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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무에 혼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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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만해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인정받는 ‘뿌듯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도장이 필수목록에 포함됐던 것은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지. 서류상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분신으로 도장은 ‘잃어버려서는 안될’ 소중한 가치를 지녔고 중요한 순간마다 제 역할을 당당히 수행했다. 하지만 컴퓨터가 발달하고 모든 게 자동화되면서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도장장이도 사라지고 도장도 제 할 일을 다수 잃어버렸다. 이제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일까.

글자가 살아 움직여야 최고
한자리에서만 30년, 전부를 합치면 50년간 인장 새기는 일만 해온 이동일(65) 씨. 그는 오늘도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5층 한 구석자리에서 작업에 열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1979년 인장공예 1급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 인장기능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 2002년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인장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그는 이 분야 최고 실력자다. 특히 그의 작품은 상업적인 실용성과 전각의 예술성이 결합된 예술인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최소의 공간에서 조형미를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여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이 최고의 작품이죠. 아직 완전한 수준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겸손해 하며 그는 “얼마나 깊이 새겼는가는 기술적 차원일 뿐 정성과 정신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내놓아도 손님이 몰라주는 경우도 있다. 때론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이도 있다. “제작 전에 고객이 원하는 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탓”이라며 마음을 달래보지만 맥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만드는 이와 받는 이의 마음이 일치할 때 가장 행복하죠. 만족스럽다는 편지를 받을 때 ‘이 일을 하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장은 예술품
모두가 가난에 힘겨워했던 시절, 이씨네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 인장을 배웠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신념이 그의 온 정신을 지배했기 때문에 인장은 단순히 밥 먹고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자유당 말기라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었어요. 이를 고쳐 잡겠다는 의욕이 강했죠.”

학업과 생업의 두 길을 오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경희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은 그를 짓눌렀고 1년만에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어야 했다. “삶의 목표가 살아졌을 때의 상실감을 아느냐”며 당시를 회상한 그는 “한참을 무기력하게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인생의 기회는 세 번 온다고 했던가. 그는 우연히 중국서점에 들렀다가 ‘전각입문’이라는 서적을 보게 됐고 삶의 전환을 맞았다.

“전각이 그렇게 예술적이고 역사가 깊은 줄 몰랐어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것도요. 그때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내가 과연 평생을 해도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인장은 그에게 삶으로 다가왔고 그는 고서를 뒤적이며 연구에 몰입했다. 국내 서적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책도 참고하면서 전각기법을 터득했고 이를 실용인장에 접목,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칼을 붓처럼, 정성은 기본
작업은 나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단단하고 결이 일정한 나무를 선택하고 인면(이름 새기는 부분)을 사포로 곱게 다듬은 후 빨간색 먹(주먹)을 칠한다. 여기에 먹으로 글씨를 쓰고 다시 주먹으로 수정한 후 칼로 새기면 된다. 나무에 작업하기 전 완성품을 찍었을 때와 똑같게 종이에 글씨를 쓰는(인고)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정식인데 그래야 실패확률이 적다.

“하나 만드는 데 보통 하루가 걸리죠. 어떤 것은 이틀 넘게 소요되기도 하고요. 대충 만든다면야 몇분만에도 뚝딱 만들 수 있지만 그건 정말 ‘막도장’이죠.”

인면 작업보다 도장 옆면에 글을 새기는 ‘방각’이 훨씬 어렵다. 인면보다 결이 거칠고 일정치 않기 때문에 ‘고수’가 아니고서는 망치기 십상인 “칼을 붓처럼 부드럽게 다뤄야” 가능한 단계다.

수십년간을 해왔지만 때로는 제 맘대로 안될 때도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럴 때는 과감히 버린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속상해 일을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지금껏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이걸 놓으면 삶의 의미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파는’ 것이 아닌 ‘새기는’ 작업
그는 늘 공부한다. 선인들의 인보를 항시 들여다보며 서체를 연구하고 자신의 작품을 꼼꼼히 살피면서 수정·보완할 점을 체크한다. “죽는 날까지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점점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근래들어 고민이 생겼다. 기계가 보편화되면서 도장장이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려는 이도 드물다.

“개인의 분신인데 당연히 손으로 공들여 만드는 것이 마땅한 거 아닌가요?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르듯 도장도 개성이 있어야 해요. 숨결도 담겨있어야 하고요.”

요즘 세태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손이 움직이는 한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과 약속을 하듯 굳은 결의가 엿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자에게 도장을 ‘판다’는 표현대신 꼭 ‘새긴다’는 어휘를 사용해달라고 부탁했다.

“‘판다’는 말에는 정신이 배제된 행위만 남아있어요. 하지만 도장 만드는 일은 창조자의 피와 땀, 그리고 혼을 담아내는 것이지요. 가슴으로 ‘새기는’ 신성한 작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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