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창진 기자]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은 2014브라질월드컵에서도 얼마든지 통용될 만한 속담이다.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승패를 나눠 가졌던 32개국 중 24개국이 브라질월드컵에도 출전하면서 또 한 번 맞붙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당사국들은 부디 피하고 싶을, 그러나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대결들을 살펴봤다.
▲스페인 vs 네덜란드(조별리그 B조·14일 오전 4시 사우바도르)
"너무 일찍 만난다"는 아쉬움을 사고 있는 지난 대회 우승국 스페인과 준우승국 네덜란드의 경기다.
지난해 12월7일(한국시간) 브라질 바히아주 코스타 도 사우이페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조 추첨에서 지난해 10월 FIFA 랭킹 1위 자격으로 시드를 받은 스페인이 선점하고 있던 B조에 네덜란드가 이름을 올렸다.
이로 인해 함께 포함된 칠레, 호주에는 B조가 '죽음의 조'가 됐고,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오는 14일 B조 첫 경기를 지난 남아공월드컵의 '리벤지 매치'처럼 치르게 됐다.
2010년 7월12일 오전 3시30분부터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90분 넘게 피 말리는 승부를 벌였다. 스페인은 연장 후반 11분 터진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0·FC바르셀로나)의 결승골로 짜릿한 1-0 승리를 거뒀다. 세계 정상급 실력을 갖추고도 역대 월드컵 최고 성적이 4위에 불과할 정도였던 무관의 한을 씻는 최초의 월드컵 우승이었다.
반면 네덜란드로서는 통한의 패배였다. 이날 네덜란드는 연장 후반 4분 욘 헤이팅아(31·풀럼)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면서 수적 열세에 몰린 끝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번 대결에서 스페인은 남아공에서의 승리가 행운이 아닌 실력이었음을 보여줘야 하고, 네덜란드로서는 지난 4년 간 와신상담해야 했던 한풀이를 해야 한다.
우승의 주역 이니에스타는 이번에도 중원을 지휘하며 직접 골을 노리거나 '신병기' 디에고 코스타(26·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위한 도우미로 나설 예정이다. 반면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헤이팅아는 루이스 판 할(63)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해 TV로 경기를 지켜보면서 자기 몫의 한풀이를 염원해야 할 처지가 됐다.
▲가나 vs 미국(조별리그 G조·17일 오전 7시 나타우)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G조에서 '절대강자' 독일에 이은 조 2위를 놓고 '득점머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를 앞세운 포르투갈은 물론 미국·가나가 혼전을 벌일 전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는 17일 치러지는 가나와 미국의 G조 두 번째 경기는 양국은 물론 포르투갈에도 중요한 일전이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C조 1위 미국과 D조 2위 가나는 2010년 6월27일 루스텐버그 로얄 바포겡 경기장에서 16강전을 치렀다. 연장까지 120분에 걸친 혈투 끝에 가나가 2-1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했다.
가나는 경기시작 5분 만에 미드필더 케빈 프린스 보아텡(27·샬케04)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후반 16분 미국의 미드필더 랜던 도너반(32·LA갤럭시)이 페널티킥을 성공해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마침내 가나의 공격수 아사모아 기안(29·알 아인)이 연장 전반 3분 결승골을 뽑아냈고, 가나는 연장 후반까지 이 골을 잘 지켜 승리를 거뒀다. 가나는 8강전에서 우루과이에 패배해 4강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카메룬(1990이탈리아월드컵)에 이어 아프리카 국가 중 역대 두 번째로 8강에 올랐다.
가나는 브라질월드컵 엔트리에 이날 승리의 주역이었던 보아텡과 기안을 모두 포함했다. 미국전에도 이들이 모두 출전할 전망이다. 그러나 도노반은 최근 발표된 미국의 최종 엔트리 23명에서 제외돼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의 꿈이 무산됐다. 동시에 가나를 상대로 직접 설욕하겠다는 바람도 다른 대표팀 동료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게 됐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가나와 미국은 지난 2006독일월드컵에서는 E조에 함께 속했다. 가나(승점 6)는 이탈리아(승점 7)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고, 미국(승점 1)은 조 최하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아픔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브라질 vs 네덜란드((16강전 예상·29일 오전 1시 벨로리존치)
남아공월드컵에서 스페인으로 인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피해자' 네덜란드는 사실 이보다 앞서 브라질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가해자'였다.
2010년 7월2일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 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 네덜란드의 8강전에서 브라질은 1-2 역전패, 2006독일월드컵에 이어 또다시 8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브라질은 전반 10분 호비뉴(30·AC밀란)의 선제골로 앞서 갔지만, 네덜란드는 후반 8분과 23분에 이어진 베슬러이 스네이더르(30)의 멀티골로 승부를 뒤집었다.
이날 브라질 수비수 필리페 멜로(31)는 전반전 '일등공신'에서 후반전 '역적'으로 신분이 급변했다. 절묘한 스루패스로 호비뉴의 선제골을 도왔던 멜로는 스네이더르의 슈팅이 그의 머리에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책 동점골'의 누명을 썼으나 FIFA가 스네이더르의 골로 정정해주면서 간신히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후반 28분 볼 경합 중 네덜란드의 미드필더 아르옌 로벤(30·바이에른 뮌헨)의 무릎을 밟았다가 퇴장을 당해 브라질을 수적 열세에 몰리게 만든 책임만큼은 면할 수 없었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개최국 브라질(FIFA 6월 랭킹 3위)은 크로아티아(18위)·멕시코(20위)·카메룬(56위) 등과 함께 A조에 속했다. 네덜란드(15위)·는 스페인(1위)·칠레(14위)·호주(62위) 등과 함께 B조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위를 점한데다가 홈 이점까지 더한 브라질은 조 1위로 16강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만일 B조에서 네덜란드가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면 브라질은 국민들 앞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한풀이를 할 기회를 갖게 된다.
설사 브라질이 A조 2위로 16강에 나선다고 해도 네덜란드가 B조 1위를 차지할 경우 양국은 16강전에서 붙게 된다. 다만 경기 일시와 장소가 30일 오전 1시 포르탈레자로 달라지기는 한다.
만일 양국의 조별리그 순위가 이처럼 엇갈리지 않고 같은 1위나 2위일 경우 양국은 7월14일 오전 4시부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의 만남을 기약해야 한다.
네덜란드 승리의 주역 스네이더르는 최종 엔트리 23명에 포함돼 브라질에서 다시 승리를 위한 한 방을 노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남아공월드컵 이후 대표팀에 좀처럼 참여하지 못했던 멜로는 역시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해 관중석에서나 동료들을 응원하게 됐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멜로는 2012년, 스네이더르는 지난해 터키 리그의 명문 갈라타사라이에 각각 입단, 현재 한솥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루과이 vs 네덜란드(8강전 예상·6일 오전 5시 사우바도르)
네덜란드로 인한 '피해자'는 또 있다. 우루과이다.
두 나라는 남아공월드컵 준결승에서 격돌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32년 만에, 우루과이는 60년 만에 결승행을 노렸다.
2010년 7월7일 케이프타운 그린포인트 경기장에서 맞붙은 결과, 네덜란드가 3-2로 신승해 사상 처음으로 우승에 도전할 수 있었다. 이날 우루과이의 패배로 2006독일월드컵(이탈리아-프랑스)에 이어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또다시 유럽 국가끼리의 결승전이 펼쳐졌다.
네덜란드는 전반 18분 지오반니 반 브롱크호스트(39·은퇴)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지만, 전반 41분 우루과이의 '주포' 디에고 포를란(35·세레소 오사카)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후반 25분 스네이더르의 슈팅이 상대 수비수의 발에 맞고 굴절된 뒤 다시 오른쪽 골대를 맞고 안으로 들어가는 절묘한 상황으로 다시 네덜란드가 앞섰다. 네덜란드는 이어 후반 28분 로벤의 추가골로 3-1로 우위를 점했다. 우루과이는 후반 추가시간에 미드필더 알바로 페레이라(29·상파울루)의 만회골로 부지런히 추격했지만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우루과이(7위)는 이탈리아(9위)·잉글랜드(10위)·코스타리카(28위)와 함께 D조에 속했다. 우루과이와 B조의 네덜란드가 이번 조별리그에서 모두 조 1위 또는 조 2위처럼 같은 순위를 얻어 16강에 오른 뒤 이 또한 무사히 통과하면 양팀은 8강에서 맞붙을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조 1위이면 다음달 5일 오전 5시 포르탈레자에서, 모두 조 2위이면 6일 오전 5시 사우바도르에서 각각 경기를 갖게 된다.
물론 한 나라가 조 1위, 다른 한 나라가 조 2위가 된다면 두 나라는 결승전이나 3·4위전에서의 만남을 기약해야 한다.
우루과이는 2010남아공월드컵 MVP 포를란·페레이라 등 당시 골 사냥을 했던 주역들이 모두 브라질행을 확정했고, 2013~201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루이스 수아레스(27·리버풀)·에디손 카바니(27·파리 생제르맹)도 두 번째 월드컵인 브라질에서 남아공의 한을 풀 기세다. 수아레스는 남아공에서 조별리그 멕시코전(1-0 승)에서, 카바니는 독일과의 3·4위전(2-3 패)에서 각각 1골씩을 기록했을 뿐이다.
네덜란드는 반 브롱크호스트가 은퇴해 참가하지 않지만, 로벤과 스네이더르가 건재한 만큼 기대해 볼 만한 경기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