이 묶인 상태로 골짜기를 기어 올라가게 한 다음 등 뒤에서 총을 쏴 사살했으며, 특히 화산면 당지리에서는 어린이와 임산부를 포함한 희생자들을 가족 단위로 나무에 묶어 칼로 난자한 뒤 총살했다.
희생자 가운데는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민간인들도 상당수 포함됐으며, 화산면 당지동(현 화산면 당지리), 금호면 도남동(현 영천시 도남동), 화북면 구전동(현 화남면 구전리)처럼 가족ㆍ친족 또는 마을 단위로 살해된 경우도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은 1950년 9월 초순 화산면 당지리에서 정○○이 탈영하자, 탈영병을 찾으러온 국군이 정 씨와 그 가족 6명을 살해한 뒤, 같은 정 씨라는 이유로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집단 학살했다.
탈영병 정 씨에 의해 피해를 당한 희생자 정○○의 동생은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단지 탈영병과 같은 정 씨라는 이유로 형과 마을 형님들이 잡혀갔다. 형님들은 잡혀간 당일 고문을 받다가 양지골 밤나무에 묶여 칼로 난자당한 채 총살됐다”라고 진술했다.
또한 황보 씨 집성촌인 화남면 구전리와 안 씨 집성촌인 금호면 도남동(현 영천시 도남동)에서는 종손이나 지주가 좌익활동가였다는 이유로 마을 주민 대다수가 강압에 의해 보도연맹에 가입했으며, 이중 수십 명이 한국전쟁 발발 뒤 학살되기도 했다.
영천경찰서 및 각 지서 경찰은 민보단, 우익 청년단, 방위대 등의 협조를 받아 보도연맹원들을 연행․구금하였으며, 군과 긴밀하게 협조하여 이들을 학살한 것으로 밝혀짐
특히 CIC 등 계엄사령부 상층부의 지시로 군 정보과와 경찰서 사찰계의 실무자들이 학살의 전 과정을 주도했으며, 당시 미 CIC 또한 영천지역 보도연맹원의 예비검속 및 수사에 관한 정보를 입수, 사건의 진행과정을 인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한편, 1950년 7월 초 임고면에서는 경찰관 임○○이 ‘잡혀 온 보도연맹원들은 순박한 사람들이다’며 일부 보도연맹원을 빼돌리거나 도피시켜 목숨을 구하기도 해 처형을 부당하게 여긴 경찰의 적극적인 구제활동으로 일부 보도연맹원이 학살을 모면할 수 있었다.
영천지역 보도연맹원 대부분은 ‘10월사건’ 관련자들로 군경의 진압을 피해 입산했다가 자수한 사람들과 식량을 제공하거나 심부름을 하는 등 이들과 연루된 일가친척이나 산간지역 주민, 가맹 할당량 때문에 행정조직에 의해 강제로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희생규모는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과 전선 접경지역 주민 등 60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 중 구체적인 신원을 확인한 희생자는 239명임. 이는 일가족이 몰살됐거나 유족이 타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와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최소한의 희생자 수로 판단되고 있다.
희생자의 유족들은 사건 발생 후 60년 가까이 ‘레드 콤플렉스’에 의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으며, 가장이 사망함에 따라 가족이 해체되거나 연좌제에 의해 취업이 제한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민간인을 법적 절차 없이 임의로 살해한 현지 군경에게 있으나, 전시계엄하의 상황을 고려할 때 하급부대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사건의 책임은 계엄사령부에 있으며, 그 궁극적인 책임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군경을 관리ㆍ감독해야 할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공식사과와 아울러 위령ㆍ추모사업의 지원, 유가족 생활 지원, 군인과 경찰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 실시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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