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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달픈 삶, 이야기로 위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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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라는 주제로 다섯 명의 감독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홍글씨’의 변혁,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내 마음의 풍금’의 유영식, ‘여고괴담2’의 민규동, ‘선물’의 오기환. 이름만으로도 기획의 무게를 짐작케 하는 이들 중견 감독들이 모여서 ‘오감도’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각기 독특한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소통을 통해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갖춰지는 멀티 플롯 구조를 지향, 이번 작업을 통해 이들은 한국 기획 영화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오감도’ 프로젝트에서 매력을 느낀 점은.
변혁 : 짧다는 것. 여행처럼 가볍게 다가오는 기분 좋은 설렘을 느꼈다. 모처럼 술자리에서나 만났던 분들과 함께 작업을 하게 돼서 즐거웠다. 사실 각자의 작업 때문에 많이 만난 적은 별로 없었지만 기획 자체가 재미있었다.
허진호 : 다섯 명의 감독들이 공통된 테마를 가지고 각자가 생각하는 에로스 또는 어떤 감각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기획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서로 간의 아이디어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즐거운 작업이었던 것 같다.
유영식 : 다섯 가지 색, 다섯 가지 입맛, 다섯 가지 재미. 이런 독특함으로 기획했고 한 울타리로 엮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며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해서 완성한 만큼 조금 모자라더라도 즐겁고 재미있게 봐준다면 너무나 감사할 것 같다.
민규동 : 작은 그릇에 더 넓고 깊은 세계가 담길 수 있다고 믿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굉장히 작고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그런 영화 만들기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오기환 감독 : 다섯 명의 감독이 다섯 개의 감성을 표현한다는 기획 자체가 당연히 좋았다. 그것보다 더 좋았던 것은 개인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하나씩 하고 싶었는데 신파 멜로(‘선물’), 로맨틱 코미디(‘작업의 정석’), 공포(‘두 사람이다’). 다음으로 에로 분위기 물씬 나는 작품(‘오감도’)을 할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새내기 초심에 맞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됐던 것 같다. 연극영화과 출신의 신입생들과 선후배가 모여서 실제로 촬영하는 작업들에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변신로봇을 비롯한 많은 경쟁작들과 마주하게 됐는데 그 부분에 대한 소감은.
변혁 : 일단 기획하고 촬영할 때는 변신로봇 걱정은 전혀 못했다. 차라리 지금 상황이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블록버스터들이 나올 때 영화의 모양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잘 됐다 싶다. 나중에 좀 핑계거리가 될 수 있고. (웃음)
허진호 : 질문이 좀 어려운 것 같다. 작은 영화라곤 하지만 색다른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유영식 : 작지만 여러 사람들이 힘을 맞춰서 단란하게 만든 영화다. 물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예산을 많이 들여 현란한 CG같은 걸 쓴 영화도 있지만 그런 입맛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이 같은 영화를 선보이는 것도 카운터파트너로서 굉장한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규동 :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 만들 때는 이 영화가 개봉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도 개봉된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고 행복하다. 만들어지지 못한 많은 드라마들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이 기적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다른 거대 영화의 환경이나 이런 것은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그냥 이것 자체가 일단 행복한 선택이다.
오기환 : 그쪽이 변신로봇이면 저희들은 뭐 똘이장군인데…. 아 글쎄, 독수리오형제일 수도 있겠다. 그게 결국은 크기의 싸움이 아니라 관객들이 어떤 것을 원하느냐는 싸움 같은데 저희들이 담고자 한 컨텐츠가 충분히 재량 있다고 본다. 그리고 ‘트랜스포머’가 아니었으면 더 빨리 개봉 했을 것이다. 서서히 역전하는 모습 볼 수 있을 것이다.
‘에로스’ 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변혁 : 특별히 에로스라는 틀에 가두고 작업하지는 않았다.
허진호 : ‘기억’에 대한 접근을 가지고 에로스를 떠올려 봤다. 후각이나 촉각에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지금의 경험이 아닌,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환기가 되는 부분들을 에로스라는 테마에 맞게 생각해 보았다.
유영식 : 각자 상상의 세계로. 현실이 비현실이고, 비현실이 현실이 될지니, 관념이 현실로 오면 멜로도, 호러도, 서사도, 비극도, 코미디도 이 모두가 에로스가 될 수 있다.
민규동 : 인간 맘 속 깊이 침전된 욕망이 그걸 껄끄러워하는 관습과 시스템에 부딪칠 때 나는 매혹적인 마찰음
오기환 : ‘어느 시간, 어느 장소, 어느 이미지를 보고 사람의 맘이 요동치고 흥분되는 바로 그 순간’ 이 바로 에로스 아닐까.
에피소드를 만들면서 각자 어떤 생각을 통해 소재를 발굴하게 됐는지, 그리고 감독들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변혁 : 사람들이 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들도 많고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항상 관심을 두는 게 있지 않나? 보이는 것 뒤에 어떤 배경이 있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에피소드를 썼던 것 같다. 감독 분들 만나고 배우게 된 것과 자극을 받게 된 부분은 작가적으로나 연출가적으로 물론 존경스러운 부분이 일차적이었지만 그것을 떠나서 네 분 감독 모두 제작에 관해서도 굉장한 의지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제가 부족하게 생각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분들만의 성향이 아니라 이미 한국영화계에서 작업을 여러 편 하는 감독들에게는 정말 할 수 없이 생겨난 능력이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다. 평상시에는 작가로서 활동을 하고 언제부턴가는 투자를 끌어들이는 어떤 기획프로듀서의 역할을 하다가 갑자기 현장 가서는 감독 타이틀로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되는 것이 지금 감독의 위치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고 대단한 존경심과 더불어 자극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또 씁쓸하기도 해서 복잡 미묘했다.
허진호 : 처음에는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없이 감독 다섯 명이 모여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서론부터 이야기 했던 것 같다. 그때 나왔던 이야기들이 어떤 감각에 대한 얘기, 시각이나 후각이나 청각, 촉각 이런 것들을 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저는 그 중에서 후각적인 것들을 가져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제가 제일 먼저 영화를 찍어서 그런지 약간 제 작업만 좀 다르게 나온 것 같아 통일성이라는 측면에서 달라진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른 감독들과 같이 일하면서 각 영화나 감독이 가지고 있는 어떤 ‘색깔’이라는 것들이 참 다양하다고 느꼈다. 처음 이 이야기를 기획하면서 상상력이나 이런 것들에 있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유영식 : 전체적인 이야기를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의 제작방식과 좀 다른 방식으로 선택됐다. 처음부터 시나리오가 선택돼 있고 그 시나리오에 맞춰서 맞는 배우와 연기자와 스탭이 구성돼 진행된 것이 아니라 다섯 감독들이 모여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관객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던져보자”라고 하다가 그렇게 생각이 모인 후에 투자가 됐고 시나리오를 써서 ‘에로스’라는 컨셉을 갖고 각자가 나름대로 잘 해석한 재미있는 영화를 해보자고 했다. 씨앗을 심어서 열매를 맺어 과일을 딴 것이 아니라 우리는 큰 범위부터 시작을 해서 숲 속에 있는 황금사과를 따는 그런 형식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시행착오도 있었고 어려운 점도 있었고 이렇게 좋은 연기자 분들이 들어올지도 굉장히 궁금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잘 도와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 네 분의 감독들에게 너무 많이 배웠다. 개인적으로 여러 번 이 영화를 본 사람인데 정말 감독 네 분 호흡이 너무나 다르고 갖고 있는 영상색채나 기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유심히 보면 각각의 영화마다 특징이 있기 때문에 기대할 점도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민규동 : 처음에 에로스를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 그런 기회가 너무 반가웠다. 굉장히 하고 싶었고 18세 이상 관람가는 한 번도 못 만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막상 만들려고 하니 너무 어려웠다.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표현해야 하고 배우들도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어야 되고 조화도 맞아야 하기에 정말 힘들었다. 그런 고민이 들던 차에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만든 것이 10년 전인데 개인적으로 10주년이 된 시기에 이와 같은 영화가 나온 것은 그 어떤 기억들, 이를테면 그 영화의 두 주인공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계속 사회에 나와서 사회화되고 어른이 되고 힘겨움을 갖고 살고 그 서러움과 욕구를 갖고 산다면 어떻게 살까? 그런 간단한 질문을 갖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오기환 : 일반적인 영화감독이라면 각자 선정적 소재를 찍고 싶다는 프로파일들이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제가 찍은 에피소드는 ‘언니네 이발관’의 ‘순간을 믿어요’라는 노래에서 시작됐다. 그 노래의 제목을 들었을 때 이런 내용을 갖고 영화를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써놓은 장편 시나리오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기획으로 들어가면서 그 중 ‘순간을 믿어요’라는 프로젝트를 꺼내서 이 주제와 규모에 맞게 조정해서 영화를 찍었다. 이 프로젝트들 중에 “내가 제일 천하구나” 뭐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좀 더 격을 높이는, 좀 더 업그레이드 되는 그런 감독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겠다는 그런 반성을 하게 된다.
민규동 감독의 ‘치명적인 사랑’에 대한 질문인데, 동성애적 부분을 판타지적으로 엮은 것은 관객들에게 덜 불편하게 다가가게 하려고 한 것인 것인지 궁금하다.
민규동 : 판타지라는 현실을 택한 것은 특별히 뭔가를 중화시키거나 그럴 목적은 아니었고 욕구가 너무너무 절실하면, 이 영화에 ‘블루밍카드’라는 매체가 나오는데 그런 매체에 자신의 욕구가 반영돼서 실체를 통해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그렇게 어필되는 어떤 이미지?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 떠올라서 자연스럽게 판타지스러운 형식을 취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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