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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 오간 적십자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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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뒤 처음으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이 기자 입장으로 보면 냉·온탕을 오가는 혼란 그 자체였다. 정부 측은 약 2년만에 열린 회담이라 운영이 미숙했다고 해명을 했지만 그 해명은 변명에 불과했다.
지난 8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는 남과 북 당국사이의 첫 회담이고, 모처럼 열리는 남북 적십자회담이라는 점 때문에 국내·외신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대한적십자사 김영철 사무총장을 수석대표로 구성된 남측대표단이 금강산으로 출발했다.
김영철 수석대표는 금강산으로 출발에 앞서 “이번 적십자 회담에서 주로 추석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협의될 것”이라며 “상봉 규모는 예년 수준으로 하되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측대표단은 “인도적 차원에서 의논할 수 있는 건 가능한 많이 의논하도록 하겠다”는 말과 달리 이날 금강산 현장에 도착한 직후 전체회의를 통해 이번 회담에 대한 ‘감 잡기’를 시도했다.
남측대표단의 기조발언은 두 부분으로 9월말부터 시작되는 추석 상봉과 관련한 일정과 장소를 제안했고 △중단 없는 이산상봉을 강조한 인도주의 존중원칙 △이사가족문제의 근본적 문제 해결원칙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 상호협력 원칙 등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관한 3대원칙’을 제시했다.
북측 또한 기조발언에서 추석 상봉과 관련된 일정, 장소와 관련된 부분만 언급해 팽행한 긴장감이 돌았다.
팽팽한 입장만 확인한 첫 전체회의를 마친 뒤 김영철 수석대표는 브리핑에서 “이번에 3가지 원칙을 강조해 제시한 것은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일관된 일들을 해나가자”며 말 그대로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추가 상봉 등에 대해 방점을 찍기보다는 추석 상봉 합의에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남측 입장은 27일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남측은 수석대표 및 각 대표단 접촉을 통해 국군포로 및 납북자와 추가 상봉을 합의문에 넣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혔고, 반면 북측은 추석 상봉만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대표단의 팽팽한 입장이 지속되자 금강산 현지에서는 남측의 원칙 고수로 추석상봉까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심지어 적십자회담 일정이 하루 더 연장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까지 했었다. 또한 현지 공동취재단 사이에선 양말과 속옷을 빨아놓자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돌았다.
남측 회담 관계자 또한 “우리 국민의 관심을 고려했을 때 전쟁시기 및 전쟁 후 시기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에 대한 문제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과거 정부에서도 나름대로 해결 논리가 있었는데 (정부가 바뀐 만큼) 새롭게 해결하자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합의서에 넣어 갈 수 있도록 북한과 협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담관계자는 정부가 바뀌었으니 달라진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회담 관계자는 “이산가족 추석상봉에 대해서는 남북이 이미 어느 정도 공감대를 갖고 회담을 시작했기 때문에 추석상봉 이외의 추가성과를 반드시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담관계자가 적십자회담 공동취재단에게 브리핑 한 시간이 이날 오후 10시 30분이었는데 밤 11시를 넘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남측대표단이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추가 상봉 등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합의문에 넣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유화된 자세로 선회한 것이다. 남측이 입장을 급하게 선회하게 된 이유는 적십자회담 공동취재단이 ‘남북간 입장 차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는 기사를 전송하면서 시작됐다.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 기자실에 이같은 기사가 전송이 되고 각 언론사 기자들은 이 기사를 송고했다. 이에 서울 상황실은 분주해졌고 정부는 금강산의 대표단에 여러 가지 지시들을 전달하면서 이같은 기사를 막고자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의 기자단이 철수한 상황에서 기사의 ‘톤 다운(매스컴 용어로써 신문의 사설이나 논평 등의 논조(論調)를 약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을 위해 현지 공동취재단의 모든 취재 내용은 출입 언론사에게 모두 배분되어야 한다는 기본 법칙을 어기고 일부 언론사와 개별접촉을 통해 기사를 바로잡는 성의(?)를 보였다. 전화를 받은 매체는 전화내용이 기본 방향인 줄 알고 기사를 고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몇몇의 일간지 및 방송사에만 전화를 했고, 나머지 매체에는 전화통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28일 아침 남북회담본부 기자실에 알려지자 기자실은 술렁거렸고, 기자단은 ‘이미 기사가 나온 상태에서 기사를 잡는 것은 정부의 개입’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기자단은 이 같은 정부의 행동에 대해 정부측에 재발방지와 사과를 요구하면서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부의 강경한 입장고수라는 보도가 나가면 정부입장으로 모처럼 이루어진 회담에서 회담이 무산이 되거나 일정이 연장되면 풀린 남북관계를 또다시 얽어매는 상황이 될 수 있어 급하게 선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외에도 정부는 이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나타내기 위해 이번 회담의 명칭을 ‘제10차 남북적십자회담'이 아닌 '남북적십자회담’으로 규정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회담은 지난 2007년 11월 금강산에서 개최된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 이후 처음으로 열린 남북간 적십자회담이다. 특히 북측에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원칙적 입장을 전달할 만큼 할 만큼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때문에 회담 첫날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회담을 ‘제10차 남북적십자회담’이라 표현했다. 이후 정부는 급히 각 언론에 ‘남북적십자회담’으로 바로잡아 줄 것을 정식 요청했다.
이에 대해 회담 관계자는 “이번 회담을 제10차 남북적십자회담이라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번 회담은 남북 적십자회담이 정확한 명칭이고 이후에 열리는 차기 회담은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을 제1차 적십자회담으로 규정함으로써 지난 정부에서 진행한 적십자회담과는 선을 그은 셈이다.
또한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회담 관계자들은 남북간 이견 및 혼선보다 서울 상황실과 회담 상황실간의 정부 내 혼선을 정리하는데 더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2박3일간의 적십자회담은 추석 이산가족 상봉의 일정과 형식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하는 정도에 머물렀고 국군포로 및 납북자, 추가상봉 등은 담기지 못했으며, ‘달라진 정부의 달라진 회담’을 강조했던 호언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또한 적십자회담 첫날 당초 오후 5시에 회담이 시작될 예정이었던 전체회의가 금강산 현지와 남북회담사무국간 통신 연결이 원활치 않아 지연이 됐고, 두 째날도 현지 정전으로 수석대표 접촉이 지연됐다. 이런 상황들과 금강산 현지에서 나타나는 양측 대표단들의 입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남이나 북이나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담을 진행했고, 이미 결과가 나온 상태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날짜와 장소를 잡기 위해 자존심만 내세운 회담이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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