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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한민국 민주주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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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때 아닌 시국선언에 술렁이고 있다. 그 서막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상아탑에서 울렸다. 지난 3일 서울대 교수진이 시국선언 발표를 계기로 전국 대학은 물론 종교계, 노동계 등 동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집회, 시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걸핏하면 경찰이 시민들을 연행하는 행태 등을 통해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정부의 행태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고, ‘시국선언’을 통해 그 뜻을 표출하고 있다. 보수진영 쪽에선 ‘반(反) 시국선언’으로 맞대응 하고 있지만 사태는 시국선언을 주장하는 쪽에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갈수록 확산되는 시국선언 동참 행렬을 단순히 일부의 주장이라고 하기엔 그 열기가 너무나 뜨겁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후퇴=전직 대통령의 죽음?
시국선언의 첫 포문은 대학교수들이 열었지만 이제는 학생과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법조계까지 동참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시작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후라는 것과, 국정쇄신의 핵심엔 바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묻어 있다는 것이다. 8일 현재 17개 대학에서 1000여명이 넘는 교수들이 참여했고 그 중엔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 교수진들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민주주의의 후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이 있고 더 이상 가만있지 않겠다는 나름의 의지요, 표현이었다. 이들은 시국선언의 계기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의 연관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성균관대 박승희(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권침해적인 전직 대통령 수사, 공권력을 사용한 평화적 조문 방해 등이 과거 군사정권의 악몽을 떠올려 교수들이 뭉치게 됐다.”고 시국선언 배경을 전했다. 이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현 정권의 무리한 보복수사에서 기인했다는 기존의 주장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들은 현 정부가 집권 한 뒤 표현의 자유와 언론독립, 집회·결사의 자유 등 그동안 어렵게 이뤄놓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급기야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낳았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교수 35명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합법을 가장한 인권침해였다”며 “현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교수 90여명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 물결은 현 정부의 거듭된 실정에 대한 국민적 분노”라며 정부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학계 뿐 아니다. 종교, 예술인도 팔을 걷고 나섰다. 불교계 인사 108명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탄압받고 있다. 정부는 대국민 사과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계도 기독교계 원로들이 한 자리에 모여 현 사회 현안을 논의하는 시국 간담회도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188명의 문인들도 ‘이것은 사람의 말. 6ㆍ9 작가선언’을 발표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짓밟으며 달려온 현 정권의 1년이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보혁(保革) 갈등 심화
이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후퇴’는 일방적 행태에서 비롯된다. 촛불시위 관계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사법처리 등 집회의 자유에 대한 억압, 미네르바의 구속으로 상징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 연세대 오세철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노동자정치연합 등에 대한 사법적 조치들이 보여주는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 YTN 노조위원장 구속과 MBC PD수첩 관련자들에 대한 체포조사로 상징되는 공적 담론에 대한 불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계획하고 있는 ‘6·10 민주항쟁 범국민대회’의 서울광장 개최를 불허한 것도 국민적 반감을 일으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주노총은 대의원 및 임원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자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대대적인 정책 전환, △집회 시위 금지 및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행태 금지, △용산철거민 문제 및 쌍용차 정리해고를 비롯한 현안 문제 해결 등 3가지를 요구했다.
보수진영도 ‘맞불 작전’에 돌입했다. 보수 진영도 기자회견이나 선언문 발표를 통해 ‘반(反)시국선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현 시국상황이 4.19 민주혁명과 6.10 민주항쟁과 비교할 정도냐며 강하게 반론을 제기한다. “그 때는 명백한 선거부정과 강압적인 통치방식에 대해 항거해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공감대가 있었고, 또 이를 위해 촌각을 다투어야하는 절박성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거세지는 시국선언 바람몰이를 의식한 듯 “ 일부 교수가 전체 의견을 대표하는 것처럼 발표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고려대 조대엽 교수는 6월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서울광장에 모인 1%밖에 안되는 50만명을 다수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 “가장 객관적으로 현실을 봐야하는 교수들이 나섰다는 것에 대해 뭘 이야기 하려고 하는 건지, 뭘 문제 삼으려고 하는 건지 본질을 보려하지 않고 다수가 아니라면서 보혁(保革)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단히 의도된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민심에 귀 막는 이 정권
이런 가운데 보수성향의 이상돈 교수가 현 정부의 정책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이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개인적 성향이 강한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시국상황에 의사표시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노무현 정부 때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보수 성향 교수들의 기명 칼럼을 신문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현 정부를 지지하는 교수들의 칼럼은 지상에서 찾아 볼 수 없다”며 “이는 자신이 진보성향이 아니거나 심지어 보수성향이라고 생각하는 교수들 마저 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말미에는 “그런 탓인지, 신문에 이따금 나오는 정부를 지지하는 칼럼은 대개 사내칼럼”이라며 “이것이 바로 ‘민심’이다”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정작 이런 민심을 기울여야 할 쪽에선 ‘관여 않겠다’는 반응이다. “법과 질서를 위협하는 ‘행동’에는 법에 따라 대응할 것이고, 양심과 표현의 자유에 따른 평화적인 의견 개진은 내버려 두면 된다”는 식이다.
청와대 핵심 인사는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핸들링할 사안은 아니다. 혹시 대응할 게 있으면 관계부처 등에서 하면 된다”면서 “다만 시국선언의 흐름이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왜곡되지 않도록 신경은 쓰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 불만을 갖고 있던 세력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조문 정국’에 편승해 ‘정치 공세’에 나섰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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