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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상의 모든 낙오자들이여,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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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낙오자들이여, 날아라!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의 슬픈 가면 ‘성인용 황금박쥐’





세대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30대 이후 세대들은 아마 추억의 만화영화 ‘황금박쥐’를 기억할 것이다. 해골얼굴에 온 몸은 황금빛을 발하며,
악당들 앞에 순식간에 나타나 주무기 ‘실버 배트’를 휘두르던, 그리고 “음하하하하” 웃으며 홀연히 사라졌던 황금박쥐. 1960년대 후반
방영돼 당시 최고의 ‘영웅’으로 손꼽히던 황금박쥐가 무려 30여 년이 지난 2003년, 대학로 소극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발사 박봉구’
‘깔리굴라1237호’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 고선웅과 ‘날보러와요’를 무대에 올린 악어컴퍼니가 손잡고 ‘성인용 황금박쥐’로 부활해낸
것.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인가? 황금박쥐는 예전의 황금박쥐가 아니었다.


날짐승, 길짐승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

우선 연극 ‘성인용 황금박쥐’에 대한 오해를 풀자면,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야한’ 연극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황금박쥐’가
어린이들의 영웅이었다면, 연극 ‘성인용 황금박쥐’는 성인들의 영웅을 그린다. 아니, 영웅이라는 말은 어색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세상의
‘낙오자’다.

지하철 기관사인 왕기는 결혼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다. 한마디로 ‘씨 없는 수박’이다. 왕기는 자신의 남성능력 상실이 드러날까
겁이 나서, 이를 숨기기 위해 아내 숙민과 명섭이라는 건달을 동침시켜 아이를 얻는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아이처럼 키울 것이라 자신했던
왕기는 아이가 성장할수록 아내를 불신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럴수록 박쥐가 되어 날고자 하는 욕망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왕기는 황금박쥐 옷을 입고 13층 건물 창문에서 뛰어내린다.

왕기는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왼손잡이’다. 하지만 완전한 ‘왼손잡이’는 아니다. 끊임없이 ‘오른손잡이’가 되기 위해 애쓰고 고뇌한다.
만약 왕기가 그 어느 쪽이든 한 쪽을 택했다면, 그리고 다른 쪽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면 장담하건데 그는 박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그의 정체성이 그를 박쥐로 만들었다.


영웅이
될 수 없는 황금박쥐


그런데 왜 하고많은 캐릭터 중에 ‘황금박쥐‘였을까? 슈퍼맨도 있고, 울트라맨, 스파이더맨도 있는데 왜 하필 다 잊혀져간 황금박쥐냐 말이다.
젊은 사람들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도, 간혹 우연히 보게되더라도 ‘뭐 이리 웃기게 생겼어’라고 생각할 만한 괴기한 모습을 지닌 황금박쥐….


우리가 떠올리는 영웅은, 잘생긴 외모에, 정의감에 불타고 아름다운 여인과 로맨스도 즐길 줄 아는 그야말로 멋진 인물이다. 하지만 황금박쥐는
이 모든 것이 거세된다. 징그럽기조차 한 해골의 모습이고, 그것이 전부다. 복장을 벗으면 그럴 듯한 외모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무너진다. 그래서 주인공 왕기는 황금박쥐일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웅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인정받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한, 인생의 낙오자며 실패자다. 그가 황금박쥐가 돼서 날아오른 것은 ‘비상’이 아니라 ‘탈출’이자 ‘도피’다.


또한 박쥐가 낮에는 동굴에서 잠을 자고 밤에만 활동하듯 왕기도 낮시간대, 즉 일반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는 섞이지 못하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만
자유를 만끽한다. 그리고 초음파를 이용해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는 박쥐처럼 왕기는 자신을 속박하는 많은 사회적 장애에 걸리지 않고 ‘도망’치고
싶어한다.


남성성이 상실된 ‘남자’의 자격지심

박쥐와 관련된 설화를 보면 박쥐는 날짐승, 길짐승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동물이다. 왕기도 실은 그렇다.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왕기는 순수하지 못하다. 왕기가 정말 비주류적 인간이었다면, 그는 사회의 획일화된 가치관에 괴로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자신의 중심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왕기는 그러지 못했다. 남성능력이 없는 왕기는 입양을 하자는 부인의 제안도 거절한 채, 싫다는 부인을 억지로 건달의 품안으로 밀어
넣는다. 자신의 ‘쪽팔림’ 때문에 씨내림을 강요하는 비열한 ‘남성’이다. 그리고 그 건달을 계속 그리워하진 않을까 하는 의심과 불안에 휩싸여
아내 얼굴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누구보다 가부장제에 투철한 ‘열사’다. 그러면서 마치 주류의 왜곡된 시선의 희생양인양 “난 맨정신이야”라고
외쳐대는 모습은 솔직히 가증스럽다. 그가 자신이 황금박쥐라고 믿는 게 획일화된 가치관에 억압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처절한 날개짓이라고?
흥! 주류에 너무나 편입되고 싶어 안달하지만 결국 편입되지 못한 자의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위안일 뿐이다.

오히려 이 연극에서 가장 순수한 캐릭터는 연극배우로 나오는 창구다. 그녀는 일반인들과도 무리 없이 어울리며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왕기도
가슴으로 이해해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고, 그것에 몰입돼 있기 때문에 세상을 욕할 시간도,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할 시간도 없는 것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연극


이 연극은 이상의 ‘날개’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한다. 한 인간의 처절한 고민도, 인간성 회복에 대한 열망도 연극에선 부족하다.
아니 너무 많은 고민 때문에 오히려 관객을 혼란하게 만든다. 왕기가 13층 건물에 뛰어내려 하늘을 날아 사라졌다는 설정도, 불임인 남편과
그것도 몇 개월 동안 관계를 맺지 않았는데 임신을 한 아내도, 내포된 상징만 남겨둔 채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전달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대신에 ‘성인용 황금박쥐‘는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연극으로 남는다. 왕기가 ‘인간세계’로 날아간 것인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를 인정받고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곳으로 날아간 것인지 관객이 생각하는 것에 달려있다. 마찬가지로 관객이 황금박쥐를 꿈꾸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마도 정답은 만화 주제가 가사처럼 황금박쥐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11월30일까지/ 연우소극장/ 02-764-8760)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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