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2.18 (목)

  • 맑음동두천 6.4℃
  • 맑음강릉 9.9℃
  • 맑음서울 7.7℃
  • 맑음대전 8.8℃
  • 맑음대구 11.5℃
  • 맑음울산 12.1℃
  • 맑음광주 11.4℃
  • 맑음부산 13.0℃
  • 맑음고창 9.5℃
  • 맑음제주 12.4℃
  • 맑음강화 5.7℃
  • 맑음보은 8.0℃
  • 맑음금산 9.5℃
  • 맑음강진군 12.3℃
  • 맑음경주시 12.0℃
  • 맑음거제 7.6℃
기상청 제공

문화

나무에 혼을 담다

URL복사
얼마 전만해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인정받는 ‘뿌듯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도장이 필수목록에 포함됐던 것은 그런 연유가 아니었을지. 서류상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분신으로 도장은 ‘잃어버려서는 안될’ 소중한 가치를 지녔고 중요한 순간마다 제 역할을 당당히 수행했다. 하지만 컴퓨터가 발달하고 모든 게 자동화되면서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도장장이도 사라지고 도장도 제 할 일을 다수 잃어버렸다. 이제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일까.

글자가 살아 움직여야 최고
한자리에서만 30년, 전부를 합치면 50년간 인장 새기는 일만 해온 이동일(65) 씨. 그는 오늘도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5층 한 구석자리에서 작업에 열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1979년 인장공예 1급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 인장기능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 2002년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인장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그는 이 분야 최고 실력자다. 특히 그의 작품은 상업적인 실용성과 전각의 예술성이 결합된 예술인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최소의 공간에서 조형미를 표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여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이 최고의 작품이죠. 아직 완전한 수준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겸손해 하며 그는 “얼마나 깊이 새겼는가는 기술적 차원일 뿐 정성과 정신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내놓아도 손님이 몰라주는 경우도 있다. 때론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이도 있다. “제작 전에 고객이 원하는 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탓”이라며 마음을 달래보지만 맥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만드는 이와 받는 이의 마음이 일치할 때 가장 행복하죠. 만족스럽다는 편지를 받을 때 ‘이 일을 하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장은 예술품
모두가 가난에 힘겨워했던 시절, 이씨네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 인장을 배웠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신념이 그의 온 정신을 지배했기 때문에 인장은 단순히 밥 먹고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자유당 말기라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었어요. 이를 고쳐 잡겠다는 의욕이 강했죠.”

학업과 생업의 두 길을 오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경희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은 그를 짓눌렀고 1년만에 어쩔 수 없이 꿈을 접어야 했다. “삶의 목표가 살아졌을 때의 상실감을 아느냐”며 당시를 회상한 그는 “한참을 무기력하게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인생의 기회는 세 번 온다고 했던가. 그는 우연히 중국서점에 들렀다가 ‘전각입문’이라는 서적을 보게 됐고 삶의 전환을 맞았다.

“전각이 그렇게 예술적이고 역사가 깊은 줄 몰랐어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것도요. 그때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내가 과연 평생을 해도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인장은 그에게 삶으로 다가왔고 그는 고서를 뒤적이며 연구에 몰입했다. 국내 서적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책도 참고하면서 전각기법을 터득했고 이를 실용인장에 접목,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칼을 붓처럼, 정성은 기본
작업은 나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단단하고 결이 일정한 나무를 선택하고 인면(이름 새기는 부분)을 사포로 곱게 다듬은 후 빨간색 먹(주먹)을 칠한다. 여기에 먹으로 글씨를 쓰고 다시 주먹으로 수정한 후 칼로 새기면 된다. 나무에 작업하기 전 완성품을 찍었을 때와 똑같게 종이에 글씨를 쓰는(인고)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정식인데 그래야 실패확률이 적다.

“하나 만드는 데 보통 하루가 걸리죠. 어떤 것은 이틀 넘게 소요되기도 하고요. 대충 만든다면야 몇분만에도 뚝딱 만들 수 있지만 그건 정말 ‘막도장’이죠.”

인면 작업보다 도장 옆면에 글을 새기는 ‘방각’이 훨씬 어렵다. 인면보다 결이 거칠고 일정치 않기 때문에 ‘고수’가 아니고서는 망치기 십상인 “칼을 붓처럼 부드럽게 다뤄야” 가능한 단계다.

수십년간을 해왔지만 때로는 제 맘대로 안될 때도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럴 때는 과감히 버린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속상해 일을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지금껏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이걸 놓으면 삶의 의미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파는’ 것이 아닌 ‘새기는’ 작업
그는 늘 공부한다. 선인들의 인보를 항시 들여다보며 서체를 연구하고 자신의 작품을 꼼꼼히 살피면서 수정·보완할 점을 체크한다. “죽는 날까지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점점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근래들어 고민이 생겼다. 기계가 보편화되면서 도장장이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려는 이도 드물다.

“개인의 분신인데 당연히 손으로 공들여 만드는 것이 마땅한 거 아닌가요?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르듯 도장도 개성이 있어야 해요. 숨결도 담겨있어야 하고요.”

요즘 세태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는 “손이 움직이는 한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과 약속을 하듯 굳은 결의가 엿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자에게 도장을 ‘판다’는 표현대신 꼭 ‘새긴다’는 어휘를 사용해달라고 부탁했다.

“‘판다’는 말에는 정신이 배제된 행위만 남아있어요. 하지만 도장 만드는 일은 창조자의 피와 땀, 그리고 혼을 담아내는 것이지요. 가슴으로 ‘새기는’ 신성한 작업이에요.”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비만학회·한국릴리 미디어 세션...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비만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정부가 적극적인 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견이 나왔다. 17일 대한비만학회와 한국릴리가 17일 비만과 2형 당뇨병을 사회적 건강 과제로 규정하고, 치료 중심의 관리 전략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릴리와 대한비만학회는 이날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사회적 건강 과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을 주제로 미디어 세션을 공동 개최했다. 이번 세션은 국내 비만·당뇨병 치료 환경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인크레틴 기반 주사 치료제를 포함한 최신 치료 옵션이 적절히 활용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논의하고 미충족 수요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2형 당뇨병 및 비만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약물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등 여러 비만치료제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대한비만학회 총무이사인 이재혁 명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왜 비만 치료가 중요한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대한비만학회의 노력'을 주제로 학회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비만은 단순한 체중증가 상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지만, 여전히 법정비급여 질환

정치

더보기
내란특검 수사 결과에 與“헌정 회복 이정표”vs野“태산명동서일필로 끝난 정치보복”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15일 발표된 내란 특검 최종 수사 결과에 대해 여야는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정 회복에 많은 기여를 했음을 강조한 반면 국민의힘은 성과 없는 ‘내란몰이’로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12·3 내란사태는 권력 유지를 위한 불법 계엄이었다‘ 어제 내란 특검은 12·3 내란 사태 수사의 결론을 공식 발표했다”며 “활동을 마무리한 내란 특검은 헌정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한 시도에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준 과정이었다. 관련자 기소와 사실 규명, 책임 구조의 윤곽까지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누구든 헌정을 흔들면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도 분명히 세웠다”며 “아직 남은 과제도 분명하다. 내란의 기획과 지휘 구조, 윗선 개입 여부 등 핵심 쟁점 가운데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재판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준엄한 단죄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내란 세력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민주주의의 역사에 분명히 새겨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현대 문명을 관통하는 ‘유비쿼터스행복학’의 비전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좋은땅출판사가 ‘유비쿼터스행복학 비전을 공유하다’를 펴냈다. 교육자이자 다수의 인문·경영·자기계발서를 집필해 온 이정완 저자는 이번 책에서 현대 문명의 핵심 영역(경제, 사회, 정치, 기술, 교육)을 ‘행복’이라는 공통된 언어로 재해석하며,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문명 전체를 관통하는 행복의 구조적 의미를 탐구한다. 저자는 인류가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으로 거대한 편의를 확보했음에도 오히려 불안·소외·갈등이 심화된 현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성장 전략이 아니라 ‘행복을 중심에 둔 문명적 전환’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이를 위해 다섯 개의 주요 부문과 국제적 시각까지 폭넓게 다루며, 미래 사회가 어떤 ‘행복 문명’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방향을 제시한다. 제1부 ‘경제와 행복’에서는 GDP 중심 지표가 삶의 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짚고, 포용적 성장·공감 자본주의·윤리적 혁신 등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제2부 ‘사회와 행복’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단절, 정신건강 문제 등 사회적 불안을 분석하며, 신뢰와 공감의 회복을 핵심 가치로 제시한다. 정치 영역을 다루는 제3부는 투명성,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마음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아직 살 만한 세상이다
일상생활과 매스컴 등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때로는 냉혹하고, 험악하고, 때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삭막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하는 작고 따뜻한 선행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필자가 경험하거나 접한 세 가지 사례는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쪽지 편지’가 부른 감동적인 배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저지른다. 아무도 없는 어느 야심한 밤. 주차장에서 타인의 차량에 접촉 사고를 냈는데 아무도 못 봤으니까 그냥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양심에 따라 연락처와 함께 피해 보상을 약속하는 간단한 쪽지 편지를 써서 차량 와이퍼에 끼워놓았다. 며칠 후 피해 차량의 차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손해배상 절차에 대한 이야기부터 오가기 마련이지만, 차주분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쪽지까지 남겨주셔서 오히려 고맙다”며, 본인이 차량수리를 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