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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시장에 점령당한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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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 대학은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교수와 학생의 자유로운 공동체'로서 지녔던 학문적 정체성은 흔들리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적 기관으로서 견지해야 할 사회적 정당성은 동요되고 있으며, 사적 이해에 얽매이지 않는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권위라는 도덕적 신뢰성도 의심받고 있다. 대학은 지금 정체성의 위기, 정당성의 위기, 신뢰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무엇보다도 대학 패러다임의 급진적 전환에서 비롯한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의 징후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나타났다. 대학 캠퍼스를 짓누르던 군사독재 30년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진 자리에 시장독재의 휘황한 광채가 새로운 점령군처럼 퍼져갔던 것이다. 대학은 급격히 '기업'이 되었고, 캠퍼스는 삽시에 '장터'로 변했다.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정치총장'의 자리에 기업식 대학경영을 외치는 '경영총장'이 들어앉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더니, 급기야 재벌단체 간부 출신의 전문경영인이 총장으로 영입되는 일이 놀라울 것 없는 세상이 되었다.
정치총장이 물러난 자리에 경영총장이…
동시에 대학이 직접 기업을 설립·경영하는 '대학기업'이 생겨나고, 시장에 뛰어들어 적립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더니, 마침내 최고의 국립대학마저 '주식회사 서울대학교'로의 변신을 꿈꾸는 지경이 되었다. 캠퍼스의 변화도 눈부시다. 스타벅스 파파이스 던킨도너츠 등 다국적 체인점이 교정에 들어서고, 홈플러스 같은 종합쇼핑몰까지 유치하려고 경쟁을 벌이는 실정이다. 대학건물 또한 '김우중 기념관' '이명박 라운지' '호암생활관' 등 기업인의 이름을 달고 있거나, 삼성문화관 LG생활관 포스코관 등 기업의 상호를 자랑스럽게 이마에 붙이고 있는 형편이다.
대학은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되었다. 시장의 손아귀에서 대학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기관으로 변신하고 있다. 시장권력은 건물을 지어주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성균관대나 중앙대의 경우처럼 학교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대학을 직접 지배한다. 시장논리 또한 대학을 완전히 점령한 것처럼 보인다. 수익성, 효율성, 경쟁력을 앞세운 시장논리가 대학운영의 지침이 된 지 오래다. 시장논리의 지배는 사실 시장권력의 지배보다 더 위력적이다. 시장논리가 대학담론의 프레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언어’들이 대학담론을 주도하면서 진리추구나 학문의 자유 같은 대학 고유의 가치들은 낡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무대에서 밀려나고 있다.
마케팅과 영혼을 맞바꾼 대학
게다가 기업식 경영기법이 도입되면서 시장의 원리가 대학의 운명을 쥐고 흔들게 되었다. 대학 발전계획은 경영컨설팅 회사에 의해 수립되고, 교수 임용은 헤드헌팅업체의 평가에 좌우되며, 학과와 교과목의 개폐도 경영적 관점에서 결정된다. 설상가상으로 재벌언론이 주도하는 대학평가에 스스로 목을 맴으로써 대학은 더욱더 깊숙이 시장에 종속되는 형국이다.
1980년대부터 대학을 급속히 기업에 종속시킴으로써 위기를 자초한 진앙이었던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하버드대학 총장을 역임한 데렉 복은 대학이 시장의 욕망을 좇다가 결국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의 거래"를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시장의 포주로 전락"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시카고대학 교수들은 대학의 기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소넨샤인 총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마케팅에 근거해서 학문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인간정신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규탄한다.
시민사회 위협하는 '기업적 문화'의 전면공세
대학의 기업화는 물론 대학 내부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영역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슐츠에 따르면 대학기업화 현상의 본질은 시장과 대학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화전쟁(cultural war)이다. 그것은 시장의 요구에 비판적인 대학에 시장이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포했음을 의미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특히 대학의 인문사회강좌를 "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지배이데올로기에 적대적인" 수상한 내용으로 채워진다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러한 불만은 1980년대 이후 "대학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려는 일련의 시도"로 가시화되었는데, 대학의 기업화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이 "대학이 직면한 재정적 난국"과 결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공세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기업적 문화(corporate culture)이다. 앙리 지루에 따르면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기업이 점점 더 권력을 얻어가면서 민주적 문화는 기업적 문화로 변하고 있는데", 바로 이 기업적 문화가 창궐하는 가운데 대학의 기업화가 가속화되었다는 것이다. 기업적 문화가 시민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기업적 문화는 "시민사회의 민주적 욕망과 실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그러한 욕망을 시장논리에 흡수시킴으로써" 시민사회를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형해화한다.
시장독재의 최후 저지선이 뚫린다
요컨대 대학의 기업화는 시장과 대학 사이에서 벌어진 ‘문화전쟁’의 소산으로서, 냉전종식 이후 급속히 확산된 기업문화가 학문의 영역을 잠식해오는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인문사회학 분야에 대한 시장의 공격은 지배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인 세력을 제거하고, 시장이데올로기에 예속된 순종적인 노동자와 무개성적이고 자동인형적인 소비자를 양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나아가 대학의 기업화는 자본과 보수세력에는 일거양득의 수지맞는 사업이다. 대학에 널리 퍼진 진보적 이념을 탈색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학의 공적 성과물들을 기업의 사적 이해를 위해 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학의 기업화 현상은 단순히 경영합리화라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 고도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시장이 사회의 모든 영역 중에서 가장 비시장적이고 때론 반시장적인 영역인 대학을 제압함으로써 시장의 총체적 지배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시장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복원시킬 대체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마지막 기지인 대학이 마침내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리는 경보음이다.
무관심, 무지, 기업언어 프레임 극복해야
시장의 총체적 지배가 초래한 대학의 위기란 기실 대학교수의 위기에 다름 아니다. 대학교수가 시장의 공세에 맞서 학문공동체를 지켜내지 못하고 시장담론을 넘어서는 대항담론을 만들어내지도 못한 채, 시장권력과 시장논리에 무력하게 굴종해온 결과 현재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따라서 이 위기를 극복할 주체도 교수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상대적으로 신분적 안정을 보장받은 정년보장 교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이 앞장서서 교수들의 폭넓은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저지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세가지 걸림돌을 넘어야 한다. 첫째는 무관심이다. 지금처럼 교수들의 무관심이 만성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학의 기업화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카고대학의 경우 2000년부터 '대학의 이념'을 주제로 교수 쎄미나를 지속해오고 있는데, 이 쎄미나는 대학의 위기에 대한 교수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둘째는 무지이다. 재정 등 대학의 제반 문제에 대해 교수들이 모를수록 중요한 학내 사안에 개입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교수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교과운영, 예산, 임금 등 학내 제반 운영사항에 대한 공개를 요구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언어의 프레임이다. 대학을 마치 기업처럼 취급하는 일체의 언어를 경계해야 한다. 기업문화와 대학문화는 상이하고 때로는 대립적인 가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담론이 시장논리와 경영언어의 폐쇄회로에 갇히면 기업화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처럼 무관심, 무지, 기업언어 프레임을 극복함으로써 교수가 경영의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운영의 적극적 주체로서 다시 대학의 중심에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현재의 위기를 넘어설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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