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자부에 따르면 2003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지만 실제로 집을 가진 가구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118만 가구가 3주택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 한 자의 격차가 큰 것이다. 따라서 집 없는 서민에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정부의 손발이 바쁘다. 현재 전국적으로 100여 곳에서 주택개발사업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익개발 가운데 일부가 원주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어서 논란이다.
사업지구 지정 후 공시지가 떨어져
전국개발지역주민단체총연대(이하 개발지역주민연대)는 지난 1월16일 여의도 대한주택보증 앞에서 1,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집회를 ?? 정부에 재산권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이 단체는 전국 개발지역 100여 개 지역주민대책위로 구성됐다.
나철재(판교주민단체총연대 위원장) 공동대표는 “정부개발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개발지역 주민들”이라면서 “건교부와 토공, 주공의 일방적 사업진행이 해당 지역 주민들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업주체들이 개발을 서두르면서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생존권까지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발과정에서 주민들의 재산권이 침해당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사업지구로 지정되는 순간 그 지역은 일체의 건축물 신축을 포함, 증·개축이 허용되지 않는다.
대전 용두동의 경우 1994년 사업지구로 지정된 뒤, 주민들은 사업이 시작된 2000년까지 무려 7년 동안이나 벽돌 한 장 새로 올릴 수가 없었다.
그간 겪는 불편은 둘째 치고라도 토지나 지장물 보상금이 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주민들은 눈뜨고 코 베이는 격이었다.
판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판교신도시 예정지구는 1976년부터 각종 공법에 의해 개발이 규제됐다. 그 결과 타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판교지역은 2003년 공시지가가 10여 년 전에 비해 1/3로 떨어지는 괴현상이 발생했다.
현 시세 반영 안 된 보상금
따라서 현 시세가 반영되기 어려운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금을 책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파주 신도시 황기현 대책위원장은 “공시지가에 의한 감정평가는 평균적으로 현 시가의 70~80%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장래에 기대되는 개발이익도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 위원장은 “정부시책 사업이면서 주민동의도 없이 개발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예산은 한 푼도 투입되지 않는 날강도 같은 주택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분개했다.
그는 보상금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 시가에 훨씬 못 미치는 보상금을 받고 있는데, 보상금에 대한 양도소득세까지 물리는 것은 너무하다는 것이다.
그는 “보상금은 양도로 생긴 소득이 아니라 막대한 손해를 보고 받은 대가이기 때문에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막막한 세입자·소규모 공장업자
이들의 사정은 그러나 세입자들에 비하면 배부른 푸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입자들은 그야말로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다.
판교지역의 경우 1,500여 가구가 세를 들어 살고 있다. 생계가 어려워 판교까지 흘러온 경우가 허다하다. 개발제한에 묶여 방값이 싼 판교가 이들을 받아주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이주비는 4인 기준 겨우 760만원. 임대아파트 입주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분양금을 마련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만약 마련을 한다고 하더라도 입주는 2007년부터 시작된다. 그 때까지 몸을 뉠 장소가 없다. 이들은 결국 약간의 이주비를 받고 판교를 떠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서울 인근에서 방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남의 땅을 빌어 공장을 운영하던 사업자들도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공장 이전 비용은 푼돈에 불과하다. 순전히 말 그대로 이사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판교에서는 100여 평의 공장용지를 월세 50~60만원에 임대할 수 있었다. 보증금도 500만원 선이면 해결됐다. 요즘 그런 땅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하루아침에 공장문을 닫게된 이들은 생계를 꾸려나갈 걱정이 꿈만 같다.
영세 철거민 생존권 보장해야
개발지역주민연대는 정부가 불합리한 법을 우선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토지수용과 관련해서는 ’공공용지의 취득 및 손실보상에 관한 특별법(공특법)’을 따르고 있다. 공특법에 따르면 보상시 거주민들과 합의를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합의가 안 될 시에는 합의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발지역 주민들은 하나같이 정부가 합의하는 모양새만 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결국은 정부 뜻대로 되기 때문에 이 법을 두고 ’강제수용법’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주민 이주대책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납득할만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개발지역주민연대는 말한다.
특히 영세 철거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우선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생활권 내 가수용단지 건립과 한시적 보증금 면제 공공임대주택 공급, 공장이주단지 조성 등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한편, 개발지역주민연대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2월 중으로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뉴타운지역 주민들과 연대해 확대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집 없는 자들의 설움을 어르기 위한 주택개발. 그러나 그 개발이 또 다른 자들의 설움을 양산하고, 극한으로 내몰린 그들은 거리에서 주먹을 다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