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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덕쑥덕 술자리 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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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양띠의 해, 2003년도 이제 다 저물어간다. 천성이 유순해 평화와 정의를 상징하는 양의 이미지와 ‘정반대’로 올해는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해였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에 발맞춰 ‘희망’으로 시작된 연초와 달리, 달이 거듭될수록 국민들은 쓰디쓴 술잔을 위안 삼아 삶의 고뇌를 삼켜야 했다. 때로는 답답한 세상살이를, 때로는 웃어넘기는 가십거리를 안주로 씹어가며 우리는 그렇게 한해를 보냈다.

50분짜리 풀코스 ‘H양 비디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얘기가 축구, 군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고 했던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 또한 이거다. 특히 올해는 플래시 제작 그룹 ‘오인용’의 기발한 패러디와 적나라한 욕설이 일품인 ‘연예인 지옥’과 ‘이병 김창후 탈영 사건’ 등으로 군대 얘기는 최고의 노가리 안주가 됐다. 이병 김창후의 성대모사는 알딸딸하게 취한 뭇 남성들의 개인기로 이어졌고, 무뇌중과 스티붕 유는 대중의 절대적 인기(?)를 얻었다.
무뇌중이 꼼수 쓰다 고참에게 처참하게 얻어터지는 모습은 약간의 재미와 희열감을 안겨줬다면, 2월에 있었던 개그우먼 이경실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은 엄청난 경악과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은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일깨운 계기가 됐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숱한 ‘야만인’들을 도마 위에 오르게 했다. 다시는 시키고 싶지 않은 맛없는 안주였다.
봄 햇살이 만연한 어느 날,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뜨거운 안주가 우리의 관심을 모았다. 일명 ‘H양 비디오’. 7분짜리 동영상 내용보다 H양이 누구인지가 더 흥미를 끌었고, 50분짜리 풀코스를 즐겼다는 사람들은 부러움 아닌 부러움을 사기도 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음증과 폭력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냈다. H양이라고 오인 받았던 영화배우 함소원은 눈물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녀가 8개월여가 지난 요즘 헤어누드를 운운하며 홀딱 벗고 나타날지!


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안주, ‘군대’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을 지나 본격적인 여름을 맞기 전 국민들, 특히 강남지역 주민들은 술자리를 극도로 자제했다. 5개월 동안 20~30대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납치, 성폭행한 6인조 떼강도가 경찰에 붙잡힌 후 ‘납치 괴담’이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강남 일대가 공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얼마 가지 않았고 다시 술자리는 거해졌다. 술자리를 토론장으로 전환시킨 민감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성보다 남성들이 자주 찾는 안주가 됐다. 군입대 문제로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가수 유승준의 입국문제였다. 예비 장인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입국허가를 요청한 유승준에 대해 ‘절대 불가’와 ‘동정 허가’의 찬반 여론이 나뉘었고, 팬클럽회원과 안티팬들간의 치열한 공방이 오고갔다. 팬클럽회원 옥구슬 씨가 유승준보다 더 많은 타겟이 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역시나 한국 남성들에게 최고의 안주거리는 ‘군대’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 사건이었다.


여성 애주가들을 일찍 귀가시킨 ‘홍대괴담’
여름과 초가을사이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투신자살이었다. 술잔을 따르며 국민들은 정 회장을 추모했고, 현대가의 비극을 논했다. 더러는 자살이 아닌 살인이 아닐까하며 여러 가지 의문점과 있을지 모를 가능성에 대해 추리하는 이도 있었다. 정 회장이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게 남긴 유언, ‘너무 자주 윙크하는 버릇 고치세요’는 가슴을 싸하게 만들었다.
더위가 절정에 달할 때쯤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녀들이 대거 등장, 술자리는 화기애애해졌다.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참석차 남한을 방문한 북한여성응원단, 그들은 자연산 미모로 남측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사진을 지갑 속에 넣어다니는 열성팬도 있었고, 팬까페도 생겼다. 언론에서조차 미녀응원단의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남북 화해’, ‘통일의 물꼬’라는 명분 속에 외모 지상주의, 가부장적 성적 욕망 등이 꿈틀대고 있음을 보여준 현상이었다.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돌던 9월, 홍대주변은 공포영화의 무대가 됐다. 제목은 ‘홍대괴담’. 줄거리는 이렇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새벽, 홍대미대에 다니는 한 여학생이 추석 연휴를 고향에서 보내고 서울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거리는 너무나 고요했다. 그때,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 쇠몽둥이로 그녀를 내리쳤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그녀를 괴한은 두 차례나 더 흉기를 휘두른 후 가방과 휴대전화를 챙겨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 일명 ‘퍽치기’ 사건. 그런데 이것은 실제 사건이었다. 한달 후 범인은 검거됐으나 당시 살 떨리는 기억은 여성 애주가들을 일찍 집으로 귀가시켰다.


단골 안주, 연예인 뒷담화
날씨보다 더 추운 경기한파가 지속되자 술자리 여기저기서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푸념들이 쏟아졌다. 시대를 반영하듯 현대홈쇼핑에서 캐나다 이민상품을 팔았고, 딱 두 차례 방송을 통해 700억원이 넘는 매출이 기록됐다. 이민박람회도 발 디딜 곳 없이 북적댔고, 구체적으로 이민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건이 안되는 이들은 그저 포장마차에서 오뎅국물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여야 했다. 한 손에 뜰채를 쥐고서….
이승엽의 56호 홈런볼은 서민들에겐 일종의 복권이었다. 경기에는 관심 없고 오직 홈런볼을 잡아 한몫 챙기겠다는 인상마저 안겨 비판여론도 만만치 많았지만, ‘저 볼만 잡으면’하고 기대를 품은 관중들은 잠자리채, 뜰채를 들고 매 경기마다 쫓아다녔다. 결국 그 바람은 물거품 됐고, 허탈해진 관중들은 술로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그들은 웃으며 외쳤다. “이승엽이 국민타자긴 국민타자야!”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 부부교환섹스 스와핑이 한참 입방아에 올랐고, 배인순, 고현정, 김병현 등 연예·스포츠 스타들이 술자리를 심심하지 않게 했다. 또한 올 한해를 뜨겁게 달군 누드열풍에 대해 예술은 집어치우고 외설적 시각으로만 “이혜영 엉덩이가 이쁘네” “이지현 가슴이 죽이네”하며 열띤 논쟁을 벌였다. 빠질 수 없는 화두, 축구도 작년만 못하지만 여전히 애용되는 안주거리였다.
술자리를 접고 얼큰하게 취한 우리들은 새해엔 더 나아지기를, 즐거운 일만 있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비틀비틀 걷다 서글프게 외쳐본다. “하하하, 나에겐 로또, 로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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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 칼럼】 선택은 본인 책임…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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