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3.20 (금)

  • 맑음동두천 12.1℃
  • 맑음강릉 15.9℃
  • 맑음서울 11.7℃
  • 맑음대전 12.0℃
  • 맑음대구 15.1℃
  • 맑음울산 15.1℃
  • 맑음광주 13.7℃
  • 맑음부산 15.7℃
  • 맑음고창 12.0℃
  • 구름많음제주 13.3℃
  • 맑음강화 10.5℃
  • 맑음보은 12.2℃
  • 맑음금산 12.5℃
  • 맑음강진군 14.4℃
  • 맑음경주시 15.2℃
  • 맑음거제 15.0℃
기상청 제공

인물

잊혀진 기억 … 베일 벗은 실미도

URL복사
정부, 사라진 유해 행방 등 남은 진실 밝혀야

1968년 4월 창설된 실미도 북파부대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 실미도가 개봉 한 달만에 관객 700만 명 돌파라는 전대 미문의 흥행기록을 세우는 등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자 그동안 역사속에 묻혀있던 실미도의 진상이 베일을 벗고 있다.

본지가 지난 1995년 실미도 사건의 진상을 심층 보도할 당시만 해도 실미도 사건은 어딘가에 묻혀있을 서른 한 명의 유해와 함께 영영 묻혀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실미도 사건이 영화를 통해 재조명되면서 실미도 진상 규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가고 있다. 1968년 실미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실미도 ‘김신조 사건’ 산물
정전협정 체결 후 극한 대치상태에 있던 1968년 1월21일 북한의 특작부대인 124부대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신조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이 발생하자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는 같은 방법으로 북한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공군 제7069부대 소속의 235전대 209파견대를 창설한다. 부대는 실질적으로 중앙정보부 소속이었으며, 공군에서는 훈련만을 맡았을 뿐 일체의 부대관리는 중정에서 맡았다.

68년4월에 결성돼 ‘684부대’로 불렸던 실미도 부대는 1.21 사태 때 남파된 124군부대와 같은 31명으로 구성됐으며, 이들 공작원들은 중정 요원들에 의해 포섭돼 무기수, 매혈자, 노동자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 대부분은 “먹고사는 데 문제없이 해주겠다거나, 죄수자의 경우형을 사면해 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갔다.

실미도 부대 소대장 김성진 씨는 “그동안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그들이 모두 사형수나 무기수 같은 중죄인은 아니었다. 날치기나, 소매치기, 담치기 등과 같은 가벼운 범법을 저지르긴 했지만, 범죄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민간인이라고 하는 게 맞다”며 “이들이 이곳에 온 배경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작전 성공 이후에 충분한 보상과 신분 보장 약속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이렇게 구성된 684부대는 인간병기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당시 684부대 소대장이었던 김양구씨는 (보통)인간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당시 훈련의 잔혹함을 전했다.

7·4공동 성명 발표 등 남북간의 화해무드가 무르익어가자 실미도부대는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어졌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수장이 최형욱에서 이후락으로 바뀌면서 실미도 부대는 골치덩이가 됐다. 정부가 해결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동안 섬안에 고립된 부대원들의 정부의 무관심에 대한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

71년 8월23일 새벽6시 정부가 차일피일 그들에 대한 해결을 미루자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인 24명의 훈련병들은 마침내 폭발한다.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 청와대를 향한다. 이 과정에서 기간명 12명이 사살되고, 6명은 바다로 뛰어들어 익사했다.

화장실 밑에 숨어있던 기관병과 애인 면회차 외박을 나갔던 김방일 소대장 등 6명만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김 소대장은 “사건이 발생한 직후 실미도에 들어갔는데 내 방 책상위에 ‘소대장님 미안합니다. 어쩔수 없었습니다’라는 내용의 쪽지가 놓여져 있었다”고 술회했다.


‘청와대가서 대통령에게 따지자’
인천 독부리 해안에 상륙한 그들은 해안 초병의 보고로 출동안 군경과 교전을 벌였고,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한다. 당시 사고차량에 있었던 여성은 “그들이 차에 올라타 승객들을 보고 죽이지 않을 것이니까 엎드려 있으라고 말했다”며 당시 그들이 민간인을 살해할 의도가 없었음을 증언했다. 실미도부대 창설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장지령 전 총장은 “대통령을 만나 자신들을 죽이던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684부대의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서 서울로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입성에 성공한 실미도 부대원들은 그러나 무장한 군·경 병력에 막힌 더 이상 청와대를 향해 진격할 수 없었고 결국 수류탄 자폭을 결심한다. 그결과 19명이 사망하고 4명만이 생존했으나 이들 역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정부 의도적 은폐와 방치
정부는 서울 대방동 총격전에 대해 버스를 탈취한 이들이 북한에서 내려온 공비라고 발표했다가 3 시간만에 군특수범의 난동으로 정정 발표하는 등 사건의 진상을 감췄고, 실미도는 그렇게 잊혀질 뻔했다. 그러나 다음달인 9월 국회 대정부 질문과정에서 야당의 초선의원이었던 강근호 현 전북 군산 시장에 의해 최초로 세상에 알려졌다.

강 시장은 대정부 질의에서 684부대의 창설과 훈련, 지휘체계, 부대의 목적 등을 추궁했다. 강 시장의 대정부 질문이 있은 다음날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8·23 난동의 주범은 무장 공비가 아니며 군특수범들도 아니 북파 특수부대 요원들의 난동이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정부는 사건 발생 이틀후인 8월25일 야당이 즉각 조사에 나서자 김이태 전 소대장이 상부의 지시로 군교도소를 방문한다. 사건 발생 4개월 전에 정보전대로 복귀한 김 전소대장은 생존자 4명에게 “야당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입을 다물면 월남에 데려가겠다”며 절대 발설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소대장과의 약속을 지킨 그들은 1972년 3월 끝내 사형 당했다.

사건 발생 가능성을 정보 당국이 몰랐던 건 아니다. 이를 감지한 공군본부는 중앙정보부와 국방부에 공작원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함께 684부대 해체를 건의했었다. 김두만(76)전 공군 참모총장은 “70년 8월 취임 직후 실미도 부대원들이 거지처럼 비참하게 생활한다는 보고를 받고 중앙정보부에 정리를 건의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결국 국방부 장관에게 수차례 요청해 ‘71년 11월까지는 부대를 정리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면서 “부대 정리 시기가 3개월만 앞당겨졌어도 40여명이 참혹히 죽는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치유 시급한 분단시대 민족 상처
국회는 지난 1월8일 본회의에서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과 ‘특수임무수행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 등 북파공작원 관련 법률안을 통과 시켰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들의 숙원이던 명예회복과 정부 보상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실미도의 진실이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당시 훈련과정에서 숨진 훈련병들의 유해를 비롯해 823 사건의 희생자들 유해 역시 행방이 묘연하다. 정부는 아직도 군기밀이라는 이유로 진상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실미도는 분단시대를 살아온 우리 민족의 상처다. 더 나아가 정권을 무기 삼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일삼고, 끝내 죽음으로까지 내 몬 광기의 결말이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CJ프레시웨이 '푸드 솔루션 페어 2026' 개최..."O2O 기반 식자재 유통 혁신 모델 제시"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CJ프레시웨는 B2B(기업간거래) 식음산업 박람회인 '푸드 솔루션 페어 2026'을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O2O 기반 식자재 유통 모델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CJ프레시웨이는'푸드 솔루션 페어 2026'의 사전등록 관람객 수가 역대 최다 규모를 기록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솔루션 페어 2026'의 사전등록 관람객 수가 행사 일주일 전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약 120% 증가했고, 외식 프랜차이즈 관계자, 개인 사업자 등 산업 종사자 중심으로 신청이 크게 늘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번 푸드 솔루션 페어는 식자재 상품 전시와 플랫폼 서비스 체험, 푸드 비즈니스 솔루션 제안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외식·급식 사업자들은 현장에서 식자재 유통과 푸드서비스 산업의 최신 트렌드를 살펴보고,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 흐름을 체감했다. 특히 CJ프레시웨이가 지난달 지분 투자한 플랫폼 기업 ‘마켓보로’의 온라인 식자재 오픈마켓 ‘식봄’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식자재 유통 혁신 모델을 선보이며 큰 관심을 모았다. 식봄은 외식 사업

정치

더보기
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 서울특별시장 출마 선언...“기성 정치인들과 연계된 사업 전수조사”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개혁신당 김정철 최고위원이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김정철 최고위원은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해 “짧지 않은 고민 끝에 저는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청산, 심판, 적폐, 종식. 화려한 말들로 장식된 서울의 정치 속에서 정작 시민의 삶은 단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며 “서울은 여전히 청년이 떠나고 삶을 지탱하기 힘들며 가난한 사람이 꿈꾸기 어려운 도시다. 정치는 요란했지만 시민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김정철이 바꿔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은 다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낼 저력이 있는 도시다. 제가 그 기적을 다시 시작하겠다. 서울을 다시 성장의 도시로 만들겠다. 적극적인 규제 혁파를 통해 뉴딜 수준의 산업 유치와 개발을 시작하겠다”며 “그동안 산업 성장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서울특별시)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은 각각 '바이오 연구 및 교육특구', 'K-Culture 관광특구', '시니어 헬스케어특구'로 탈바꿈시켜 서울 북동부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정철 최고위원은 “중랑천은 수변 감성의 거점으로 개발하겠다. 성수동에서 (경기도) 의정부(시) 경계까지 자전거와 러닝 전용 하이웨이

경제

더보기
이재명 대통령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자세 가져라...단 한 방울의 석유라도 더 확보하라”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현재 중동 상황에 대해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자세를 갖고 단 한 방울의 석유라도 더 확보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중동 전황의 불투명성이 확대되면서 원유와 일부 핵심 원자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수급 관리 대책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지금은 단 한 방울의 석유라도 더 확보하고, 안정적인 공급선을 개척하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시기에 비서실장께서 UAE(United Arab Emirates,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원유 2400만 배럴을 확보하고 우리나라에 원유를 최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낸 것은 매우 큰 성과다”라며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청와대와 모든 정부 부처는 '경제 전시 상황'이라는 점을 엄중한 자세로 가져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대해선 “민생 전반에 대해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사실상 ‘전쟁 추경'이라고 할 이번 추경도 민생 경제의 충격을 덜고 경기 회복의 동력을 계속 살려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편성해야 될 것이다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의도한 듯한 제작 연출은 ‘과유불급’이었다
최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된 트롯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4’가 큰 인기를 끌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 매회 참가자들의 뛰어난 노래 실력과 화려한 무대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 속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연 프로그램의 연출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한 여성 참가자의 이야기는 방송 내내 시청자들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는 결승 무대에서 탑5를 가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2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최종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얻어 순위를 뒤집고 결국 ‘진’의 자리에 올랐다. 실력 있는 가수가 정상에 오른 것은 분명 당연한 결과였고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본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평가도 나왔다. 우승 자체보다 방송이 보여준 연출 방식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이 참가자는 이미 예선전부터 뛰어난 가창력과 안정된 무대매너로 주목을 받아왔다. 예선 1회전에서 ‘진’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고, 무대마다 탄탄한 실력을 보여주며 심사위원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10년 차 가수였지만 그동안 큰 기회를 얻지 못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