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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 가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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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부추기는 사회(1)

“설마, 내 가족이…?”



‘인면수심’의 흉악범 판 친다



10일 발생한 서울 압구정동 여대생 납치 살인사건 이후 비슷한 범죄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같은 사건은 살인과 성폭행
등 심각한 신체적 위협이 따르는 경우가 많아 우려가 크다. 최근 발생한 범죄는 ‘몸값’을 노린 유괴·납치범죄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0~2002년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등 5대 범죄 발생률은 소폭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납치사건이 그 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개 강력범죄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사행심 조장
산업이 발전하고 카드빚에 시달리는 일부 젊은이들이 늘면서 한탕을 노린 범죄가 만연하다”며 “납치는 극단적으로 저지르는 범죄인 만큼 살인과
같은 끔찍한 사건과 연관되기 쉽다”고 밝혔다.


최근 범죄의 양상

우리사회는 지금 유괴 강도 강간 납치 등 온갖 흉악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 들어 경찰에 접수된 유괴·납치사건만 11건. 신변노출을
꺼려 신고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일어난 유괴·납치범죄는 예전과는 다른 몇가지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우선은 범행목적이 개인적 원한관계에 의해서가 아닌 ‘몸값’을
노리고 행한 범죄라는 것이다.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범행표적이 되고 있다. 특히 최근 납치사건은 고급주택가에서 주로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들이
표적이 되고 있다. 청담동 정 모씨(31)는 “범행대상이 무차별적이어서 ‘나도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밤길을 다니기 두렵다”고
말했다.

최근 발생한 20여건의 유사범죄의 대상은 어린이, 여대생, 연예인 등 하나같이 항거능력이 없거나 떨어지는 연약한 여성들이 타깃이 되었다.
올 들어 발생한 11건의 납치 범죄 중 6명이 여성 피해자다. 이처럼 여성이 범죄대상으로 지목받는 이유는 여성의 왕성한 사회활동도 포함한다.
그만큼 경제력을 가진데다 항거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강남일대에서 20~30대 여성을 전문적으로 납치해 집단 성폭행하고 강도행각을 벌인 6인조 떼강도 사건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이 조직의 일원인 허모씨의 범행동기가 가관이다. 술을 마시던 중 “우리끼리 한탕해서 잘 살아보자”는 말 한마디로 그들은 떼강도 조직을 결성했고,
강남일대를 돌아다니며 젊고 부유해 보이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들은 피해 여성을 납치해 테이프로 눈을 가린채
자신들의 은신처로 끌고가 성폭행하고 신용카드 등으로 현금을 빼앗는 파렴치한 범죄수법을 저질렀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피해여성이 임신사실을
밝히고 애원하는데도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다녔다.

또 유괴·납치범들의 특징은 전과자나 흉악범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압구정동 여대생 납치범인 20대
고교 동창 2명은 강남고급백화점 안 식당 점원과 미용사로 일해 온 청년들이었다. 이들을 조사한 경찰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돈을 얻기 위해 쉽게 저지른 범죄”라고 말했다. 지난 3월말 서울에서 대전까지 원정을 가서 여대생을 납치했던 40대 부부는 불어난 카드빚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에서 초등학생을 유괴해 돈을 요구하다 붙잡힌 30대 자영업자도 카드빚 8,000만원 때문에
납치범이 되었다.

전직 은행원이 이틀새 초등학생 2명을 납치하고 부부가 여대생을 납치해 성폭행을 한 경우도 있었다.


“내몸은 내가 지킨다”

최근 유괴 납치 범죄가 증가하면서 주민들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펴고 있다. 자녀들의 위치파악을 위한 휴대전화 구입이 급증하고, 여성들은 가스총을
소지하고 다닌다.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것이다.

호신장비업체는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납치사건 이후 호신용 스프레이와 가스총의 주문이 몰려 최근 며칠사이 매출이
20%이상 늘었다”며 “칼에 찔려도 안전한 방검복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최근 강남지역을 타깃으로 한 범죄가 증가하면서 강남 주민들의 대책회의도 부산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면 흉악범에게 당한다는 흉흉한
이야기에 한밤중에 아파트단지 출입문마저 잠그고 있다. 강남지역에 거주하는 전숙희 씨(회사원 29세)는 “가급적 늦은 시간에 혼자 다니는
걸 피하고, 퇴근 후에는 곧장 집에 오는 날이 많아졌다”며 “인적이 드문곳은 아예 가지도 않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낯선 남자가 있으면
동승하지 않는다”고 불안감을 표시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는 긴급제안을 통해 단지 내 40개동 전체 출입문에 무인카메라
120여대를 설치하고 경비원도 100명에서 12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소요비용만도 1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자녀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은 학교 앞에 진을 치고 있다. 강남학원가에도 비상이다. 대치동과 강남역 주변 학원가에는 밤 늦도록 공부하는 수험생을
데리러 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강남 청솔학원 박진형 실장은 “이전에는 학생들이 학원수업 이후에도 밤 11시까지 자습을 하고 가곤했는데,
납치사건 이후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밤 10시면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참여정부’도 특단의 대책을 지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첫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조폭 및 유사조폭에
대한 발본색원을 지시했다. 김두관 행자부 장관도 이날 “전국 경찰이 9월 24일까지 ‘강력범죄 소탕 100일 계획’에 돌입했으며 조직폭력배
소탕을 위한 검·경 합동 수사본부를 지난 11일부터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왜 강력범죄 급증하나?

그렇다면 최근 이같은 범죄가 난립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카드빚을 갚기 위한 유괴·납치, 대신 채무를 받아주겠다는 청부폭력, 영세상인에
대한 자릿세 갈취 등 최근의 범죄 유형이 어려운 경제상황과 맞물려 악화됐다는 게 중론이다. 경기침체로 살기도 힘든데다 카드빚이 늘어나 급기야
범죄까지 저지르게 됐다는 것. 최근 범죄자의 대다수가 ‘카드빚’때문이라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얼마전에는 카드빚에 몰린 주부가 납치 자작극을
벌이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발생했다. 카드빚에 시달리던 20대가 아버지를 살해했는가 하면, 지난해 경기도 영북농협 총기강도사건의 범인인
현역 상사 역시 카드빚이 범행동기였다.

범죄가 기승을 부린데는 ‘공권력의 실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경찰서 형사계 마약반 형사가 두 차례나 납치강도 후 검거된 사실은
충격적이다 경찰관이 낮에는 마약범죄를 단속하고 밤에는 증권브로커와 사채업자를 납치해 금품을 갈취한 것.

딸의 안전이 걱정돼 돈을 준 뒤 경찰에 신고했다가 결국 딸을 잃고 만 아버지가 있었고, 납치범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경찰과 함께 나가 스스로
범인을 잡으려다가 격투 끝에 숨진 사건도 있었다. 사건이 벌어지면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되는데, 경찰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에 직접
해결하려다 사건이 커졌다는 말이다.

언론을 통한 모방범죄도 범죄증가의 원인이 된다고 일부는 지적한다. 범죄행위가 보도되면 모방범죄가 급증한다는 것. 실제로 최근 발생된 범죄가
지난 10일 강남 여대생 납치 살인 사건 이후 급속도로 증가했다. 강력범죄를 다루는 한 형사는 “실제로 납치·유괴범죄가 6월 이후 집중적으로
발생됐다”면서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범죄를 실제로 범죄행위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또 일각의 치안부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통계상으로는 발생과 검거건수로 봤을 때 검거율이 현격히 높아 치안이 안정적인 편”이라고 반론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무법과 무원칙에서 원인을 찾는 이도 있다. 근 빈발하고 있는 유괴와 살인행위는 하나같이 소득이 없는 곳에
소비가 범람한데서 온 사회병리현상이고, 그런 병리현상이 사회의 무법과 무원칙에 편승해 흉악범죄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의
일상적인 무관심, 공권력의 작동 불능이 불황과 겹쳐 잔혹한 범죄들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홍경희 기자 khhong04@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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