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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정일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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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해부



'은둔'에서 '역사의 전
면'에 떠오르다

width="250" height="163" align="left">분단
이후 최초로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은 한마디로 '혁
명'이었다. 55년이라는 시간동안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38도선
을 경계로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체제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한민
족으로서 치욕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통일의 첫걸음을
놓았다는데서, 한반도 근대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역
사의 한페이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번 정상회담 기간
동안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부분중의 하나는 김정일 국
방위원장이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독재
자', '은둔의
지도자'등으로 불리고, 갖가지 루머가 끊임없이 그를
뒤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2박 3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앞에 드러난
김정일은 당초의 일반적 예상을 깨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나타났다. 이로써 그는 그동안 자신에게 드리워졌
던 '불량이미지'
를 탈피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성공했다는 평
가를 받게 됐다.


새로운 이미지로 대중
앞에 드러나



김대중 대통령 일행이 분단 이후 최초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방문한 평양 순안공항에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
는 모습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중을 나왔다. 일반의 예상을 깬 파격적
인 행동이었다. 김대통령과의 반가운 인사가 끝나고 그는 예의
바른 젊은이가
됐다. 백화원 영빈관에서 이루어진 첫 정상회담에서
김 국방위원장은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습니다"라고 말을 건
네며 김대통령 일행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의 이런 예절바른 언행은 회담
기간 내내 계속됐다. 그동안 일반이 가졌던 '즉흥적이고 독선
적'으로 알려진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모습이었
다.


33년간 후계자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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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김일성 종합대학에 입학한 김정일은, 이때
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후 약 33년간 후계자
통치 수업을
받으며 지도자로서의 변신을 시도했다. 93년도에는 국
방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아버지인 김일성과 함께 공동통치 시대
를 열어, 실질적인
권력승계의 막바지 단계로 접어든다. 하지만 94년 7월
8일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은 세계의 시선을 그에게 집중시키
기에 충분했다.
북한 권력의 변화추이를 예견하는 세계 각국의 시각들
을 뒤로 접어둔 채 그는 효성을 내세워 3년간의 유훈통치에 들
어갔다. 유훈통치가
끝난 97년 10월 김 국방위원장은 당총비서에 재추대되
고, 이어 98년 9월에는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는 등 북한 권력
의 중심에서
실질적인 지도자로서의 권력장악에 성공한다.


1970년대 권력장악1단
계 - 기반조성


김정일은 74년 2월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군부대 방
문이나 군사회의 참석 등으로 군 실태를 파악하고, 군에 대한
친밀감을 조성하는등
군권장악에 주력했다. 이와 함께 자신을 후계자로 지지
한 오진우를 무력부장 및 총정치국장에 임명하여 후견인으로 삼
는 한편, 군
고위직에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을 대거 기용하여 군내
지지기반을 구축하였다. 또한 1970년 후반부터는 군사분야보고
사항을 자신을
경유토록해 영향력 행사수단을 확보했다.


1980년대 권력장악 2
단계 - 기반확대


80년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을 통해 어느정도 자신
감을 갖게된 그는 군부대를 공개 방문하고 각종 군관련 지시를
하달하게 된다.
이와함께 군부실세들과 사냥, 주연 등으로 군부의 환심
을 유도하고, 1983년 부터는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들의 일일동
향을 참모부,
정치부, 보위부 계통으로 보고케하고. 중대급이상의 병
력과 관련한 동향을 통제할 수 있는 3선 감시 및 보고체제를 수
립하였다.


1990년대 권력장악 3
단계 - 군권장악


90년대 들어 법적, 제도적으로 군통수권을 장악한 김
정일은, 김일성 사후에는 통치수단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92
년 공화국
원수칭호를 부여받은 김정일은 헌법개정을 통해 국가수
반(주석)과 군통수권(국방위원장)을 분리하여 법적정비를 마친
후 93년 국방위원장에
추대됨으로써 최고 군 지휘권을 확보하였다. 이후 98
년 재개정된 헌법을 통해 지위와 권한이 한층 강화된 국방위원장
으로서 실질적인
국가 최고 책임자로 발돋움한다.


김정일의 사람들


김정일은 91년 임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하면서 자신
의 군부 인맥들을 군내 요직에 배치하는 등 군권장악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문에
그는 최고사령관 취임이후 7차례에 걸쳐 940여명의 장
성들에게 진급혜택을 주는 등 군내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구축하
는데 성공했다.
김정일의 측근 군부인물들을 살펴보면 총정치국장 조명
록,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상 김일철, 국방위원회 부위원
장 이용무, 평양
방어사령관 박기서, 보위 사령관 원응희, 총정치국 조
직 부국장 현철해,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박재경. 포병사령관 김
하규, 3군단장
장성우, 기계화 군단장 김명국, 공군사령관 오금철, 작
전국장 이명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주로 혁명
2∼3세대에
속하는 인물들로 김정일과 나이가 비슷한 50∼60대가
주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향후 북한군의 핵심위치에서 군사
정책을 좌지우지할
것으로도 예상된다.


깅정일의 통일철학
은 '자주'


북한은 정상회담 하루 전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일의
정치철학이자 통일철학은 '자주'라고 밝혔다. 김정일은 그동안
조국통일 3대원칙,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
안 등 3가지를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우리대
에 통일위업을
달성하자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상회담 이전 중국 방
문을 통해 1국 2체제 통일방안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단계
로 외교와 군사에 관한 권한을 연방 정부가 아니라 지금처럼 남
북이 별도로 갖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정싱
회담 기간내내 무력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통큰지도자임을 은근
히 과시하는 등
치밀한 계산과 상황에 따라 실리를 챙기는 변신을 유감
없이 발휘한 것은 자신이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을 갖춘 인
물이라는 점을
알리려고 노력한 것 처림 보인다. 이를 통해 그동안 끊
임없이 자신에게 제기됐던 지도자로서의 통솔력을 인정받고 싶었
던 모양이다.


김정일 다시보기


김정일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은둔에서 해방됐
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의 표현처럼 그는 이제 전면에 부상한
것이다. 따라서지금까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날 필요성이 있었다. 정확히 상대
의 의중을 파악하고 거침없이 다가서면서도, 김대중 대통령 내
외를 깍듯이 모시는
행동은 그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순간에 뒤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55년만에 이루어진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통일
의 큰 발걸음을
놓았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하고 이를 통
한 연구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알고있었던 그에 대해서 획기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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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프로필
>






1942년 2.16

1950∼52년

1952∼53년

1953∼54년

1954∼57년

1957∼60년 7

1961년 9∼1964년 3

1964년 6

1967년∼1971년

1971년∼1973년

1973년 9

1974 년 2.

1975년 8∼1978년 8

1980년 10

1990년 5

1980년 10

1990년 5

1991년 12.24

1992년 4.20

1993년 4.9


현재 당 조직(총괄)비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방위원장, 당 군사위원, 최고사령관, 원수


소련 브야츠크 출생(북한은 백두산 밀영 출생 주
장)

중국 길림학원 수학

만경대 혁명학원 수학

삼석인민학교, 평양 제4인민학교 수학

평양 제1중학교 졸업

남산고급중학교 졸업

김일성 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 졸업

당조직지도부 지도원, 책임지도원

당 선전선동부 과장, 부부장

당 문학예술부 부장

당 조직 및 선전선동담당 비서

당 정치위원회 위원(겸)

당 대남담당비서(겸)

당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 당 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겸)

당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 당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겸)

인민군 최고사령관(겸)

원수(군사칭호)

국방위원회 위원장(겸)




 





엄재웅 기자 jwoum@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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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a32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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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 칼럼】 의도한 듯한 제작 연출은 ‘과유불급’이었다
최근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된 트롯 경연 프로그램 ‘미스트롯4’가 큰 인기를 끌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 매회 참가자들의 뛰어난 노래 실력과 화려한 무대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 속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연 프로그램의 연출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한 여성 참가자의 이야기는 방송 내내 시청자들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는 결승 무대에서 탑5를 가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2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최종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얻어 순위를 뒤집고 결국 ‘진’의 자리에 올랐다. 실력 있는 가수가 정상에 오른 것은 분명 당연한 결과였고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켜본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평가도 나왔다. 우승 자체보다 방송이 보여준 연출 방식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이 참가자는 이미 예선전부터 뛰어난 가창력과 안정된 무대매너로 주목을 받아왔다. 예선 1회전에서 ‘진’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고, 무대마다 탄탄한 실력을 보여주며 심사위원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10년 차 가수였지만 그동안 큰 기회를 얻지 못했던