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계, 시민사회 반대에도 민주당 25일 본회의 통과 '속도전'
대선 앞두고 강성 지지층 의식…문체위원장 野 배분도 고려
국민의힘 "언론장악 시도 노골화"…정의당 "전면 재검토해야"
[시사뉴스 김세권 기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야당과 언론계,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다음주를 법안 처리의 데드라인으로 못박고 언론중재법 처리를 강행할 태세다.
민주당은 오는 19일까지 언론중재법의 상임위 절차를 마치고 이달 25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오는 17일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언론중재법을 처리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이 '언론재갈법'이라 부르며 반대하고 있지만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강행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원회 구성 요구라는 카드를 내밀어도 언론중재법 처리를 잠시 지연시키는 데 그칠 전망이다. 이 법에 찬성하고 있는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비교섭단체 몫으로 참여하면 안건조정위원 6인 중 민주당 의원 3인과 김 의원의 찬성으로 가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가짜뉴스로 인한 국민 피해 구제와 공정한 언론 환경 구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는 법안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핵심인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해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언론사에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업 등의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무직 공무원과 고위공무원, 대기업 등에 대해서는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보도한 경우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허위·조작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불명확하고 '손해액의 5배'로 정한 배상 책임의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행법으로도 잘못된 언론 보도를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고 그 피해는 민사소송으로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과잉금지라는 지적도 있다.
개정안에 포함된 '고의·중과실의 추정' 조항도 논란이다. 이 조항대로라면 정치인 등 권력자가 자신의 비리에 관한 일련의 보도에 대해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라고 주장하면서 그 입증 책임을 언론사에 떠넘길 수 있다.
인터넷 포털의 기사 편집권을 제한하는 이른바 '포털 개혁'도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언론 보도가 거짓이거나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을 경우 행사할 수 있도록한 열람차단청구권에 대한 반발도 나온다. 고의·중과실로 '추정'되거나 문제가 있는 보도라는 '청구'만 들어가도 보도 내용의 진위와는 관계없이 언론보도가 '허위'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어서다. 인터넷 플랫폼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청구만 들어와도 열람을 차단할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논란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에 속도를 내는 것은 강성 지지층의 강한 요구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논두렁 시계 보도부터 시작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까지 민주당 핵심 지지층 사이에서는 언론 지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민주당이 검찰개혁 입법을 마무리한 뒤 민주당 지지층이 다음 과제로 요구한 것도 언론개혁이었다.
이를 방치하면 여권에 불공정한 보도가 줄을 이을테고 내년 대선은 필패라는 위기 의식도 있다. 대선 시계가 빨라지면서 지지층의 언론개혁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여야 원구성 협상 결과 국민의힘에 위원장을 내주기로 한 7개 상임위 중 하나가 언론중재법 소관 상임위인 문체위라는 점도 민주당이 속도전에 힘을 쏟는 배경이다.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새로운 상임위원장들이 선출될 예정인데 국민의힘에 문체위원장을 내준 이후에는 언론중재법의 상임위 통과가 어렵다는 게 민주당의 시각이다. 다만 민주당은 언론중재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독소조항이라 불리는 일부 쟁점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문체위 여당 간사인 민주당 박정 의원과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계 의견을 일부 반영한 대안을 공개했다.
대안은 ▲고위공직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은 손해액의 5배까지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적용 대상에서 제외 ▲피해 주장 측이 고의·중과실 추정 입증의 주체임을 명확화 ▲열람차단청구 표시 삭제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의도라는 비판과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정권말 친정권 인사 알박기, 언론통제와 재갈 물리기법 처리 시도 등 언론장악 시도가 더 노골화되고 있다"며 "하지만 사법부와 검찰의 장악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듯이 언론장악 시도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언론장악 시도를 중단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정의당도 여전히 독소조항이 남아 있다며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에 부적격 판정을 내린 상태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일부 수정이 아니라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고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진짜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며 "언론중재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언론개혁이 완성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더 큰 사회적 갈등과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