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08.05 (화)

  • 흐림동두천 29.3℃
  • 흐림강릉 30.6℃
  • 흐림서울 32.3℃
  • 구름많음대전 30.7℃
  • 구름조금대구 32.7℃
  • 구름많음울산 30.7℃
  • 구름조금광주 31.8℃
  • 맑음부산 32.0℃
  • 구름조금고창 32.7℃
  • 구름조금제주 31.6℃
  • 흐림강화 30.0℃
  • 흐림보은 29.2℃
  • 구름많음금산 31.4℃
  • 구름조금강진군 31.5℃
  • 맑음경주시 32.0℃
  • 맑음거제 31.0℃
기상청 제공

문화

나무에 혼을 담다

URL복사
얼마 전만해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인정받는 ‘뿌듯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도장이 필수목록에 포함됐던 것은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지. 서류상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분신으로 도장은 ‘잃어버려서는 안될’ 소중한 가치를 지녔고 중요한 순간마다 제 역할을 당당히 수행했다. 하지만 컴퓨터가 발달하고 모든 게 자동화되면서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도장장이도 사라지고 도장도 제 할 일을 다수 잃어버렸다. 이제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일까.

글자가 살아 움직여야 최고
한자리에서만 30년, 전부를 합치면 50년간 인장 새기는 일만 해온 이동일(65) 씨. 그는 오늘도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5층 한 구석자리에서 작업에 열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1979년 인장공예 1급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 인장기능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 2002년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인장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그는 이 분야 최고 실력자다. 특히 그의 작품은 상업적인 실용성과 전각의 예술성이 결합된 예술인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최소의 공간에서 조형미를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여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이 최고의 작품이죠. 아직 완전한 수준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겸손해 하며 그는 “얼마나 깊이 새겼는가는 기술적 차원일 뿐 정성과 정신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내놓아도 손님이 몰라주는 경우도 있다. 때론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이도 있다. “제작 전에 고객이 원하는 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탓”이라며 마음을 달래보지만 맥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만드는 이와 받는 이의 마음이 일치할 때 가장 행복하죠. 만족스럽다는 편지를 받을 때 ‘이 일을 하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장은 예술품
모두가 가난에 힘겨워했던 시절, 이씨네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 인장을 배웠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신념이 그의 온 정신을 지배했기 때문에 인장은 단순히 밥 먹고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자유당 말기라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었어요. 이를 고쳐 잡겠다는 의욕이 강했죠.”

학업과 생업의 두 길을 오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경희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은 그를 짓눌렀고 1년만에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어야 했다. “삶의 목표가 살아졌을 때의 상실감을 아느냐”며 당시를 회상한 그는 “한참을 무기력하게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인생의 기회는 세 번 온다고 했던가. 그는 우연히 중국서점에 들렀다가 ‘전각입문’이라는 서적을 보게 됐고 삶의 전환을 맞았다.

“전각이 그렇게 예술적이고 역사가 깊은 줄 몰랐어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것도요. 그때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내가 과연 평생을 해도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인장은 그에게 삶으로 다가왔고 그는 고서를 뒤적이며 연구에 몰입했다. 국내 서적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책도 참고하면서 전각기법을 터득했고 이를 실용인장에 접목,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칼을 붓처럼, 정성은 기본
작업은 나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단단하고 결이 일정한 나무를 선택하고 인면(이름 새기는 부분)을 사포로 곱게 다듬은 후 빨간색 먹(주먹)을 칠한다. 여기에 먹으로 글씨를 쓰고 다시 주먹으로 수정한 후 칼로 새기면 된다. 나무에 작업하기 전 완성품을 찍었을 때와 똑같게 종이에 글씨를 쓰는(인고)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정식인데 그래야 실패확률이 적다.

“하나 만드는 데 보통 하루가 걸리죠. 어떤 것은 이틀 넘게 소요되기도 하고요. 대충 만든다면야 몇분만에도 뚝딱 만들 수 있지만 그건 정말 ‘막도장’이죠.”

인면 작업보다 도장 옆면에 글을 새기는 ‘방각’이 훨씬 어렵다. 인면보다 결이 거칠고 일정치 않기 때문에 ‘고수’가 아니고서는 망치기 십상인 “칼을 붓처럼 부드럽게 다뤄야” 가능한 단계다.

수십년간을 해왔지만 때로는 제 맘대로 안될 때도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럴 때는 과감히 버린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속상해 일을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지금껏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이걸 놓으면 삶의 의미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파는’ 것이 아닌 ‘새기는’ 작업
그는 늘 공부한다. 선인들의 인보를 항시 들여다보며 서체를 연구하고 자신의 작품을 꼼꼼히 살피면서 수정·보완할 점을 체크한다. “죽는 날까지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점점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근래들어 고민이 생겼다. 기계가 보편화되면서 도장장이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려는 이도 드물다.

“개인의 분신인데 당연히 손으로 공들여 만드는 것이 마땅한 거 아닌가요?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르듯 도장도 개성이 있어야 해요. 숨결도 담겨있어야 하고요.”

요즘 세태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손이 움직이는 한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과 약속을 하듯 굳은 결의가 엿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자에게 도장을 ‘판다’는 표현대신 꼭 ‘새긴다’는 어휘를 사용해달라고 부탁했다.

“‘판다’는 말에는 정신이 배제된 행위만 남아있어요. 하지만 도장 만드는 일은 창조자의 피와 땀, 그리고 혼을 담아내는 것이지요. 가슴으로 ‘새기는’ 신성한 작업이에요.”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양곡관리법·농안법, 국회 본회의 통과...농안법도 국회 본회의서 가결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윤석열 前대통령 1호 거부권'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과잉 생산된 쌀을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시장 가격이 기준 가격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차액을 지원하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이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찬성 199표, 반대 15표, 기권 22표로 가결했다. 쌀값이 급락한 경우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규정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됐다가 윤석열 정부 당시 거부권이 처음 행사돼 폐기된 바 있다. 민주당이 재추진한 이번 개정안의 수정안에서 여야는 사전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통한 수급 조절, 당해년도 생산 쌀에 대한 선제적 수급조절 및 수요공급 일치, 쌀 초과 생산 및 가격 폭락 시 수급조절위원회가 매입 관련 심사 등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수산물 시장가격이 기준 가격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차액을 지원하는 내용의 농안법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표결 결과 찬성 205표, 반대 13표, 기권 19표가 나왔다. 농안법 개정안은 국내 수요보다 농수산물이 초과 생산되지

경제

더보기
IBK기업은행, 창립 64주년 기념식 개최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IBK기업은행은 1일 창립 64주년을 맞아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임직원 약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64주년 기념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김성태 은행장은 중소기업을 향한 사명감과 진심을 원동력으로 성장해 온 기업은행의 역사를 돌아보며 글로벌 초일류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도전과제를 밝혔다. 김 행장은 “특히 올해 전례 없는 각종 위기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면서, 미국 발 관세위기 등 대내외 위기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중기대출 지원으로 중기금융 역대 최대 점유비를 달성하는 한편, 소상공인의 금융비용 부담을 완화하고 상생금융을 적극 실천한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아울러 ‘하남데이터센터 이전’과 ‘나라사랑카드 3기 사업 유치’ 등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사업자등록 원스톱 서비스’, ‘AI 기술을 활용한 보이스피싱 탐지기술 도입’ 등을 통해 고객가치를 최우선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도 그간의 주요 성과로 꼽았다. 이어 “불확실성의 위기가 심화할수록 변하지 않는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고객을 향한 진실 되고 선한 마음으로 고객의 가치를 높이는 혁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의대생 전공의 복귀하려면 무조건 사과부터 해야
지난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집단 이탈했던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지난 14일 전격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17개월 만에 의정 갈등이 마침표를 찍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복귀자들에 대한 학사일정조정, 병역특례, 전공의 시험 추가 응시기회 부여 등 특혜 시비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의정갈등의 불씨는 계속 남아있게 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1년5개월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의정 갈등의 해법은 의대생, 전공의들이 무조건 국민과 환자들에게 의정 갈등으로 인한 진료 공백 사태에 대해 사과부터 하고 그 다음 복귀 조건을 제시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지난해 2월부터 발생한 의정 갈등은 정부가 고령화 시대 의료 수요 증가와 지역·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지역의료 강화, 필수 의료 수가 인상 등을 묶어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강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의료계는 이에 대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인력 배치’의 불균형 문제이며, 의료개혁이 충분한 협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었다고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의료계는 의사 수 증가가 오히려 과잉 진료와 의료비 증가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