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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장인을 찾아서(36) - 손끝으로 빚어내는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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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빚어내는 그때 그 시절



닥종이에 생명 부여하는 인형작가 강소희


“이 녀석! 너도 한번 당해봐라.” “아야!” 동네 개구쟁이들이 사정없이 똥침 복수를 하며 신나게 뛰어 논다. 그 옆으로 여자와 남자
아이들이 한데 뒤섞여 말뚝박기를 하고 있다. 술래팀의 여자아이가 허리를 숙인 사이 장난꾸러기 남자아이가 치마 속을 훔쳐본다. “얼레리꼴레리
나는 봤지롱∼” “야! 너 잡히면 죽어!”



그리운 그 시절. 엄마 몰래 냄비로 엿 바꿔먹었다가 눈물이 쏙 빠지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고, 설탕뽑기 집 앞에서 한참을 침 발라가며 별모양을
만들곤 했던 그때, 어린 시절 기억들. 넉넉하진 않았지만 가슴만은 푸근했던 그때의 아련한 추억들을 강소희(48) 씨는 인형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작년 6월 한 ·일 월드컵 1주년 기념, 일본작가와 '축구하는 인형' 전을 열었던 작가 강소희. 그녀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인형의 눈코입이 없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따라 똑가은 상황인데도 누군가는 재밌게 보고, 누군가는 슬프게 보기
때문에 표정을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겼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절대 팔지 않는 작품들

집 안 한가득 인형들이 소곤소곤 대는 작업실에서 강씨는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너무도 평범한 가정주부로 보이는 이
사람이 작년 6월 한·일 월드컵 1주년 기념, 일본작가와 ‘축구하는 인형’전을 열었던 작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분명
그녀는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릴 정도로 유명하고, ‘자전거 탄 풍경’을 비롯한 두 권의 책 저자이며, 다수의 전시회로 ‘전통인형 국보’라는
찬사까지 얻은 인형작가다.



“오랫동안 집밖에 몰랐던 전업주부였죠. 때문에 제가 5년 전 처음 작품을 선보이고 인사동에 작업실을 냈을 때 정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어요.
그동안 만들어 온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에 했던 건데, 이제는 ‘작가’라고 불리고, 저 자체도 인형밖에 모르는
사람이 돼버렸네요.”



워낙 꼼지락대는 것을 좋아해 인형을 만들었고,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주름지 인형이 싫증나 닥종이 인형을 시작했다는 그녀는 대외적으로 활동한
것은 5년이지만 경력으로 따지면 벌써 25년의 베테랑이다. 그간 만들어온 작품만도 수백여 점. 전시회를 하면서 사라진 것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전부 고스란히 작업실에 모여있다. 작품을 팔지 않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모두 자식처럼 애착이 가는데 어떻게 팔 수가 있겠어요?”


지문 없어지는 건 예사

인형제작은 어떤 것을 만들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기획하는 단계만 지나면 막상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구상이 90%를 차지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 계획이 잡히면 아주 가는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여기에 종이를 여러번 감아
대략적인 구조를 만든다. 그런 후 세부 표현을 하고, 옷을 입히고, 소품을 만들면 작품이 완성된다. 뼈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닥종이로만
이뤄진다.



“닥종이는 구기면 구기는 대로, 찢으면 찢는 대로 멋스러움이 나오죠. 또 오래돼 색이 바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예스러움과 고풍스러움이
베어나요. 닥종이 인형을 하다보면 그 매력에 빠져 다른 인형은 만들지 못하죠.”



색은 물감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포도껍질이나 장미꽃잎의 즙을 내 되도록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색을 사용한다. 옛날 사람들은 염색을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본다.



가장 표현하기 힘든 부분은 뜨개질로 뜬 옷이다. 닥종이를 꼬아 실을 만들어 코바늘로 뜨는데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실을 꼬다
보면 손 감각이 무뎌지고 지문이 없어지는 것은 예사다.



“손만 보면 엄청 고생한 사람 같대요. 특히 오른손은 제가 봐도 엉망이죠. 그동안 너무 무리를 해서인지 손이 아파 요즘엔 조금 쉬엄쉬엄
하고 있어요.”












가난했지만 가슴 따뜻했던 기억들을 소재로 '정(情)'을 머금고 있는 강씨의 작품들.

“표정은 보는 이의 몫”

홍씨 인형의 가장 큰 특징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관절부분을 딱딱하지 않게 만들어 팔을 올렸다 내렸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할 수 있다.
한복을 차려입고 단아하게 두손 모아 서있던 인형이 어느 순간에는 큰절을 올리고 있다. 마론인형처럼 가지고 놀 수 있으면서 그보다 동작이
더 자유롭다.



또한 여타 닥종이 인형들이 5등신으로 귀엽게 묘사된 것과 달리 그녀의 작품들은 인체비례가 사실적이다. 그리고 방송용으로 제작된 것을 제하고는
눈코입이 없다.



“표정은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뒀어요.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따라 똑같은 상황인데도 누군가는 재밌게 보고, 누군가는 슬프게 보죠. 다양한
감정과 느낌들을 제가 단정짓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요.”



리어카를 끄는 어머니와 뒤에서 미는 아들의 모습을 누군가는 ‘그땐 참 힘들었지’하며 쓰잔하게 바라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어머니를 돕는
아들의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다가오는 기억의 단편들, 그것들을 통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정(情)’이다.



“누구나 과거는 마음 속에 따뜻함과 그리움으로 머무르죠. ‘가난했지만 그때가 참 좋았지’하며 회상하는 것은 아마 저만은 아닐 거예요.’



작품 하나하나를 보면서 그때를 추억하는 것도 재밌지만 만드는 당시에도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코 찔찔이 그 친구는 지금 뭐하고 살까?’하며
어릴 적 짝꿍을 인형으로 탄생시키는 것도 또다른 재미 중에 하나다.


아들과 공동전시 소망

그녀는 지금 행복하다.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이제는 아들의
자랑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이 인형작가의 길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 가장 행복하다.



“한번도 강요한 적 없는데 얼마 전 이 일을 하고싶다고 하더군요. 어찌나 기쁘던지. 남자니까 선이 굵은 작품을 만들어 함께 모자전을 여는
게 꿈이에요.”



과거의 추억을 담아내다 이제는 미래가 돼버린 닥종이 인형. 따뜻한 인정을 머금고 있는 인형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닮았다. 앞으로 그녀의
아들이 만들어 낼 인형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처음 인형을 만들 때 아들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반대가 됐네요. 얼마 후면 서로 경쟁하면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겠죠? 아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많이 고민하고 노력할 거예요. 이제 잠은 다 잤네요.”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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