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2.21 (일)

  • 맑음동두천 -2.5℃
  • 구름조금강릉 2.8℃
  • 구름조금서울 -2.2℃
  • 구름조금대전 1.1℃
  • 흐림대구 1.9℃
  • 흐림울산 3.3℃
  • 구름많음광주 2.2℃
  • 흐림부산 5.3℃
  • 흐림고창 1.2℃
  • 흐림제주 7.5℃
  • 구름조금강화 -2.2℃
  • 구름많음보은 0.1℃
  • 구름많음금산 0.3℃
  • 흐림강진군 2.8℃
  • 흐림경주시 2.3℃
  • 흐림거제 5.7℃
기상청 제공

문화

이것이 연극이다

URL복사

대학로에 연극다운 연극이 없다고 한다. 저질이거나 구태의연하거나 지루하거나…. 연극팬들은 요즘 연극 다수가 이 중 하나라고 투덜댄다. 저물어가는 장르라는 진부한 비관론도 연극판을 꾸준히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연극은 여전히 존재하고 좋은 연극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악어컴퍼니의 9번째 작품 ‘아트’는 바로 그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연극이다. 연극이라는 장르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이 작품은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적인 유머로 풀어내는 수작이다.


친구가 별 볼일 없는 그림을 거액에 샀다면?
누군가와 우정이 시작될 때 흔히 ‘코드가 맞는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로에 대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때 정체를 알 수 없는 배반감과 납득하기 어려운 적대감을 경험하게 되는데, 물론 이 비논리적 감정들은 표면화되지 않는다. 몸에 익은 기술로 관계는 유지되지만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들이 마침내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혹은, 스멀스멀 멀어져 간다.
연극 ‘아트’는 인간관계에서 흔하게 빚어지는 이 같은 일상적 문제를 섬세하게 짚는다. 이를테면 친구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그림을 엄청난 거액을 주고 구입한다면? 연극에서 규태(정보석-권해효役)는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다. 지방 공과대학교수인 규태는 청담동 피부과 의사인 친구 수현(이남희-조희봉役)이 1억8,000만원이나 되는 큰 돈을 주고 구입한 하얀 색 바탕에 하얀 줄이 그어져 있는 앙트로와의 그림을 보자마자 ‘판떼기’라고 비웃는다. 규태는 낙천적이고 헐렁한 또 다른 친구 덕수(유연수-이대연役)를 찾아가 “너라면 하얀 바탕에 하얀 줄이 있는 그림을 얼마주고 사겠냐?”며 하소연 한다.
동대문에서 원단 사업을 하다 최근 문구 업체에 취직한 덕수는 수현과 규태 사이를 조율하며 갈등을 풀기 위해 노력하지만 세 사람의 관계는 꼬여만 가고, 쌓여왔던 감정은 폭발한다. 규태는 “난 그냥 내가 아는 대로 너희들을 대했다. 그냥 내 방식대로 너희를 대했다고. 근데 그게 너한테는 뭔가 강요한 꼴이 됐냐?”며 말하고, 수현은 “사람을 제발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고 반박한다. 둘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덕수는 “내가 누구야? 무게 안 잡고, 자기 의견도 없고. 난 그냥 깍두기야!”라며 자괴한다.


일상적이고 날카로운 대사가 압권
이 작품은 현대연극의 정점에 서 있는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을 원작으로 만든 연극답게 상당히 세련됐고 감각적이다. 기승전결의 형식적 드라마 구조가 아닌 일상적 단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명이나 미술 모두 간결하다. 그림을 바꾸는 간단한 변화로 공간을 이동하는 방식이나 장면과 장면의 이음새 또한 무대예술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원작의 힘을 무시할 수 없을 듯 하다. 남자의 우정에 대한 경직된 고정관념에 메스를 가하는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과 통찰력은 놀랍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는 한 문장도 놓치기 아까울 만큼 유머러스하고 날카롭다. 물론, 원작의 철학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완벽히 한국식으로 바꾼 번안 또한 칭찬할 만하다. 4년이나 공 들였다는 번안 작업은 수정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지극히 이 땅 이 시간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합되는 설정들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관객은 쉽게 동화된다. 오히려 웬만한 창작극보다 더 리얼하고 더 일상적이고 더 생활밀착적이다. 예를 들어 덕수가 엄마와 통화 내용을 들려주는 장면에서, “그년이 그러자던? 그래 그렇겠지 여우같은 기집애에 홀려야 네가 한씨 집안 자식이지. 한씨 집안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렇잖아” 같은 대사는 한국적 특수성을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낸다. 물론 번역극인 부분은 아쉽다. 꼭 창작극이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같은 희곡이 한국에서 찾기 드물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캐릭터와 캐스팅, 그리고 연기의 하모니
이 연극의 빠질 수 없는 미덕은 캐릭터. 세 명의 캐릭터는 보편적이면서도 개성이 강하다. 소심하고 유치하고 비겁한 보통사람들이지만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 이 때문에 연기 또한 묵직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연출가 황재헌 또한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아트’는 대학로의 대표적 연기파와 스타 연기자들이 펼치는 연기대결로 개막전부터 화제가 됐다. 화-목-토요일에는 정보석 이남희 유연수가, 수-금-일요일에는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이 출연하는데 이 리뷰는 ‘화-목-토요일 파트’를 보고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연기에 대해 한정된 평가밖에 할 수 없음에 양해를 구한다. 어쨌든 정보석, 이남희, 유연수에 한해 말하자면 ‘퍼펙트’를 외칠 수밖에 없다.
정보석은 캐스팅의 승리다. 민감하고 소심한 지식인의 이미지는 정보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오버랩 된다. 어눌한 말투와 표정으로 인상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낸 유덕수는 개인기에 가까운 수다 연기로 관객을 제압한다.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이남희의 고차원적 연기는 굉장한 깊이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앙상블은 생생한 대사와 만나면서 연극에 미묘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연출가 황재헌은 원작을 처음 접했을 때 감흥을 “사이다가 터지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는데, 연극 ‘아트’에 대한 느낌을 설명하는데도 이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아트’는 사이다가 터지는 신선한 충격들이 이어지는 맛깔스럽고 상쾌한 연극이다.


10월3일까지/ 학전블루소극장
문의: (02)764-8760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비만학회·한국릴리 미디어 세션...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비만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정부가 적극적인 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견이 나왔다. 17일 대한비만학회와 한국릴리가 17일 비만과 2형 당뇨병을 사회적 건강 과제로 규정하고, 치료 중심의 관리 전략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릴리와 대한비만학회는 이날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사회적 건강 과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을 주제로 미디어 세션을 공동 개최했다. 이번 세션은 국내 비만·당뇨병 치료 환경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인크레틴 기반 주사 치료제를 포함한 최신 치료 옵션이 적절히 활용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논의하고 미충족 수요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2형 당뇨병 및 비만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약물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등 여러 비만치료제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대한비만학회 총무이사인 이재혁 명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왜 비만 치료가 중요한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대한비만학회의 노력'을 주제로 학회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비만은 단순한 체중증가 상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지만, 여전히 법정비급여 질환

정치

더보기
대법원 예규 제정에도 여야 내란전담재판부 정면충돌...“연내 설치법 처리”vs“명분 없다...중단하라”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지만 여야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법률안의 국회 통과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관련 법률안을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임을 밝힌 반면 국민의힘은 이제 명분이 없음을 강조하며 관련 법률안의 국회 통과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20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해 “계엄군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위대한 국민은 내란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신속하고 엄정한 내란재판과 내란청산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명령을 받들겠다. 신속한 내란 종식과 제2의 지귀연 같은 재판부 원천 차단을 위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반드시 연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조희대 사법부는 12·3 내란 이후 1년이 넘도록 국민적 요구이자 시대적 책무인 내란청산을 외면해 왔다. 지귀연 재판부의 노골적인 늑장 재판을 방치한 결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바닥까지 추락했다”며 “예규 하나로 내란재판 지연과 사법불신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 원내대변인은 “사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국회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통과시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대법원, 내란전담재판부 설치...“특별법 계획대로 추진”vs“위헌 법률 만들 이유 사라져”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예규를 제정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계획대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고 국민의힘은 내란전담재판부 특별법 제정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대법원은 18일 보도자료를 발표해 “2025년 12월 18일 개최된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헌법 제108조는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정할 예규의 주요 내용은 형법상 내란의 죄와 외환의 죄, 군형법상 반란의 죄에 대한 사건의 국가적 중요성, 신속 처리 필요성을 감안해 대상사건만을 전담해 집중적으로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 제87조(내란)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

문화

더보기
고립돼 가는 현대인의 내면... 연극 ‘동물원 이야기’ 공연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 ‘동물원 이야기(The Zoo Story)’가 12월 20일(토) 오후 2시 밀양아리나 꿈꾸는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번 공연은 밀양시가 주최하고 대경대학교 공연예술ICC가 주관하며, 극단 가변과 극단 예빛나래가 공동 제작했다. 작품은 뉴욕 센트럴파크의 한 벤치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인물 제리와 페트라(원작의 피터를 여성으로 트랜스한 설정)의 대화를 통해 현대 사회의 고립과 소통의 부재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심리극이다. 사회의 주변인에 가까운 제리와 평범한 중산층 페트라의 만남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관계의 의미를 드러내며, 예상치 못한 결말로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번 무대는 ‘1960년대 초연 이후 지금 시대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을 새롭게 해석한 공연’을 표방하며, 도시의 소음 속에서 점점 고립돼 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품은 단 두 명의 인물과 최소한의 공간만으로도 강렬한 긴장과 몰입을 만들어 내며, 관객에게 나와 타인 간의 거리와 소통의 의미를 되묻는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이자 연출을 맡은 배우진은 “‘동물원 이야기’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마음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아직 살 만한 세상이다
일상생활과 매스컴 등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때로는 냉혹하고, 험악하고, 때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삭막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하는 작고 따뜻한 선행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필자가 경험하거나 접한 세 가지 사례는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쪽지 편지’가 부른 감동적인 배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저지른다. 아무도 없는 어느 야심한 밤. 주차장에서 타인의 차량에 접촉 사고를 냈는데 아무도 못 봤으니까 그냥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양심에 따라 연락처와 함께 피해 보상을 약속하는 간단한 쪽지 편지를 써서 차량 와이퍼에 끼워놓았다. 며칠 후 피해 차량의 차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손해배상 절차에 대한 이야기부터 오가기 마련이지만, 차주분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쪽지까지 남겨주셔서 오히려 고맙다”며, 본인이 차량수리를 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