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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대가 두려워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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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사실 금서야말로 사회상을 읽는 가장 정확한 척도다. 최근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금서 특별전은 이런 의미에서 주목할만 하다. 소설가 이태준이 평양에서 발표한 ‘쏘련기행’ 원본 등 희귀자료를 대거 선보인 이번 전시는 세계의 금서를 통해 당대 민초들의 삶과 지배체제, 그리고 권력과 투쟁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검열제도 시민혁명 이후 종식

검열제도의 시초는 종교다. 14세기경 로마교황청은 이단을 단속하고자 검열제도를 창시했다. 새로운 우주관을 담고 있는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등은 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기성 사회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으로 금서 처분을 받았다.

군주들은 이 검열제도를 재빨리 들여와 정치적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시민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18세기 이후, 시민사상을 담은 책들은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혔다. 루소의 ‘에밀’은 기독교의 원죄설을 거부하는 등 기성 종교에 이의를 제기해 권력자들로부터 위험한 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서구에서 검열과 허가의 제도가 없어진 것은 주로 시민혁명 이후다. 검열제도를 반대했던 밀턴은 어떤 사상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관리인 검열관이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공개 논쟁과 각자의 선택에 의해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턴의 이 자유이론은 시민혁명 후에 각 나라 헌법에서 인정됐다.

음란하고 외설적이라는 죄목으로 금서가 되는 풍속금서도 물론 적지 않았다. 1928년에 출간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대표적인 경우. 노골적인 성애 묘사를 이유로 영국 및 미국의 세관당국에 의해 몰수됐고, 소각처분까지 받았다. 이 작품이 금서에서 풀려난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중국에서도 풍속금서가 많았다. ‘금병매’ ‘육포단’ 등의 소설이 음란서적으로 금서 목록에 올랐다. 일본의 금서 목록에는 이 같은 성애의 자극적 묘사가 극심한 작품이 특히 많아 개방적 성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유교의 이단사상 배척








신불질서를 뒤엎고 무정부주의적인 이념을 앞세운 '홍길동전'은 조선시대 대표적 금서였지만, 민중들에게 암암리에 전파된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한국에서 금서의 역사도 검열제도가 사라져 가는 일반적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 금서 또한 당대 지배 종교인 유교의 이단사상 배척에서 시작됐다. 역사학자 이중연 씨는 “조선 전기에 가장 억제됐던 서적은 도참 비결이다. 이들은 왕조의 교체나 권력의 변동 따위를 자연의 예징이나 풍수설 등을 통해 말함으로써 왕조 초기 지배권력의 창출과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따라서 지배권력은 권력유지에 이들 서적을 이용하면서도 민간에 전해지는 것은 억제했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몽환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금오신화’나 ‘설공찬전’은 합리적인 유교와 배치되는 ‘요망한 사상’이라는 이유로 금서가 됐다. 조선후기에는 사상문제와 정치문제가 얽혔고 개방적 학문 자세를 취하던 지식인은 이단으로 몰려 추출되거나 소외됐다. 학 불교 도교 등을 열린 자세로 수용한 ‘양명집’ ‘남명집’ ‘사변록’ ‘예기유편’ 등은 이런 배경에서 금서가 됐다.

조선후기 금서 중 주목할 것은 민중사상을 담은 책들이다. 평등사상 등 당시 지배체제에 위협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천주교 서적은 신유사옥 등 여러 차례 사옥 때마다 불태워졌다. 이씨는 “최형이 간행했던 ‘셩찰긔략’ 등 소각이 확인된 서적만도 150종 이상이다”고 밝혔다. 비합리적 풍수도참설에 근거해 왕조와 사회의 흥망성쇠를 예측하는 ‘정감록’ 또한 대표적인 금서였다. ‘정감록’은 금서였으나 조선 후기 전란과 사회 혼란으로 왕조의 변화를 바라는 민주의 바람을 담고 널리 전파됐다. 동학사상을 담은 ‘동경대전’ ‘용담유사’ 또한 금서 조치됐지만 민중 사이에 퍼지는 것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소설 또한 금서였다. 이씨는 “조선 후기에는 성리학의 ‘경서의 세계’가 흔들리며 ‘소설의 세계’가 등장했다. 특히 조선에서 창작되는 소설이 증가해 소설 독서가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경서의 세계를 유지하려는 왕조권력은 문제되는 소설의 수입을 금지하고 때로는 조선에서 창작되는 소설을 금기시했다”고 말했다. ‘수호전’ ‘서상기’ ‘삼국지’ ‘열하일기’ ‘앙반전’ ‘홍길동전’ 등이 금서로 탄압 받았다. 특히 사회비판소설 ‘양반전’ 정치적 반역사건을 담은 ‘홍길동전’ 등은 권력층의 극단적 비판을 받았다.


일제, 민족 저항서 탄압








1932년 발간된 '도왜실기'. 임시정부의 지도자 김구가 지은 한인애국단의 독립운동 기록. 이봉창 윤봉길 최흥식 유상근 의사의 의거를 다루었다.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어로 처음 간행됐다. 1946년에 자료 해설이 추가돼 국내에서 한글로 번역 출판됐다. 일제는 1933년 9월에 '치안'을 이유로 국내 반입과 독서를 금지했다.

제국주의시대에 제3세계는 식민탄압으로 금서가 양산됐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국국계몽운동과 민족혼을 담은 책들은 어김없이 금서 조치됐다. ‘을지문덕’ ‘대한지지’ ‘동국역사’ ‘서사건국지’ 등 한국사 국어 국문과 관계된 책은 모두 금지됐다. 권력의 압력이 계속되자 정치색채가 없는 소설들이 많이 출간됐다. 이씨는 “학문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책의 출판은 불가능한, 기형적으로 왜곡된 출판현상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사랑타령 류의 소설 외에 출판계는 정상적인 발전을 할 수 없었다. 1920년대에는 금서가 상대적으로 무척 적었는데 탄압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반증하는 결과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1930년대에 이르러 출판계는 성장한다. 이씨는 “이것은 민족 사회운동의 발전이란 사회적 수요와도 맞물려 있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하지만 그것이 출판계의 올바른 발전을 담보하진 못했다. 일제는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연이어 도발했다. 그리고 극단적인 파쇼 체제로 돌입했다”고 말했다. 1930∼40년대의 금서 종류는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 일제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후 금서 종수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 전후의 파쇼 체제 강화와 연관이 있다.

1930년대 금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종류는 ‘메이데이의 의의’ ‘맑쓰평전’ ‘무산대중의 문화적 사명’ ‘갑프시인집’ 등 사회운동 관련서다. 이는 1930년대 사회운동의 성장과도 연관됐다. ‘조선어입문’ ‘무궁화고’ 등 민족정신과 관련된 책들 또한 지속적인 탄압의 대상이 됐다.

1940년대 금서는 ‘충무공이순신실기’ ‘월남이선생실기’ ‘월남 이상재’ 등 역사 전기류가 많다. 이씨는 “사회사상서적이 상대적으로 줄고 역사 전기서적이 늘어난 것은 일제의 통제강화의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1940년대 민족말살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한글소설이 널리 읽혔다. ‘무정’ ‘흙’ 같은 한국소설 또한 숨어서 읽어야 하는 금지된 서적이 됐다.

제5공화국, 출판 암흑기








지식인들과 학생들의 가슴에 노동운동과 권력저항의 불을 지폈던 전태일 평전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던 금서엿다. 1987년 해금됐다.

해방이후에도 금서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제3∼제6공화국의 권위주의 시대 동안 불온서적이라는 이름의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출판평론가 박천홍 씨는 “4·19혁명의 함성을 군홧발로 짓눌러버린 5·16군사 쿠데타는 출판 암흑기의 서막이었다”고 말했다. ‘언론기관 정화’라는 명분으로 1961년 5월23일 1,170여개 언론 출판기관이 폐쇄됐다.
1974년∼75년 아홉 번이나 긴급조치가 발령됐다. 박씨는 “1975년 5월13일 내려진 긴급조치 9호는 금서시대의 선언문이었다”고 말했다.

김지하의 ‘황토’ 김경수의 ‘목소리’ ‘김동길의 ‘가노라 삼각산아’ 한국기독교교회협회의 ‘산업선교를 왜 문제시하는가’ 등이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판매금지 목록에 올랐다.
‘사회운동이념사’ 등 공산주의 관련도서는 좌경 용공 혐의로 금지됐다. ‘해방신학’ ‘이성과 혁명’ 등 네오 마르크시즘 도서는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이유로 불온도서로 분류됐다. ‘지성과 반지성’ ‘민중시대의 문학’ ‘국토’ 등은 반체제 반정부 비판서로 유해도서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유신정권은 야만적인 탄압으로 양심적인 지식인 세력을 연대하게 했다”고 말했다. “전예원 두레 청담문화사 아침 정우사 인간과과학사 등이 해직 언론인들의 활동무대였고, 1980년대 사회과학 시대의 주역인 청사 형성사 광민사 학민사 풀빛 한마당 한울 돌베개 산하 등은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세운 출판사였다”고 설명했다.

제5공화국은 법률적 행정적 수단을 총동원해 출판활동을 탄압했다. 자본주의 비판서, 마르크스주의와 변증법 철학서, 노동운동서, 민중과 소외계층을 형상화한 문학서 등 1,000여종이 넘는 금서들이 양산됐다. 이씨는 “5공시대 금서는 거의 무분별하고 자의적인 잣대로 만들어낸 것들이다. 원서 수입은 허가했지만 번역판은 판금시키고 반대로 원서는 판금되고 번역판은 허가된 경우, 이미 발표된 내용을 단행본으로 묶었는데 판금시킨 경우, 십여 년 전에 절판된 책을 다시 출간해 판금시킨 경우, 초판에선 납본필증이 나왔지만 재판에서 뒤늦게 판금시킨 경우, 제3세계 관련서, 종속이론서, 노동문제 도서, 정치경제학 도서 등 특정 주제를 무조건 판금시킨 경우, 학생운동 주동자들이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중에 유통되는 책을 판금시킨 경우 등은 5공 시대 금서의 허구성을 폭로한다”고 지적했다.

6공화국에 이르러 민주화투쟁의 대가로 판금 서적이 해제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 레닌 원전 출판물이 대거 선보이고, 북한 원전도 대거 출판됐다. 반향은 대단했다. 특히 북한원전에 대한 이상열기에 당황한 정부는 다시 북한 서적 단속에 나섰다. 출판인 3명을 구속하고 북한원전 37종 1만4,205권을 압수했다. 출판인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정부의 폭력적 출판정책에 저항했다.


금서는 독자가 정한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고 이상사회의 모습을 그린 공상 정치소설로 이상국가의 시민들은 6시간 일하고 8시간 자며 그 외에는 각자의 취미. 특히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국가의 재부는 모든 시민에게 균등 분배된다. 1516년 벨기에 루뱅에서 라틴어로 처음 출간됐고, 영역판은 헨리 8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551년에야 나올 수 있었다.

‘금서-세상을 바꾼 책’의 저자 한상범 씨는 “우리는 해방직후 1년 될까 말까 짧은 순간을 두고 금서란 제약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 온 경험이외에는 이제까지도 금서의 보이지 않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미국의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100권의 책 중에는 마르크스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르크스 저작도 읽지 않은 교수가 마르크스 사상을 비판하는 강의를 해왔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금서제도를 고집해서 이득을 보는 부류는 지식의 진보와 정보와 지식의 공평한 유통을 싫어하고 적대하는 자들이다”고 꼬집었다.

어떤 검열제도로도 다양한 사상과 만나려는 본연의 욕구를 막을 수 없다. 금서제도는 금서에 대한 은밀한 욕망과 호기심만 더 키울 뿐이다. 어떤 지식과 정보, 사상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해악이 되는지는 권력자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합의아래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이다. 박천홍 씨는 “금서를 판단할 최종심급은 한줌의 권력자가 아니라 무수한 익명의 독자들이다”고 말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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