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2.21 (일)

  • 맑음동두천 -2.5℃
  • 구름조금강릉 2.8℃
  • 구름조금서울 -2.2℃
  • 구름조금대전 1.1℃
  • 흐림대구 1.9℃
  • 흐림울산 3.3℃
  • 구름많음광주 2.2℃
  • 흐림부산 5.3℃
  • 흐림고창 1.2℃
  • 흐림제주 7.5℃
  • 구름조금강화 -2.2℃
  • 구름많음보은 0.1℃
  • 구름많음금산 0.3℃
  • 흐림강진군 2.8℃
  • 흐림경주시 2.3℃
  • 흐림거제 5.7℃
기상청 제공

인물

장인을 찾아서 - “창립 100주년 기념 간판 꼭 걸 것”

URL복사



무제 문서





 


“창립 100주년 기념 간판 꼭 걸 것”



한국 양복사의 뿌리, 종로양복점 3대 지킴이 이경주 사장






울 종로구 신문로 근우빌딩 2층의 조그만 가게. 지나온 세월의 발자취를
알리는 ‘Since 1916 종로양복점’ 이라고 쓰인 작은 간판이 손님을 맞이한다. ‘가장 오래된 양복점’의 명성을 지닌 이곳, 나지막한
음악 사이로 중년의 남성이 조용히 신문을 보고있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세상 밖 시간을 거슬러 이곳의 시계는 멈춰있는 듯하다. 신문에서
눈을 떼고 가만히 고개를 드는 종로양복점 3대 지킴이 이경주(59) 사장이 서글한 웃음을 짓는다.


실용성이
최고 무기


“요즘 맞춤양복을 입는 사람들은 거의 없죠. 가격이나 유행패턴이나 기성복이 훨씬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거든요. 특히 지금은 여름철이라 하루종일
손님 한 명 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아요. 그래도 가끔씩이나마 찾아주는 단골이 있기 때문에 늘 문을 열어둡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꼬박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가게문을 여는 이 사장에게 단골들은 삶의 활력소자 이 일을 계속 하게 만드는
이유다. 단순한 손님이 아닌 인생을 같이 한 친구이자 가족인 것이다.

“20∼30년을 봐온 손님들은 취향과 스타일은 물론 사는 이야기도 속속들이 알죠. 얼굴만 봐도 반가운 사이에요. 대를 이어 찾아오는 손님도
있는데 그 분들은 정말 남 같지 않아요. 친척 같다고 할까요. 유명인사들도 많이 찾아왔지만 오히려 제 기억에 남는 손님들은 그 분들이에요.”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 즐겨 찾았고, 독립운동가 김석원 장군, 이시영 부통령 등 내로라 하는 인사들도 단골이었지만, 종로양복점을 이끌어 온
이는 꾸준히 이곳을 찾아오는 서민들이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종로양복점의 양복을 가장 제대로 입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철학이 편하고 실용적인 옷을 만들자는 거에요. 몸에 딱 맞추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기 편하게 디자인하죠. 칼라도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유행 타지 않고 꾸준히 입을 수 있게 제작하고요.”


손님이 칭찬해야 진정한 성공작

건축학을 전공한 이 사장은 아버지 이해주(1996년 작고) 선생의 설득에 못 이겨 1968년부터 재단기술을 배웠다. 장남에게는 어려운 가업을
물려주기 꺼려했기 때문에 5남1녀 중 셋째인 이 사장이 ‘선택’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전혀 옷 만드는 일에 관심도, 배워 본 적도 없었던
터라 이 선생은 실수도 많이 하고 시련도 많이 겪어야 했다.

“지금도 처음 가위를 잡았을 때가 생각나요. 연습할 때와 실전은 정말 다르죠. 조금만 가위질을 비뚤게 해도 그 천은 쓸 수 없게 돼요.
심장이 쿵덕쿵덕 뛰고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데 정말이지 못 하겠더라고요.”

힘들게 만든 옷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고 가는 손님도 있었고, 삿대질하며 항의하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땐 그저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지만 집에 가서는 북받치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야했다.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가게문을 열지만 손님
오는 것이 두려워 안 오길 바란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버님은 말씀하셨죠. ‘네가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손님이 칭찬하지 않으면 성공한 작품이 아니다’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더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지나니까 손님들도 맘에 들어하는 옷을 만들 수 있었죠. 그런데 30년 이상을 함께 일하는 동안
아버님께는 한번도 칭찬을 듣지 못했어요.”


최초의
한인 양복점


이 선생이 기억하는 아버지, 이해주 선생은 매우 엄격한 분이었다. 손님을 절대로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며 손님이 오면 밥을 먹다가도 뛰어나가
하루종일 굶으면서 일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당연히 아들이었던 이 선생도 굶어가며 일해야 했다.

또한 이해주 선생은 아들에게 “양심적으로 장사할 것”과 “대가 끊어지지 않게 가업을 이을 것”을 당부하면서 이경주 선생에게 대를 이어가는
양복장이로서의 사명감을 새겨주었다. 그러한 이해주 선생의 정신은 이경주 선생의 조부이며, 종로양복점 창단주인 이두용(1942년 작고)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아버님께 들었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매우 부지런하고 진취적인 분’이었다는 거에요. 19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양장기술을 배워와 우리나라
최초의 양복점을 열고, 일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에서 성공을 이룬 것만 봐도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한국 양복사의 시조인 이두용 선생은 키가 9자나 되는 마네킹에 모닝코트를 입혀 가장행렬을 하는 등 광고홍보에도 탁월한 감각이 있어 사업을
점차 확장시켰다. 개성과 함흥에 지점을 낼 정도로 번창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인 경쟁자들의 시샘을 받아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 바로 ‘종로양복점’이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역사’

“아버지의 존함이 서울정도 600주년 기념 타임캡슐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만큼 제가 지키고 있는 이 양복점이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제 시대에서 대가 끊길까봐 매우 걱정됩니다. 의상학을 전공한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강요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가게가 다시 번성해져야 대를 잇고 싶어도 이을 수 있을 텐데, 고민이 많습니다.”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맺은 이 선생은 그러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창립 100주년 기념 간판은 꼭 걸 것”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속에 절대 놓을 수 없는 가업에 대한 신념이 가득했다.

“사람 얼굴이 제각각 다르듯 체형이 똑같은 사람도 35년을 넘게 일해오면서 한 명도 본 적 없습니다. 때문에 맞춤복이 가장 편할 수밖에
없죠. 유행 디자인을 늘 연구하고, 남성정장 디자인은 기본디자인에서 약간의 변형을 가할 뿐이라 디자인도 뒤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찾으시는 분들이 꾸준히 맞춤양복을 찾으시죠. 그 분들이 있는 한 종로양복점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종로의
터주로서, 한국 양복사의 산증인으로서 양복점을 꼭 지킬 겁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비만학회·한국릴리 미디어 세션...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비만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정부가 적극적인 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견이 나왔다. 17일 대한비만학회와 한국릴리가 17일 비만과 2형 당뇨병을 사회적 건강 과제로 규정하고, 치료 중심의 관리 전략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릴리와 대한비만학회는 이날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사회적 건강 과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을 주제로 미디어 세션을 공동 개최했다. 이번 세션은 국내 비만·당뇨병 치료 환경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인크레틴 기반 주사 치료제를 포함한 최신 치료 옵션이 적절히 활용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논의하고 미충족 수요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2형 당뇨병 및 비만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약물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등 여러 비만치료제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대한비만학회 총무이사인 이재혁 명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왜 비만 치료가 중요한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대한비만학회의 노력'을 주제로 학회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비만은 단순한 체중증가 상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지만, 여전히 법정비급여 질환

정치

더보기
대법원 예규 제정에도 여야 내란전담재판부 정면충돌...“연내 설치법 처리”vs“명분 없다...중단하라”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지만 여야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법률안의 국회 통과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관련 법률안을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임을 밝힌 반면 국민의힘은 이제 명분이 없음을 강조하며 관련 법률안의 국회 통과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20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해 “계엄군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위대한 국민은 내란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신속하고 엄정한 내란재판과 내란청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명령을 받들겠다. 신속한 내란 종식과 제2의 지귀연 같은 재판부 원천 차단을 위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반드시 연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조희대 사법부는 12·3 내란 이후 1년이 넘도록 국민적 요구이자 시대적 책무인 내란청산을 외면해 왔다. 지귀연 재판부의 노골적인 늑장 재판을 방치한 결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했다”며 “예규 하나로 내란재판 지연과 사법불신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 원내대변인은 “사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국회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통과시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대법원, 내란전담재판부 설치...“특별법 계획대로 추진”vs“위헌 법률 만들 이유 사라져”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예규를 제정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계획대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고 국민의힘은 내란전담재판부 특별법 제정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대법원은 18일 보도자료를 발표해 “2025년 12월 18일 개최된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헌법 제108조는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정할 예규의 주요 내용은 형법상 내란의 죄와 외환의 죄, 군형법상 반란의 죄에 대한 사건의 국가적 중요성, 신속 처리 필요성을 감안해 대상사건만을 전담해 집중적으로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 제87조(내란)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

문화

더보기
고립돼 가는 현대인의 내면... 연극 ‘동물원 이야기’ 공연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 ‘동물원 이야기(The Zoo Story)’가 12월 20일(토) 오후 2시 밀양아리나 꿈꾸는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번 공연은 밀양시가 주최하고 대경대학교 공연예술ICC가 주관하며, 극단 가변과 극단 예빛나래가 공동 제작했다. 작품은 뉴욕 센트럴파크의 한 벤치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인물 제리와 페트라(원작의 피터를 여성으로 트랜스한 설정)의 대화를 통해 현대 사회의 고립과 소통의 부재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심리극이다. 사회의 주변인에 가까운 제리와 평범한 중산층 페트라의 만남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관계의 의미를 드러내며, 예상치 못한 결말로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번 무대는 ‘1960년대 초연 이후 지금 시대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을 새롭게 해석한 공연’을 표방하며, 도시의 소음 속에서 점점 고립돼 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품은 단 두 명의 인물과 최소한의 공간만으로도 강렬한 긴장과 몰입을 만들어 내며, 관객에게 나와 타인 간의 거리와 소통의 의미를 되묻는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이자 연출을 맡은 배우진은 “‘동물원 이야기’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마음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아직 살 만한 세상이다
일상생활과 매스컴 등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때로는 냉혹하고, 험악하고, 때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삭막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하는 작고 따뜻한 선행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필자가 경험하거나 접한 세 가지 사례는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쪽지 편지’가 부른 감동적인 배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저지른다. 아무도 없는 어느 야심한 밤. 주차장에서 타인의 차량에 접촉 사고를 냈는데 아무도 못 봤으니까 그냥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양심에 따라 연락처와 함께 피해 보상을 약속하는 간단한 쪽지 편지를 써서 차량 와이퍼에 끼워놓았다. 며칠 후 피해 차량의 차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손해배상 절차에 대한 이야기부터 오가기 마련이지만, 차주분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쪽지까지 남겨주셔서 오히려 고맙다”며, 본인이 차량수리를 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