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젠더 갈라치기로 보수층, 2030 남성 결집 의도
색깔론 공세로 향후 安과 단일화 차단 포석 분석도
[시사뉴스 김성훈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멸공(滅共·공산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를 멸한다) 캠페인,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원 등의 공약을 띄우면서 '이념·젠더' 정치에 앞장서고 있다. 윤 후보의 보수와 진보, 남성과 여성 갈라치기 전술은 보수층 결집과 20대 지지층 복원을 통해 지지율 하락을 막고 반전을 꾀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지지층 결집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지지율의 상승 변곡점을 형성하는 전술은 될 순 있지만, 이념·젠더 갈등 등을 유발하는 선거전략은 장기적으로는 지지율 제고에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적으로 약발은 있을지 모르지만 대선이 두 달 남은 상황을 고려하면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른바 멸공 논란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소셜미디어에 '멸공'이라는 해시태그(검색 주제어)를 게시해 여권의 비판을 받던 상황에서 윤 후보가 신세계그룹 계열 이마트에서 멸치, 콩을 구입하는 사진을 SNS에 올리자, '멸치+콩=멸공'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정치권에 논란이 불붙었다. 나경원 전 의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 김연주 부대변인 등이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반찬으로 식사하는 사진을 공개하는 등 멸치·콩을 이용한 '멸공 챌린지'가 당 내에서 확산됐다.
야권에선 친중·친북 일변도의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세력인 '문파'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윤 후보 공약플랫폼인 '위키윤' 내 'AI 윤석열'이 장보기 후기 답변에서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다. 달·파·멸·콩"이라고 하자 달파가 문파를 연상케한다는 이유에서다.
윤 후보가 던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도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공약에 대한 장황한 설명 없이 단 일곱자에 불과한 공약을 SNS에 올린 것이었지만, 불과 며칠만에 3만명 이상의 지지와 1만개 이상의 댓글이 올라올 만큼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윤 후보가 SNS에 올린 '병사 봉급 월 200만원' 공약도 9000명 이상의 지지와 30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정치권에선 '멸공', '여가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원'을 내세운 윤 후보의 선거 전술이 지지율 하락세를 막고 상승 반전을 유도하며 단기 변곡점을 형성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후보의 때아닌 멸공 캠페인은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인 보수세력의 결집을 독려하면서 지지층의 견고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가부 폐지론, 병사월급 대폭 인상 공약은 2030 남성층 표심을 파고들어 지지율 하락의 주된 요인이었던 청년 지지층 이반 현상에 일단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K 연구소장은 YTN에 출연해 "색깔론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해서, 지금 빨리 지지층을 끌어올려야 되니까 지지층들을, 보수층을 조금이라도 안보 색깔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유권자층을 결집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념이나 젠더 '갈라치기'로 지지율 반전의 변곡점을 마련하겠다는 윤 후보의 승부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나 국민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쏠렸던 관심을 돌리는데도 도움이 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 후보가 탈모치료제 건강보험 지원 공약으로 이슈몰이에 성공해 여론을 선점하자, 윤 후보는 멸공, 여가부 폐지, 병사월급 200만원 공약으로 맞불을 놨다. 이를 통해 이 후보에게 급격히 쏠렸던 여론을 일정부분 윤 후보 쪽으로 돌리는 국면전환에 성공했다는 말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실제 이 후보는 탈모치료 지원에 이어 골프장 요금 인하, 생활용품 수명 연장 공약 등을 후속으로 내놓아 특정 타깃을 공략했지만, 윤 후보가 촉발한 이념·젠더 갈등 공방에 묻히면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졌다. 특히 민주당 내에서는 갑작스레 불거진 젠더 이슈를 놓고 일부 의원들이 상반된 전략을 내놓으며 갈등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윤 후보의 청년을 타깃으로 한 공약은 안 후보의 청년 지지층에 대한 확장성을 견제하는 효과도 예상된다. 최근 윤 후보에게서 이탈한 청년층의 일부가 안 후보로 옮겨가면서 윤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한 바 있다. 윤 후보가 젠더갈등 논란을 무릅쓰고 소위 '이대남(20대 남성)'을 겨냥한 공약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청년 민심을 되돌리고 '안풍(安風)'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윤 후보가 반공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띄우고 있는 배경에 안 후보와의 단일화 국면을 의식한 노림수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색깔론 논쟁이 불 붙을수록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로 치닫게 돼 국민의힘과 민주당 간 거대양당 중심으로 공방이 가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도노선을 추구하는 안 후보로서는 존재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에 관한 일부 여론조사에서 최근 안 후보가 우위를 보이는 여론조사가 계속 발표되자, 이에 위기의식을 가진 윤 후보가 색깔론을 내세워 단일화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려는 포석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윤 후보가 보수층을 의식해 반공 프레임을 강화할수록 안 후보로서는 단일화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배종찬 소장은 "색깔론을 제기하게 되면 단일화가 차단될 수 있다"며 "안철수 후보와 지금 단일화가 거론되는데 안 후보가 2012년에도 그렇고 2017년 대선도 그렇고 이 안보 관계 이슈가 나오면 작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2년에는 NLL, 2017년에는 사드, 그러니까 이렇게 색깔론 공방을 벌이기 시작하면 여기에 안철수 후보는 한켠 물러날 수밖에 없고 보수와 진보의 다툼이 된다"며 "그렇게 되면 안철수 후보에 대한 관심과 주목도가 떨어지게 되고 단일화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걸 노렸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안철수 후보하고의 단일화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고 짚었다.
하지만 윤 후보의 이념·젠더 정치는 장기적으로 극보수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고 여성들의 반발을 강화시키며 중도층에 비호감을 줘 결국 득보단 실이 더 많은 '무리수'란 관측이 나온다.
이택수 대표는 "단기적으로 쓸 수 있는 전략일 수는 있는데 이게 중장기적으로 가면 특히 색깔론이라든지 이념 갈등에 따라서 너무 양극화되는 정치를 싫어하는, 혐오하는 스윙보터들 20대라든지 중도층이 떠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는 장기적으로 쓸 수 있는 전략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윤 후보의 전술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특정 세대만을 겨냥한 선거 캠페인이 효과적인 전략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멸공 챌린지를 놓고 선대본부 차원의 전략은 아니라고 확실히 선을 긋고, 여가부 폐지 등에 대해서도 당 내에서 지적이 나오는 것도 역풍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대남(20대 남성)만 공략했다간 이대녀(20대 여성)를 전부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당장 여당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모 유통업체 대표의 철없는 멸공 놀이를 말려도 시원찮을 판인데 이것을 따라하는 것 역시 자질을 의심하게 한다"며 "잠시 중도의 길을 걷나했더니 대놓고 일베 놀이를 즐기며 또 극우 보수의 품으로 돌아간 듯하다"고 비난했다.김영배 최고위원도 "지지율이 여의치 않자 앞다퉈 일베에 충성을 맹세하며 화력을 지원하는 모양새"라며 "그게 보수의 품격이냐"고 쏘아붙였다.
멸공 전술에 대한 논란이 일자 윤 후보도 멸공 인증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날 인천 연수구 한 호텔에서 열린 인천시 선거대책위원회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한 뒤 장보기 사진의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멸치 육수를 많이 내서 먹기 때문에 멸치를 자주 사는 편이다. 아침에 콩국 같은 것을 해놨다가 많이 먹기 때문에 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 후보가 이마트에서 산 멸치는 육수용이 아니라 ‘조림용’이어서 네티즌들은 ‘윤 후보의 해명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멸공과 선을 긋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윤 후보의 멸공 해시태그 논란에 대해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걸 익살스럽게 풀어낸 걸 주변에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후보의 모든 행보 하나를 너무 깊게 관찰하시는 분들이 이걸 챌린지라고 이렇게 이어나가는 걸 보면 그게 과한 것이다. 후보의 정책적 행보가 최근에 좋은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이념적인 어떤 어젠다가 관심받는 상황이 주변에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은 당 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멸공 릴레이에 대해 "우리 선대본부 차원에서 방침으로 채택한 것은 아니다"라며 "선대본부 공식입장, 슬로건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호남 출신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도 "멸공은 50~60년대 한국전쟁직후 구호일뿐 지금은 누가 뭐래도 남북 화해와 평화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라며 "좌우막론하고 멸공을 외칠 때는 아니라고 본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에 대해서도 당내 이견이 나온다. 원희룡 국민의힘 정책본부장은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솔직히 그 공약은 우리 정책본부에서 한 건 아니다"라며 "내부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는데 후보가 최종 결정을 한 것"이라고 TBS라디오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